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 후 맞이하는 첫 주말이다.
사실 그동안 주말과 평일의 경계가 모호하기는 했다. 늘 누워있었으니 말이다.
내 인생에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사건이 일어났다.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했던 정형외과에서의 예기치 못한 의료사고로 인해 수술을 해야할 것 같다는 통보를 받았다.
공포와 두려움, 후회와 불안, 그리고 그 밖의 다양한 감정들이 뒤섞여 엉겨붙은 마음의 심연 속에 나는 깊이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 곳에 내가 머물렀던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아주 놀라울 정도로- 아주 잠시였다.
처음에 나는 짐짓 태연하려고 노력했던 것도 같다.
그러나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에는-그것이 수술 하루 이틀 후였다는 사실이 많이 놀랍지만-, 그 사건 주변의, 혹은 그것에서 파생된 밝은 면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심연의 절벽을 기어올라 마침내 지상에 다다랐다.
굳이 그러려고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
내 몸의 이상을 빨리 알아채고 새벽같이 일어나 옳은 대학병원의 옳은 과를 알아보고 찾아간 것, 내가 얻게 된 외상성 질병을 치료해줄 수 있는 최고의 교수님을 만나게 된 것, 두 번 옮긴 병실에서 유리창 너머의 세상을 볼 수 있는 창가 침상을 얻게 된 것, 신체에 대한 걱정 외에는 아무런 걱정없이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이따금씩 나를 찾아오는 온기 어린 인사와 병문안까지.
분명 타인이 내게 행사한 잘못된 의료행위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지만, 그 외의 여건들은-심지어는 창밖의 맑은 날씨까지- 모두 나에게 우호적이라고 느껴졌고, 나는 그것이 무척이나 감사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가히 ‘행운’이라고 여겼던 점은 좋은 교수님을 만난 일이었다.
사실 수술도 입원도 처음이었던 나는 갑자기 들이닥친 이 변고를 마주하며 두려운 마음이 가장 컸다.
수술 전에는 수술이 잘못되지는 않을지, 아프지는 않을지를 걱정했고, 수술 후 수술부위가 가려울 때면 몸에 큰 흉터가 남지는 않을지, 수술부위가 덧나지는 않을지, 그리고 더 나아가 후유증이 생기지는 않을지 하는 문제들을 걱정했다.
평소의 나였다면 걱정과 우려로 점철된 밤, 그리고 새벽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아마 손 안의 세상이 전부였던 나는 스마트폰 검색에 열을 올렸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후유증과 합병증, 흉터 회복속도 등등..
물론 그럴 여력이 없었던 것도, 몸을 편히 움직일 수 없었던 것도, 검색하기가 외려 두려웠던 것도 한 몫 했지만, 그보다도 훌륭하고 따뜻한 의사선생님으로부터 ‘늘 보호받는 느낌’을 느꼈기 때문에 추가적인 걱정이 필요없었던 것이 가장 컸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대학 교수님들은 보통 하루에 한 번 회진을 도시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내가 진료본 과가 특히나 바쁜 과라고도 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하루에 두 세 번씩 나의 침상을 찾아오셨고, 도대체 쉬는 날이 있으시긴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일이고 주말이고 단 하루도 거르시는 날이 없었다.
‘지금은 많이 괜찮나요?’, ‘아프지는 않죠?’ 등 나의 안위를 묻는 질문을 해주셨고, 나의 걱정 섞인 질문들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 또한 내게 큰 안위를 주었던 부분이었다- 농담 섞인 답변들을 늘어놓으셨다.
가령, ‘이제 좀 걸어도 될까요?’ 하는 질문에 ‘걸어도 되고 앉아도 되고 물구나무를 서셔도 돼요’하고 대답하시며 싱긋 웃어보이시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루에 10분 남짓 되는 대화로 나는 나머지 23시간 50분을 안도와 평안함 속에 지낼 수 있었다.
그것은 참 대단한 힘이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건넨 10분의 대화도 어떤 이의 하루 남은 시간을 밝힐 수 있는 힘이 있을지에 대해서도 떠올려보았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퇴원을 앞두고 나는 나의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잘 전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가장 나다운 방법’을 생각해 냈다-책과 글이 바로 그것이었다.
올 해를 시작하며 구입했던 책이 있었다.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작가인 헤르만 헤세가 내가 제일 사랑하는 화가 빈센트 반 고흐를 염두에 두고 쓴 책이었다.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의 환희와 희열이 아직도 떠오른다. 헤세와 고흐의 조합이라니. 그 이름들만으로도 너무나도 완벽했다.
훌륭한 책을 단숨에 읽어버리는 데에 따르는 공허함과 아쉬움을 아는가.
이 책이 내 품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풍선과 같이 부풀었고, 그 부푼 마음을 간직만 한 채 아직 만끽하기에는 주저하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에 대해 이렇게 구구절절 적어내려가는 이유는, 내가 바로 그 책을 교수님께 선물했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함이다.
이 세상에 단 한 권뿐인 책이라는 생각에 읽어보지는 못한 책이었지만 -사실 첫 장을 잠깐 훔쳐보고는 헙, 하는 소리와 함께 재빨리 닫아버렸다. 펼쳐진 문장들의 아름다움이 나를 압도했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이 책을 읽어내는 일을 미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의심할 여지 없이 좋은 책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사실은 교수님의 미술과 문학에 대한 관심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기에 나는 보다 자신 있게 책을 건네드릴 수 있었다. 내 침상 창가에 늘 꽂혀있던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이라는 책을 보신 교수님께서 나에게 미술에 대한 이런 저런 질문을 하셨고, 그 덕에 내가 병원에 있다는 생각조차 잊은 어느 오후가 있었기 때문이다.
퇴원 전 날 부모님께 부탁하여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을 받아든 나는, 첫 장에 나의 감사를 담은 소소한 문장들을 적어내려갔다. 너무 과하지 않도록, 부담을 드리지 않도록, 되도록 담백하고 슴슴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퇴원날 아침이 되었을 때, 나는 마지막 회진을 오신 교수님께 책을 선물드렸다. 교수님께서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책 표지를 보시곤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라고 되뇌이며 병실을 나서셨다.
뿌듯함과 감사함이 떠난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당신의 희생과 노력 덕분에 힘든 병원생활을 버티고 건강과 긍정의 마음을 되찾은 한 명의 환자가 있다는 사실이, 교수님의 하루에 좀더 힘을 실어드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이제 퇴원을 한 지도 일주일이 되어가고 있다.
올해 유난히도 매서웠던 겨울은 어느덧 봄에 접어들고 있다.
고마운 내 몸은 다행히도 점점 회복에 속도를 내고 있어서, 어쩌면 일상으로의 복귀가 생각보다 빠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번 사고와 수술로 인해 내가 잃은 것, 손해본 것들이 종종 머릿속을 떠다니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만해서 다행이다’ 하는 생각이 마침내 든 어느 오후, 나는 그동안 내가 당연시하며 누린 것들에 대한 감사와 잠깐이었지만 조우할 수 있었던 인연들에 대한 감사를 곱씹어보며,
2023년 연초, 그것도 생일과 함께 찾아온 이 황당무계한 사건을 마무리지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