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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시담 Apr 02. 2023

나는 나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먹이고 산책시키는 일

“나, 제법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코로나와 함께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기나긴 출퇴근시간과 아침 준비시간이 사라진 자리에는 숨차지 않을 여유와 체력이 비집고 들어왔다.

이러한 여유는 나를 좀더 살뜰히 돌보고 가꿀 수 있게 해주었는데, ‘나를 보살피는 일’이 내게 주는 만족감은 실로 엄청났다. ‘그동안 도대체 어떻게 살았던 거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재택근무라는 최고의 복지를 통해 나는 비로소 나 한 명 스스로 건사할 수 있는 인격체로 재탄생했으며, 자신을 소중히 대하는 법을 조금이나마 터득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하는 인상을 내게 남겨주었다.


고개를 갸우뚱할 당신을 위해, 재택근무가 내게 남기고 간 몇 가지 변화에 대해 소개하도록 하겠다.




나는 나를 먹일 수 있게 되었다.

재택근무를 시작하며, 나는 하나의 생명체로서 그동안 내 한 몸 영양분을 공급하는 일에 얼마나 무지하였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 흔한 밥 물도 맞출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것은 '불가능'의 영역이라기보다는 '불필요'의 영역에 가까웠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퇴화된 능력'이라고 하기에는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능력이기는 했다.

언제나 학교나 회사에서 제공하는 밥을 먹었고,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인스턴트 음식ㅡ이를테면 라면이나 컵밥ㅡ을 해먹으면 되는 간단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나 스스로에게 근사한 한 끼를 대접할 능력이 없었다. 먹는 것이 하루 기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랬다.          



늘 평소와도 같던 하루에 ‘재택’이라는 녀석이 찾아왔다. 나를 먹여줄 기관이나 단체가 사라진 상황에서, 어느 여름날 나는 중차대한 문제 앞에 놓이게 되었다. 별안간 파스타를 먹고싶다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혀 버린 것이다.


평일의 12시였고, 나는 집에 홀로였다.

그것은 내가 파스타를 먹기 위해 누군가와 약속을 잡기엔 너무나도 늦은 시간임을 의미했다.

기어코 혼자 파스타 맛집에 찾아간다 해도 주어진 시간 안에 다시 컴퓨터 앞에 앉기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 때, 섬광처럼 지나가는 하나의 잔상이 있었으니, 바로 몇 달 전 구매하여 겉봉도 뜯지 않은 채 그대로 방치해 버린 통밀 파스타였다.

'이렇게 된 거, 파스타를 그냥 한 번 만들어 볼까'하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고, 이윽고 냉장고를 이리저리 뒤져보기 시작했다.

냉장고 속 우유, 새우, 다진 마늘을 바라보며, 나는 언젠가 SNS에서 본 적이 있는 파스타 레시피를 떠올렸다. 그리곤 재빨리 유튜브와 블로그를 뒤져본 뒤 투움바 파스타 만들기에 착수했다.


듬뿍 휘두른 올리브유에 자작자작 마늘을 볶고, 새우를 추가하고 각종 양념 (이조차도 매우 간단했다. 고추가루와 굴소스, 케찹이 다였다) 및 우유에 알맞게 삶아진 면을 부으니 제법 그럴싸한 파스타가 완성되었다.


그렇다면 맛은?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훌륭한 맛이었다. 사실 좀 놀랐다. 이 정도 맛을 집에서 만들어낼 수 있으면 더 이상 음식점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다른 요리영상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 날로 나의 취미 리스트에는 '요리 유튜브 챙겨보기'가 새로이 이름을 올렸다.

먹을 것에 원체 관심이 많았던 만큼,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요리 영상을 챙겨보았다.


처음에는 야매요리, 간편 다이어트 요리 등 비교적 쉬운 영상들부터 시작하였지만, 요리에 자신감이 생긴 후로는 점차 다양한 요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윽고 직접 해먹는 요리가 음식점에서 흔히 사먹었던 음식을 대체하기 시작했는데, 파스타, 쌀국수, 규동, 떡볶이 등 '중고수'의 단계를 거쳐 빠에야, 분짜, 후무스 등 정말 음식점에 가지 않으면 해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요리들을 직접 만들어 내는 단계에 이르렀다.


빠에야를 만들어 먹은 날에는 내가 요리에 소질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자아도취의 순간이 잠깐 나를 찾아왔다. 사실 빠에야를 요리했음에도 포르토에서 먹은 해물밥 맛에 더 가깝긴 했지만, 한 숟가락 들 때마다 이베리아 반도의 맛이 스멀스멀 밀려왔다.

 '정말 이게 내가 만든 음식이라고?'


그렇게 나는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누군가와 약속을 잡지 않아도, 큰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몇 번의 검색과 재료 주문 후에 뚝딱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



나를 먹여살리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 주는지 이제는 잘 알고 있다.

코로나 관련 규정이 많이 느슨해지고 재택근무 횟수 또한 함께 줄어든 요즈음, 나는 돌아오는 재택일을 그 누구보다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린다.

출퇴근 만원버스로부터의 해방, 늘어난 수면시간, 편안한 근무복장 때문이 아니라, '삼시 세끼 든든하게 나를 챙겨먹일 일'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두근거린다.

그 날은 내가 나를 위한 특식을 준비하는 날임을 온 몸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먹을 음식에 대해 연구하고, 시간을 투자하고,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고, 근사하게 플레이팅하고, 혼자만의 즐거운 식사시간을 음미하는 일련의 과정은 내가 나 스스로를 굉장히 귀하고 소중하게 대접하고 있다는 느낌을 온 몸으로 느끼게 해준다.


아마 재택근무가 영영 사라진다 해도, 나는 요리하는 즐거움을 만끽하며 살 것 같다.

재택근무는 내게, 잠들어 있던ㅡ어쩌면 영영 발견하지 못했을 수도 있는ㅡ요리근육을 일깨워 주었다.




나는 나를 산책시킬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요즘 이틀에 한 번 꼴로 한강변을 달린다.

달리기의 소중함을 알게 된 것 또한 재택근무의 시작과 함께였다.


회사생활을 시작하기 , 나는  걷기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바쁜 취업준비 기간에도 나는 시간을 내서 교정을 걸었고, 아름다운 풍경ㅡ이를테면  피어나며 탄성을 내지르는 꽃봉오리, 노을빛에 반짝이는 물결ㅡ을 보면 목적지가 한참 겨두고도 버스에서 렸다. 아름다운 풍경 속을 걸으며 그 하루를 마음속에 꼬깃꼬깃 담아두곤 했다.


회사생활을 시작하며 이런 낭만을 즐기는 시간은 어쩐지 자꾸만 줄어들었고, 사치처럼 느껴졌다. 약속이 없는 주말,  곳으로의 여행이 아니면 걷거나 달리는 낭만을 즐기기가 힘들었다.



오전의 격무를 마치고 가만히  안에 누워있던 어느 점심, 문득 밖에 나가 숨을 고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로 나가면 좋을까 고민하던 나는 최대한 사람을 적게 마주칠  있는 곳에 나가기로 마음 먹었다.

우리집이 걸어서 10~15분이면 한강이라는 사실은 내가 많은 문제를 뒤로 하고 이 곳에 계속 살기로 결정한 이유가 되어준 만큼, 나는 그 날도 한강으로의 산책을 결심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간 산책이었지만, 걷다 보니 뛰고 싶어졌고, 뛰다 보니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온통 나를 휘감고 있는 생명력이었다.


일단  숨소리를 듣는 일이 러했다.

하아- 하아, 하고 일정하게 들려오는 나의 숨소리는 내가  세계에 살아있음을  무엇보다도 확실하게 증명해 주었다.

시선을 돌리는 곳마다 생명력 넘치는 아름다운 풍경도 눈 끝에 닿았다.

일렁이는 잔물결,  위에 반짝이는 윤슬, 새로이 돋아나는 잔디와 이름 모를 풀꽃까지.

바쁜 하루 속에 쉬이 지나칠 수 있는 풍경들이 눈 안에 가득찼다.

얼굴 위로 쏟아지는 햇볕을 맞으며 따뜻한 봄바람을 가르는 일은 나로 하여금 머리 끝부터  끝까지 새로 태어나는 기분을 느끼게  주었다.



그렇게 어느새 달리기는  생활의 일부가 되었고, 재택근무를   없는 요즈음도 짬을 내서 이틀에  번씩은 달리기를 하려하고 있다.

처음 달리기의 매력을 알게 해준 정오의 러닝은 재택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호사가 되었지만, 사실 달리기의 시간은 어느 때여도 좋다는 생각을 한다. 다 각자의 매력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어스름할 동틀 무렵 러닝을 나가면, 알싸한 새벽공기가 나를 맞이한다.

나를 둘러싼 주변의 모든 색채가 푸르름 속에 잠겨있고, 푸른 바람을 가르며 나도 상쾌한 아침공기 속에 나를 던진다. 어쩐지 하루를 더 살고 있는 듯한 묘한 만족감은 선물처럼 따라온다.


퇴근 후의 달리기는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다.

회사 문턱을 넘으면서 미처 털어내지 못한 마음의 때와 먼지를 씻어내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오로지 달리기와 나의 숨소리만이 존재하는 시간 속으로 나를 밀어넣고 나면, 그 날 있었던 많은 일들은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하고, 내 마음의 담장을 넘어오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이 세상과 화해하는 방법을 달리기를 통해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요근래 가장 매끄럽고 아름답게 느껴진 시간을 꼽자면, 따사로운 햇볕을 맞으며 한강변을 달린 후 동네 마트에 들러 싱싱한 바질과 토마토를 사서 치즈파스타를 해먹었던 주말이 떠오른다.

건강함과 싱그러움이 가득찬 시간이었다.


재택이 내게 남기고 간 것은 어쩌면 빼어난 요리솜씨나 뛰어난 달리기 능력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돌볼 줄 아는 마음의 여유일지도 모르겠다.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대하는 것, 그것은 내가 내게 줄 수 있는 가장 당연하면서도 소중한 선물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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