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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끔한 비평가의 독서론

<비평가의 책 읽기>(미행, 2025) 간단후기

by 고목나무와 매미
일본 근대 문예비평의 창시자

고바야시 히데오는 일본 근대 문예비평의 문을 연 사람이다. 비평을 하나의 장르로 만든 비평가이자 "본질적으로 비평가가 아니라 산문으로 자기를 표현한 시인"(159쪽)이다.


독서와 비평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문학 비평가다 보니 독서에 대한 글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글은 책의 시작 부분이었다.

남독(병렬 독서를 뜻함) 하려고 애쓰다 보면, 남독에 아무런 해가 없음을 알게 된다. 오히려 한때 남독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훗날 독서를 진정한 즐거움으로 느끼지 못할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독서의 첫 번째 기술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읽음으로써 배양되기 때문이다.

10쪽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 권을 집중해서 읽을 것이냐', '여러 권을 동시에 읽을 것이냐'에 대한 고민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명쾌한 답을 내놓는다.

여기에 '한 작가를 제대로 파고들기', '창작한 사람의 흉내를 내보기' 등의 책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한 비평가로서의 꿀팁도 전수한다.


책이 책으로 보이지 않고 책을 쓴 사람으로 보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으로부터 나와서 글이 된 것을 다시 원래 쓴 사람에게로 되돌리는 일, 독서의 기술이라는 것 역시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수밖에 없다.

13쪽

비평의 개척자답게 비평에 대한 견해도 거침없이 개진한다. 고바야시는 비평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흔히 비평이라고 하면 다른 사람의 흠을 찾아서 예리하게 비판하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고 비평가들은 남들에 비해 더 많이 알고 작품을 더 잘 음미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에 의하면 이는 사실이 아니다.


어떤 의견도 갖지 않고 무엇이든 순수하게 음미하고자 유념하며 마음을 풍요롭게 만들어 가는 수행은 비평 따위보다 훨씬 어려운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36쪽
바꿔 말하면 타인을 헐뜯는 짓은 비평가가 지닌 기술도 무엇도 아닌, 비평 정신에 전적으로 반하는 정신적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중략) 어떤 대상을 비판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일이고, 올바르게 평가한다는 것은 그 대상의 있는 그대로의 성질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일이고,(후략)

118쪽

즉, 저자에 따르면 작품을 잘 음미하기 위해서는 비평보다 편견을 갖지 않는 점이 중요하며, 비평은 못한 부분을 잡아내는 것이 아닌 그 자체를 바라보고 긍정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현대인도 뜨끔하게 만드는 글

책과 다른 미디어들은 필연적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나 보다. 고바야시 히데오가 활동하던 시기(1900년대 초)에는 오늘날의 쇼츠와 릴스의 역할을 영화관이 했다. 고바야시 히데오는 영화는 "외부의 자극에 복종" 하게 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의지가 담긴 행위 같은 번거로운 과정 없이 심리적 세계를 갖가지 망상으로 채"(16쪽) 운다고 한다. 주어가 '영화'가 아니었다면 당장 오늘날의 모습으로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글귀이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말에 대해서도 날카로운 말을 전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늘 하는 조언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이런 말이 진짜 조언이다.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당장 내일이라도 실행이 가능하고, 실행한 이상 반드시 실익이 있는, 그런 말을 진짜 조언이라고 하는 것이다. 비평은 쉽고 조언은 어려운 까닭이다.

22쪽

압권은 이다음이다. 이 책에서 가장 나를 뜨끔하게 한 부분이다.

왜 이런 말을 구구하게 쓰는가 하면, 그건 여러분 스스로 반성해 보라.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스스로 실행한 적이 없는 조언을 이미 알고 있는지를 반성해 보라. 여러분은 듣기만 하고, 읽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으니까, 평범한 조언에 진절머리 나는 게 아닌지.

24쪽

나의 독서 습관 되돌아보기

책을 읽으면서 나의 독서 습관을 되돌아보게 됐다. 첫 번째, 남독(병렬 독서). 이건 열심히 행하고 있으니 합격. 다만, 저자는 읽을 때 '궁리'를 하면서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나는 궁리는커녕 그냥 수용만 하는 수동적인 독자였다. 앞으로 책을 읽을 때 좀 더 생각을 하면서 읽어야겠다.

두 번째, 비판. 책을 읽으면 아무래도 반발심이 생기면서 그 사람을 쉽게 비판하게 된다. 아니면 비난일 수도. 그리고 다시는 그 사람의 책을 찾이 않게 된다. 하지만 요즘 들어 그러한 편견이 나에게는 독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양을 찾는 모험>에서 만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로운 모습, <달려라 메로스>에서 본 다자이 오사무의 따뜻함.(내가 일본 작가들을 그동안 멀리해서 예시가 일본 작가들밖에 없다.) 어떤 작가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그 사람의 전집까진 아니더라도 다양한 책을 접해 본 다음에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


다만, 아쉬웠던 점

문화, 독서, 글쓰기 모든 내용이 좋았는데 마지막 담화 부분이 아쉬웠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의 흔적이 남아있었다고 느꼈다면 그건 나의 과민반응인 걸까.

지금의 아프리카 신흥국들은 원시시대로부터 급격히 생겨나서 과거의 축적이 없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고대부터 중세, 근세라는 일종의 문명이 있어서 축적도 있었고 능력도 개발되어 있었단 말이죠.

142쪽


물론 이건 고바야시의 말은 아니고 같이 대담을 나눈 다나카 미치타로라는 평론가의 말이다. 일본 문화에 대한 자의식 과잉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타국에 대한 무시가 그대로 담겨 있어서 이 담화는 굳이 이 책에 싣지 않아도 됐었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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