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에서 김범석 교수님은 말한다. 기대여명을 알게 되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면 특별한 보너스라고. 나 역시 아버지가 특별한 보너스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불가능했던 퇴원이 현실이 되었고 요원하게만 느껴졌던 퇴원의 날이 마침내 다가왔다.
무더운 여름의 절반을 병원에서 지내고 나니 어느덧 가을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새하얀 구름은 저마다의 모습을 뽐내며 맑은 하늘을 유영하고 있었다. 집에만 있기엔 몸이 근질근질한 날이었다. 우리는 새뜻하게 느껴지는 코스모스 길을 지나 교외에 새로 생긴 카페로 향했다.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자 아버지가 내게 옆으로 와보라는 손짓을 하였다. 갑자기 옆으로 와서 앉으라니. 어색한 마음을 애써 누르고 나는 맞은편에서 아버지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항암 부작용으로 인해 퉁퉁 부은 손으로 휴대전화의 잠금을 풀더니 아버지는 내게 사진 네 장을 보여주었다. 세 장은 아버지의 증명사진이었고 나머지 한 장은 일 년 전 찍은 가족사진에서 아버지의 얼굴만 오려낸 사진이었다. “사진 파일 보내줄 테니 네가 제일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골라서 써줘.” 아버지는 내게 영정사진을 골라달라는 부탁을 심상하게 건네었다. 곧 나의 휴대전화로 아버지가 보낸 사진 파일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알람이 울렸고 연이어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진동벨이 요란하게 울어댔다. 진동벨이 테이블과 부딪히며 내는 소리는 자그러웠지만 때맞춰 나온 음료가 퍽 고마웠다. 계속 아버지 옆에 앉아있었다면 나는 심심한 위로의 한마디도 건네지 못한 채 그저 눈시울만 밝히고 있을 것이 뻔했다.
햇살이 카페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와 빛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 맑은 날에는 차마 아버지가 보낸 사진을 마주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보낸 사진 파일을 확인한 것은 이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였다. 아버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본다면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지금의 아버지와 사진 속 아버지는 달랐다. 머루같이 까만 눈동자, 두피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자리했던 머리카락, 해사한 미소. 모두 아버지의 것이었으나 이젠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변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자 그가 어떤 마음으로 영정사진을 골랐을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한참을 아버지의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이윽고 나는 깨달았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주어진 특별 보너스를 잘 사용하고 있다고.
내가 말기 암환자임을 알면서도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담당 교수가 올해를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진단을 내려도 내게 여전히 아버지의 완치를 기대하는 순진한 마음이 남아 있는 것만 보아도 그렇다. ‘죽음은 당하는 것이 아니라 맞이하는 것’이라며 웰다잉(Well-dying)과 같은 새로운 트렌드가 생겨나는 요즘이지만 내가 관찰자의 입장이 아니라 그 주체가 되었을 경우에도 과연 죽음을 쉬이 준비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아버지는 해내고 있던 것이다. 여전히 내가 내 삶의 주체임을 잊지 않고 아버지의 속도에 맞추어 아버지가 소화해낼 수 있을 만큼 하나씩 하나씩 죽음을 준비하고 있던 것이다. 때로는 진심이 아닌 말로 가족을 상처 입히고 보이지 않는 벽을 쌓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내비치기도 했으나 한편으로 아버지는 자신을 잃지 않으려 무던히 노력했던 것 같다. 작사가 김이나는 자신의 저서 ‘보통의 언어들’에서 말한다.
나의 인생을 극으로 본다면 작가도 주인공도 나다. 작가가 위기에 빠진 주인공 곁에 같이 앉아 ‘어떡해, 어떡하면 좋아.’하고 발을 동동 굴러선 안 되는 법이다. 걱정에 빠진 내 인생의 주인공인 나를 위해 작가인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음 회차로 이야기를 진전시키는 것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순리에 모든 걸 맡기는 것.
아버지는 ‘어떡해’ 하고 주저앉는 대신 오늘에 이어질 내일을 그리고 있었다. 영정사진을 골라달라는 그의 심상한 부탁은 한때 나의 마음을 울렸지만 이제 더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을 함께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보너스이자 최선을 다하는 것이며 순리에 모든 걸 맡기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그가 언젠가 한 마리의 나비가 되어 날아갈 지라도 그것은 순리이며 날아가는 뒷모습을 웃으면 배웅해 줄 수 있다면 그 어떤 미사여구로 분칠 된 삶보다 값진 삶의 한 순간을 살아낸 것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