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지금도 어린이 같은데
어릴 때 어른스럽다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나에게 어른스럽다고 말하지 않은 어른 없을 정도로 어른스러움은 나에게 뗄 수 없는 일상의 단어였다. 그러나 확실하게 말하자면 어른스러운 척을 하는 어린이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나에게 항상 말씀하셨다. "너는 우리가 시키는 데로만 해. 어디 가서 밑 보일 실수하지 말고 제대로 행동해." 그렇게 부모님은 나에게 어른스러움을 주입시켰다.
엄마가 요즘도 가끔 말씀해주시는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다. 나와 동생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의 일이다. 동생은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고 울면서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지만, 나는 덤덤히 계단 위로 올라갔다는 추억을 말씀해주셨다. 나 역시도 거의 20년이 지난 그 상황이 기억난다.
그러나 엄마와 내가 기억하는 다른 부분은 나 역시도 계단을 오르면서 엄마가 일하러 가지 않길 바랬다. '엄마가 나까지 울면 더 일하러 가기 힘드실 테니, 나라도 먼저 올라가자.' 하며 눈물을 훔치며 말이다. 그 당시 엄마가 일을 가든지 말든지 신경 안 쓰는 모습을 보고 약간의 섭섭함을 느끼셨다고 하지만 그래도 한 명이라도 그러니 일하러 갈 때 마음이 놓였다고 말하셨다.
아무래도 그 모습을 보기 위해 어른스러운 내 모습을 연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장녀나 장남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말이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엄마, 아빠가 없으면 네가 동생의 엄마 아빠야."라는 말이다. 동생과 나의 나이 차이는 겨우 2살이다. 동생이 어린이 었을 때 나 역시도 어린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동생의 밥과 울음을 책임져야 한 사람은 부모님이 아닌 나였다. 또 나의 울음과 밥을 책임질 사람도 나였다.
동생이 잘못을 하면 혼이 나는 것은 이제 억울하지 않다. 어린 시절 혼나는 것이 너무나 억울했고 반복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덤덤해진 것이다. 동생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못난 딸로 그냥 남아있기로 했다. 더 이상 그 말에 반박할 힘도, 의지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보고 부모님은 "역시 큰 딸은 어른스럽네. 이제 네 동생도 그렇게 만들어."
여전히 동생과 나의 모든 잘못들은 나에게 돌아오고 있다. 그러나 내가 혼나면서도 굳이 동생을 교육시키고 싶지 않다. 그래도 나와는 조금이라도 다른 삶을 살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아무에게도 억압받지 않은 채 자유로운 동생의 모습을 지켜주고 싶다. 그건 그냥 어릴 때부터 언니와 부모의 모습을 어설프게나 흉내 낸 마음 때문일지 모른다.
여전히 나는 내가 철이 든 척만 하는 어린이라고 느껴진다. 스스로 결정할 힘은 없고, 누군가의 눈치만 보며 그 사람에게 맞추려고 하는 어른인 척하는 어린이 말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아직 어린이라는 말은 어른이 될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여전히 성장해야 하는 것이 많다. 또 하나둘씩 배워가면 언젠간 철이 든 척하는 게 아닌 철이 든 어른이 될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