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자격(외전)

뜨뜻미지근한 자에게는 사랑할 자격이 없다

지금 마당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의 이름은 골드식이다.

금안을 가진 진한 색의 치즈냥.

그 애의 아빠는 테스형, 엄마는 똥삼이로 두 아이는 우리 마당에서 만나 사랑을 하고

자신들의 금색 아기냥이를 우리 마당에 두고 터를 떠났다.


벌써 공방에 와서 여러마리의 고양이와의 인연을 맺었지만

우리는 공방 안으로 그 누구도 들이지 못했다.

우리는 극악하게 나쁜 면역력으로 각종 면역질환과 알러지를 달고 살고

공방 내부에는 오염되면 바로 버려야하는 재료들로 가득하고

고양이나 개에게 해로운 식물들도 다수 키우고 있는 상태다.

그런건 핑계일 뿐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르지만

각자의 사정이 다르고 능력의 한계치가 다르다는 비겁한 대답밖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금안의 아기냥이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금식이라고 불렀지만

엄마는 골드식이라고 부르셨고 결국 이름은 조금 길지만 골드식이로 결정이 되었다.


미묘에 똥꼬발랄하고도 살가운 성격의 골드식이는

우리 모녀와 마당에서 마주칠때마다 머리를 들이밀고 쓰다듬과 궁디팡팡을 강요하는 아이였다.

점점 마당에서 놀아주는 시간도 길어지고, 밖에서 생고기 구이라도 먹고 들어올 때는

가방에 챙겨다니는 지퍼백에 늘 맛있게 먹을 그 녀석을 생각하며 챙겨오는 일상이었다.


골드식이는 공방안으로 들어오고 싶어했지만 우리는 자신이 없었다.

뜨뜻미지근한 미련을 줄줄 흘리며 마당에 비닐하우스를 지어주고

고양이 복지랍시고 마당 여기저기 그 애가 좋아하는 장소에

포근한 방석이나 담요를 깔아놓고 좋아라하는 걸 보며 뿌듯해 하곤했다.


아기냥이 티가 슬슬 가시고 이젠 제법 성묘티가 나는 골드식이는

사흘전 아침을 먹고 사라졌다.

그리고 그 날 오후부터 앞집의 데크 밑에서 고양이 우는 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목소리가 골드식이 소리와 비슷한 것 같다.

소리가 멈추었다가도 나나 엄마의 기척이 들리면 애타게 운다.


앞집과는 좋은 이웃관계는 아니다.

인사도 없이 각자 사는 관계이다보니 불편했지만 

살펴보아도 되겠느냐 양해를 구했더니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는 자리에서 발을 구르고 들어가버린다.


계속 살펴보지만 고양이가 보이지 않는다.

골드식이는 여전히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 초조하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고 오늘이 사흘째다.


들려오는 고양이 소리에 참지 못하고 이번엔 앞집 여자에게 부탁했다.

전혀 몰랐다며 살펴보란다. 보이지는 않고 고양이는 애타게 계속 운다.

그집 남자는 계속 화를 내며 투덜거린다.


내일은 외근이다. 낮에 살펴볼 수가 없다.

마음이 불편해서 지옥같다.

애초에 고양이를 돌볼 자격이 없었나?

뜨뜻미지근하게 거리를 두고 적당히 사랑하는 자에겐 자격이 없는건가?

괜한 오지랖과 욕심이었나? 마음이 너무너무 불편하다.


119에 전화를 걸까 수십번 망설였다.

긴급한 출동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런 부탁을 드리는건 민폐인줄 안다.

그런데 결국 걸었다.


앞집에 양해도 구했다.

앞집 여자는 살펴봐도 된다고 했지만

앞집 남자는 고양이 새끼 한마리에 이게 왠 진상질이냐며 큰소리로 욕을 한다.

이 동네 고양이 새끼 다 죽여버려야 한단다.

앞집은 지금은 염소를 키우지만, 4-5년전까지는 개를 키워 잡았다.

앞집남자는 계속 분노하며 개새끼 죽인다고 고발을 하는 더러운 세상이라고 한다.

할말은 많지만 나는 고양이를 살리고 싶었기에 그냥 듣고 있었다.


감사하게도 119에서 출동해주셨지만 고양이를 찾지 못했다.

여전히 고양이는 애타게 울지만, 집주인은 진상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이냐며

소방대원님들에게 우리를 비난하기 바쁘다. 

민폐는 민폐.

앞집주인에게도 소방대원들께도 폐를 끼쳐 미안하다고 사과는 했지만

화도 나고 속상하고 슬프고...엉망진창이다.


내 집이 아니다. 내 시설물이 아니다. 

피스 서너개만 풀면 파손 없이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지만

그럴 권한이 나한테는 없다. 


애초에 마당의 터를 내주고 함께 공생하는 따위의 나이브한 생각이 잘못되었던 걸까?

문을 열어달라고 냥냥 대던 너를 들여줄 용기가 없는 뜨뜻미지근한 나따위는

고양이를 사랑할 자격 따윈 없었던 걸까?


잔뜩 밀린 업무는 또 밀렸고

집에 들어와 꾸역꾸역 저녁을 먹었다.

일거리에 밤은 새야하고

내일 아침에는 외근을 나가야한다.


고양이 한마리 지켜주지 못하는 뜨뜻미지근한 내가 참 싫은 날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너의 이름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