휸은 우도가 처음이지만 난 사실 2년 전에 우도에 간 적이 있다. 간 적이 있으나 간 적이 전혀 없다고 말해도 무방한 우도였다.
제주도를 여러 번 방문했지만 우도는 매번 숙제처럼 남겨 두었다.
코앞에 우도를 두고 성산일출봉에 마음을 빼앗겨 늘 거기까지만 갔고 거기서 머물렀다.
그곳에 앉아,
"우도가 그렇게 좋다던데..."
"맞아, 그치만 여기도 좋으니 다음에는 꼭 가자."
그러고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2년 전 휸 대신 난 내 짝과 함께 우도에 갔다. 여름휴가철이 아니면 둘이 시간을 맞추기가 힘든 우리에게 11월, 선물 같은 며칠이 주어졌다. 난 관광객이 떠난 우도에서 마지막 배를 바라보며 섬에 남아 있는 시간에 낭만을 가득 채울 우릴 기대했다.
우도행 배표를 사는데 매표소 직원이 풍랑 예보가 있어 배가 안 뜰지도 모른다고 했다. 의례적인 안내 멘트쯤으로 여기고 무엇을 내포하는 의미인지도 모른 채 어차피 숙박을 할 거라 상관없다고 했다.
도착한 첫날 비가 쏟아지자 계획한 바는 아니지만 버킷리스트 하나를 의도치 않게 이루는구나 살짝 신이 났다. 비 오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침대에서 하루 종일 쉬어봤으면... 늘 바라왔던 경험이다.
펜션은 리모델링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설이 깨끗하고 내부가 아늑했다. 커다란 침대가 붙어 있는 한쪽 벽은 전체가 유리창이었고, 그 창으로 하우목동항이 내려다보였다. 창밖의 풍경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파도가 휘몰아치고 비바람에 흉내 낼 수 없는 소리가 났다.
첫날을 하루 종일 비만 보며 보냈다. 짧은 여행 기간에 하루를 이렇게 쓴다는 게 아깝긴 했어도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가 아니라고 여겨 하루쯤은 관대한 마음으로 보냈다.
이튿날. 단장을 하고 거리로 나왔다. 기대하던 우도의 모습을 만나볼 차례다.
평소에 바람을 좋아한다 했던 내 말이 무색해졌다. 바람에 사방으로 포위된 듯 그 어느 방향으로도 나아가기가 힘들자 좋은 게 아니라 공포스러웠다.
게다가 거리 분위기가 이상하다. 마치 이곳에 생존자는 우리 둘 뿐인 지구 종말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다들 어디 간 걸까.
사람도 차도 찾아볼 수가 없다. 분명 유튜브에서는 예쁜 전기차가 돌아다니고 자주 관광지를 도는 버스가 있었는데...
버스 정류장을 찾아다니다가 겨우 렌터카 집에 도착했다.
역시나 잠겨있는 문을 '계세요'를 외치며 한참을 두드렸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키가 큰 아저씨가 나와 문을 열어준다.
"어제 왜 안 나갔어요?...." 첫마디가 그랬다. 문을 연 곳이 아무 데도 없을 거라며, 내일도 배가 뜨지 않을 것 같다고.
작은 전기차 한 대를 빌려 섬을 한 바퀴 돌아본다. 그냥 조촐한 정식이면 충분할 텐데 그 어느 곳도 문을 연 식당이 없었다. 우도에 도착한 이후로 계속 배가 고픈 상태였다. 거대한 바람 앞에서 흡사 플라스틱 버기카 같은 3인승 전기차가 바람에 날아갈까 적응이 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가끔 지구에 종말이 와서 모두가 사라지고 나 혼자 살아남는다면 어떨까 상상하곤 했다. 상상이 아니라 드디어 그날이 온 것 같았다. 이런 기분이겠구나. 풍경보다 내 눈은 자꾸 사람을 찾고 있었다.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우도의 풍경을 두고도 낯선 이 상황에서는 풍경에 온전히 마음을 내어주지 못했다.
짝과 나는 어느덧 반은 리얼인 상황극에 스며들어 멀리서 사람을 발견하면 "생존자(관광객)야, 좀비(현지인)야?" 하고 물었다.
이튿날 하루 종일 섬을 네 바퀴 돌면서 만난 건 좀비 5명, 생존자 없음.
좀비들은 하나같이 모두 츤데레였다. 말투와 제스처는 무뚝뚝한데도 우릴 걱정하는 그들의 진심이 보였다. 정보 한두 가지씩을 꼭 알려줬고 그건 우리의 생존에 아주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배가 뜨지 않는 날은 우도 내 모든 가게가 문을 닫는다고 했다.
가게 주인들 중에서는 배를 타고 우도에서 제주도로 출퇴근하는 이들이 있어서 비어있는 가게들이 대부분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그 흔한 편의점도 닫혀있다. 모든 종류의 교통수단도 운행이 중단된다. 비록 빈 섬을 도는 것뿐이지만 전기차를 빌릴 수 있었던 건 운이 좋았다.
난 생존자들이 보고 싶었다. 이 섬 안에 있는 관광객이 우리뿐이 아니란 걸 하루 종일 다니며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큰 이유도 없이 그래야만 마음이 좀 놓일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린 섬을 돌 때마다 서로의 존재만 확인했다.
우도의 날씨는 대단했다. 해가 잠시 난다 싶더니 비가 억수처럼 쏟아졌고, 덩어리 진 빗방울을 보니 젖은 눈이었다. 난생처음 우박도 맞았다. 우박은 두꺼운 운동화 속까지 파고들었다.
웃음은 어이가 없을 때도 났다.
젖은 머리카락을 산발 한 채, 뒤집힌 우산을 잡고는 깔깔대며 우박 속을 도는 여자. 첫 번째 우도에 내가 남긴 모습이었다.
우린 3일 밤을 방에서만 지냈다. 방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짝과 24시간을 함께 지내는 일은 드물다. 평일에는 일 때문에 자주 떨어져 있었고 주말 역시 함께 있어 좋은 시간만큼 혼자만의 시간도 중요했기에 우린 필요한 대로 자유롭게 각자 시간을 썼다.
폭우 속 24시간은 상상처럼 낭만적인 일이 아니었다. 마지막 배를 보내고 섬에 갇혀 설렐 사이는 한참 지난 우리였다.
게다가 내 짝은 우도에 오기 며칠 전 사고가 난 차를 폐차하고 새 차를 주문해 둔 상황이었고, 그 일로 보험회사, 병원, 자동차 대리점 등에서 계속적으로 연락이 오는 탓에 이따금 좁은 방안은 소음으로 채워졌다.
24시간 붙어 있으니 사소한 생활습관들이 현미경으로 보듯 크게 다가왔다. 무료함과 불만이 쌓여갔다.
우린 낮에는 으르렁 거렸고 밤에는 서로의 온기에 파묻혀 잠이 들었다.
그게 나의 첫 번째 우도였으니, 우도를 제대로 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님 누구보다도 우도의 본모습을 잘 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여전히 우도는 내게 숙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