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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데이지 Aug 30. 2022

다음 생에는 김태희로 태어날래요

그것도 안되면 그 다음 생에라도

어린 시절 엄마가 나를 보면 항상 하시던 말이 있다.


"예진아 네가 엄마 눈에 아빠 코를 가지고 태어났으면, 어디 가서 못나다는 말은 듣지 않을 텐데. 엄만 너무 아쉬워."


그도 그럴 것이 엄마는 쌍꺼풀이 진한 눈에 낮은 코를 가지고 있다. 또 아빠는 약간 튀어나온 눈에 높은 콧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엄마와 아빠의 장점이 아닌, 튀어나온 눈과 코 성형외과에서도 코가 작고 낮아서 수술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다는 말을 할 정도로 작은 코를 가지고 태어났다.

심지어 코 옆에는 큰 몽고반점이 있었으니 객관적으로 봤을 때 예쁜 아이라는 말은 내가 봐도 선뜻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어린 시절 잠들기 전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신이 있다면, 내일 내 얼굴이 김태희로 변하게 해 주세요.'

내가 어릴 때 모두가 아름답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하던 여자는 김태희였다. 그렇게 매일 김태희 얼굴을 보며 잠이 들었다. 그럼 다음 날 내 얼굴이 김태희처럼 아름다워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다음날 눈을 뜨면 김태희의 얼굴이 아닌 내 얼굴이 거울 속에 있었다.


100일 동안 물 떠놓고 밤에 기도하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100일간 같은 소원을 진심으로 빌면 하늘도 감동해서 소원을 이뤄준다는 믿음으로 사람들이 기도를 하는 것이다.

나 역시도 100일 동안 기도를 드렸다. 다른 사람들은 "우리 아들, 딸 시험 합격하게 해 주세요." 또는 "제가 하는 일 잘 풀리게 해 주세요." 같은 기도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큰 소원인 거 아는데요. 100일간 기도하면 김태희 얼굴로 바꿔주세요.' 하며 기도를 올렸다.

아쉽게 내 기도는 하늘에 닿지 않았다.


어린 시절의 꿈은 결국 이뤄지지 않은 채로 성인이 되었다. 엄마는 내가 엄마와 같은 코를 가지고 있는 게 너무나 안타까웠는지 항상 코 수술에 관한 말씀을 해주셨다.

"엄마는 네가 원한다면 꼭 코 수술시켜줄게."

그 말이 나에게는 '네 코는 회생 불가능한 코니까, 무조건 코 수술은 해야 한다.'로 들렸다.

사실 크고 나서는 내 얼굴이 딱히 못생겼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모두가 내 얼굴을 보고 엄마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었다. 점점 외모 자신감은 떨어져 갔다.

그렇게 엄마와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듣고 큰 결심 끝 코 수술이라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코 수술에 나보다 진심이었던 우리 엄마는 나보다 수술 결정에 더 큰 행복을 느끼셨다.

놀랍게도 수술 후 내 얼굴은 그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본판 불변의 법칙은 괜히 나온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코 수술을 끝내고 3년이 지나자 예전과 똑같은 내 모습이 점차 싫어졌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여성분들이 너무나 많았는데 그 안에 나는 없었다. 그렇게 하나 둘 나를 바꿔갔다.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의학의 힘을 빌리기 시작한 것이다.

노력보다는 쉬운 길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지적한 모든 부분을 고쳤다.

매일 운동을 하며 다이어트도 해봤고, 쌍꺼풀 수술도 했다.


그러나 내 얼굴은 여전히 내 얼굴로 남아있다. 더 이상 바꿀 곳도 남아있지 않은 나의 얼굴을 하루 종일 바라보며 스스로라도 아름답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나라도 나를 사랑해줘야 누군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외모 지적에 대해 버틸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자기 전 기도를 한다. '만약 내일 내 얼굴이 김태희로 변하지 않는다면, 다음 생에라도 김태희의 얼굴로 태어나게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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