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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Jan 29. 2024

아픈 역사와 화해하기

<해 질 무렵 안개 정원>(자음과모음, 2016)을 읽고


 1800년~1900년대 중반까지 제국주의는 많은 나라에 아픔을 주었다. 특히, 우리나라,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의 나라는 일본 제국주의에 무참히 짓밟혔다. <해 질 무렵 안개 정원>(자음과모음, 2016)은 일본 침략의 상처를 안고 있는 윤링의 모습을 통해 살아남은 자들의 아픔을 보여준다. 


 책의 주인공 테오 윤링은 부유한 집안에서 고등교육을 받았다. 일본이 영국에서 빼앗은 후 윤링은 언니 윤홍과 일본에 의해 강제로 징용되었다. 윤홍은 위안부로, 윤링은 노역부로 끌려가 비참한 생활을 하다 윤링 혼자 살아남았다. 그 후 일본에 대한 적대감, 수용소에서 혼자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윤링은 끈질기게 괴롭혔다. 


 일본이 항복한 후에도 윤링은 과거에 매여 살았다. 전범들을 재판에 세워 벌을 받게 하기 위해 평생을 애썼으며, 언니가 원하던 정원을 위해 노력했다. 절망적이었던 수용소 생활에서 벗어났음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자신으로 살기보다는 과거에 묶여있었다. 꿈에서 나타난 과거를 회상하며 윤링은 이렇게 말한다.


발밑에 그림자가 없었지요. 익숙하지만 동시에 알아볼 수 없는 풍경 속에서 움직이는 기분이었어요.

471쪽


 유기리(정원)는 이런 윤링이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고 화해를 청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체였다. 아리토모를 처음 만났을 때 윤링은 그가 일본인이라는 사실에 적개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의 도움으로 정원을 가꾸면서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동시에 자신을 있는 그대로 대해주는 아리토모와 가까워진다. 아리토모는 윤링을 피해자 또는 검사보로 보는 대신에 수제자로 대했다. 이런 아리토모의 태도와 유기리에서의 생활로 윤링은 스스로를 옥죄는 과거들을 담담히 생각하기 시작한다. 


손이 잘려나간 부분을 긁으면서, 장갑을 다시 끼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당황스럽거나 어색하지 않아서 나 스스로 놀라웠다. 

472쪽


  아리토모가 사라진 후 윤링은 또 한 번 상처를 받았다. 이번에도 유기리는 윤링의 상처 회복에 도움을 주었다. 윤링은 피하고 싶었던 아리토모와의 기억을 다시 마주했다. 또 다쓰지 교수와의 만남을 통해 아리토모를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보고, 전쟁의 이면도 들여다본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이 잊고 있었던 기억을 되찾는다. 골든 릴리(일본의 강제 징용 작전)에 관여했을지도 모르는 아리토모의 새로운 면모들을 보지만 결국 에밀리가 아리토모를 용서했듯이 윤링도 아리토모에 대해 혼란스러운 마음을 정리하고 그를 받아들인다. 이렇게 윤링은 자신의 아픈 역사와 화해한다. 


바람 따위는 없지. 깃발은 움직이지 않네. 그저 안절부절못하는 건 사람의 마음과 정신일뿐.

581쪽


p.s. 말레이시아 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선택한 책이다. 현대 말레이시아의 모습을 윤링의 시선으로 섬세하고 자세히 표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또 자세히 알지 못했던 말레이시아의 근현대사를 볼 수 있어서 뜻깊었다. 우리나라와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어서 그런지 더 와닿는 부분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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