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는 게 제일 좋아
어릴 때부터 억압받고, 보수적인 집안의 어린이가 성인이 되면 어떻게 변하는지 아시나요?
부모님의 억압에서 벗어나자마자 망나니가 됩니다.
보수적인 부모님 밑에서 자라온 나는 학교 기숙사에 들어가고 새로운 지역으로 갔다는 무서움보다 해방감이 들었다. 드디어 내 세상이 왔다는 생각에 집에 가고 싶지 않았고, 계속 학교를 다니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대학교에 들어가기 전 친구에게 소개를 받아 4살 많은 오빠를 만난 적이 있다. 그 당시 엄마는 그 오빠와 만나는걸 극도로 반대하셨다. 이유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그냥 남자를 만나는 것 자체를 싫어하셨으니 말이다.
통금이 오후 5시면 말을 다하지 않았을까. 한강 드라이브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당장 집으로 들어오라는 말을 했다. 착실한 딸로 살아왔던 나는 엄마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고, 그 길로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한 달도 가지 못하고 그 오빠는 유유히 나를 떠났다.
"이렇게 보수적인 애는 못 만나겠어."라는 말을 남기고 말이다.
그런 아이가 부모님이 없는 타지에서 살면 억압당했던 것에서 표출하지 못했던 모습을 표출했다. 표출과 폭발 그 사이였던 것 같다.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한 번도 연애를 쉬지 않았다.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는 남자 친구를 매일 같이 만났고, 수업도 빠지며 만나는 건 일상 같은 일이었다.
음주가무를 즐겼다. 당장 부산에 가고 싶어 친구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떠난 날도 많았다. 바다도 보고 술도 마시고 새로운 사람도 만났다. 매일 술을 마시고 취하는 건 일상이었다. 대학생이라면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뒷일은 생각하지 않았다. 예전에 즐기지 못한 걸 즐겨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수업에 가지 않았고, 겨우 F만 면할 출석으로 점수를 받는 것도 일상이었다. 몸에 좋지 않은 건 모든 걸 했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내 몸이 망가져가는 걸 보고 행복해했다. 쾌락에 중독되어 가며 스스로를 놓고 있었다. 어릴 때 못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그리고 나중 정신을 차려보니 어떻게 변해야 할지 모르는 어린아이가 남아있었다. 울고 싶었다. 이렇게까지 망가지고 싶지는 않았는데 차라리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자 부모님이 보고 싶었다.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나서야 어린 시절 약간의 억압이 약간은 그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부모님께 매달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술과 밤이 없다면 만나지 않을 사람들을 끊었다. 술을 줄이고, 운동을 시작했다. 나의 중독은 나만이 끊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보다 재미는 없지만, 오히려 지금이 좋다. 건설적으로 살고 있는 내 모습이 정신적으로는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어린 시절 적당한 억압만 있었다면, 아무런 조절도 하지 못하는 대학 시절의 내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