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를 고칠 용기

지금 집을 짓고 이사 오기 전 까지는 아파트에 살았다.


전에 주거했던 아파트들의 변기는 지금과 비교하면 당연히 구형이었고

물탱크 뚜껑을 열어보면 한눈에 알 수 있는 직관적인 구조로 되어있었다.

고장이 나봐야 레버나 패킹이 노후화 된 것이 한 눈에 보였고

철물점에 가서 어지간한 교체품을 찾아다가 그냥 잘 고쳐썼다.


6년 전 쯤 이 집을 지을 때 시공사에서 설치해주신 변기는 예뻤다.

일명 원피스형 로우탱크 스타일의 나지막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인데

그때는 몰랐다. 이 변기의 함정을.


3년 만에 변기 물내림이 뭔가 이상해졌다.

누수가 발생했다 멀쩡해졌다를 반복했다.

집과 공방에 있는 똑같은 모델 변기들은 따로 또 같이

이런저런 이상증세를 보여서 열어본 물탱크 뚜껑.


뭐지? 구조가 왜 이리 복잡해?

어디서 이상이 생겼는지도 모르겠고

뭘 갈아야 할지도 뭔가 막막했다.

그러나 열심히 살펴보니 금이 간 곳이 보이는 부품이 있어서

그것만 교체했더니만 그럭저럭 쓸만했지만

그 뒤로도 3개의 변기는 상태가 오락가락했다.


그렇게 3년을 더 쓰고 올해 겨울

변기 3개가 다 본격적으로 불편할 만큼 물내림에 이상이 생겼다.

여기저기 찾아보니 수명이 다했다고 보는게 맞았다.

그래봤자 변기인, 우리의 미니멀하고 예쁜 변기는

가장 고장도 잦고, 부품이 가장 비싼 기종이었다.

다른 변기의 부품이 2만원도 안할때 우리 예쁜 변기의 부품 세트는 5만원이 훌쩍 넘었다.


그러나 물러설 곳이 없다보니 결국 3세트의 부품을 샀다.

인생의 스승 유튜브를 보고 막상 교체작업을 하니 성가시긴 해도 그다지 어려운 건 아니었다.


해치우고 나니 이게 뭐라고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며 미루고 미뤘나 싶다.

세상 일도 그런 경우는 많았다.

지레짐작으로 겁먹고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막상 해보니 별 것도 아닌 일들.

(반대로 우습게 봤지만 만만치 않은 일들도 많았지만)


나는 오늘 변기를 고칠 용기를 탑재했고 성공적으로 교체 수리 작업을 마쳤다.

2025년이 며칠 남지 않은 현 시점, 막막한 현실이 눈 앞에 잔뜩이지만

이 모든 것들을 하나씩 용기내어 마주하면

분명 다 해법은 있을 것이다.


2026년에 도입하기 전, 고장난 변기로부터 좋은 선물을 받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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