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취과 튜터링이란? (上)

새삥이(?) 마취과 레지던트 초기 수련과 교육

by 시카고 최과장

마취과가 하는 일은...

외과 의사나 지나가는 다른 의료진들이 옆에서 곁눈질로만 본다면, 매우 쉬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쉬워 보이는 이유는, 마취과 의사의 많은 경험에서 나오는 효율적인 움직임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Easy_Peasy_Lemon_Squeezy.jpg Easy Peasy Lemon Squeezy!

그러나 모든 마취과적인 행위가 매우 쉬워 보이게 만드는 경지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그로 인해 차곡차곡 쌓인 경험치가 일정한 수준 이상 되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이다.




예전에, 내가 아직 외과 인턴 시절에 마취과 레지던트 자리를 찾기 위해서 면접 인터뷰를 다닐 때였다. (Mayo 외과 인턴 시절)

내가 Westchester Medical Center의 마취과 레지던트 자리에 면접을 갔을 때였다.

(나는 이 병원 Westchester Medical Center의 마취과 레지던트 자리를 제안받고 수락해서 결국 마취과 수련도 이 병원에서 마치게 되었다.)

임상 마취를 총괄하던 Dr. Adkisson이라는 분이 아주 짧게 마취과가 하는 일에 대해서 언급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매우 적절한 언급이라 가져와 봤다.

당시에 나를 비롯한 레지던트 지원자들을 한데 모아놓은 자리에서 Dr. Adkisson 이 마취과 수련에 대해서 한 말씀하셨다.


Dr.Adkisson 왈,

"보통 내과의 응급 상황이라 하면 며칠 ~ 몇 시간 내에 해결되어야 하고...

보통 외과의 응급 상황이라 하면 몇 시간 ~ 몇 분 내에 해결되어야 한다"

"하지만, 마취과의 응급 상황이라 하면 초단위 내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마취과의 수련은 내과와 외과와는 전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

ESC+Logo-6.png

마취과 수련을 다 마치고 난 지금에 와서 봐도, 마취과 수련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한 적절한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마취과적인 응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에, 문제점을 빠르게 인지하고 해법 혹은 치료법을 즉시 시행할 수 있는 마취과 수행능력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상당한 시간과 수련의 공을 들여야만 갖출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마취과 수련은 당연하게도 내과 혹은 외과 수련과는 상당히 다른 결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미국 병원에서 새로운 레지던트들이 수련을 일제히 시작하게 되는 6-7월에는 새롭게 마취과 1년 차가 되어버린 레지던트들은 그전까지(내과 혹은 외과) 와는 전혀 다른 수련 과정을 거치게 된다.




보통의 미국 병원에서 마취과 레지던트는 인턴 시절에는 내과 혹은 외과 인턴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어서...

마취과와는 거의 상관이 없는 일들만 하면서 수련 첫 1년을 보내게 된다.

수련 2년 차 (=마취과 1년 차 레지던트)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수술방에서 마취과 레지던트로서의 수련을 받게 된다. 처음 마취과 1년 차로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 마취과가 하는 일이나 일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제대로 기능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Tutoring_Miscroscope_000.jpg


우리 병원에서는 새로운 마취과 1년 차 레지던트 1명 (=튜티, Tutee)에게, 2명의 튜터 (=Tutor)가 배정되게 된다.

한 명의 튜터가 2주일간 연속으로 1:1로 튜티와 수술방에서 같이 일하게 되고...

2주 후에는 또 다른 튜터가 튜티와 1:1로 같이 일하게 된다.


튜티 (=Tutee)는 갓 마취과 1년 차 레지던트가 된 사람을 지칭하고...

튜터 (=Tutor)는 마취과 전문의로서 어느 정도 입지가 확고하면서도 여러 가지 마취과 술기나 지식을 전달하고 가르치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이 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 한 명의 튜티는 한 달 동안 2명의 튜터 중 한 명의 마취과 전문의와 1:1로 수술실에 배정되어서, 마취과가 하는 일들을 차근차근 배워 나가게 된다. 이와 같은 한 달간의 특별한 과정을 튜터링 (Tutoring)이라고 부른다.



다른 병원에서는 이러한 튜터링의 과정을 다른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기본적인 개념은 같다.

내가 일하던 예전의 병원에서는 이 튜터링 과정을 'Preceptorship'이라고 부르곤 했다.

Preceptorship 이란, 경험이 많은 의료인이 경험이 부족한 신입 혹은 학생을 정해진 기간 동안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며 훈련시키는 과정을 말하는데, 보통 신규 간호사들을 교육시킬 때 많이 사용하는 단어이다.

Preceptorship_By_Successful_Coaches.jpg

이와 같은 Tutoring이나 Preceptorship 은 신규 의료인력들을 훈련시키면서도, 환자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효율적인 방식으로 여겨진다.

또한 이 튜터링은 지금쯤은 사라져서 완전히 없어졌기를 바라는 한국 병원에서의 '신입 의사 군기' 혹은 '간호사 태움' 같이 썩어 문드러진 관행과는 정반대 되는 개념이라 할 수 있고...

신규 인력이 좀 더 안전하고 부드럽게 의료 환경과 일의 흐름에 익숙해질 수 있는 안전장치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병원에서는 마취과 전문의가 1:1로 마취과 레지던트와 같은 수술방에 배정되어서 일하게 되면, 매우 비효율적이고 비경제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마취과 전문의 한 명은 최대 2명의 마취과 레지던트까지 지도 및 감독하여 수술방 2개까지 돌릴 수 있다. 마취 전담 간호사와 일할 경우에는 최대 4명까지 지도 및 감독하여 수술방을 4개까지 돌릴 수 있다.


미국의 마취 전담 간호사는 한국의 마취간호사와는 매우 다른 역할을 수행하며, 보통 마취과 레지던트와 거의 동일한 능력과 역할을 인정받고 수행한다.

(한국의 대학병원을 견학 갔을 시에 관찰했던 한국의 마취 간호사는...

마취에 필요한 약 혹은 물품들을 세팅해 주고 마취과 의사를 보조해 주는 역할에 머무는 듯했다.)


미국의 마취 전담 간호사는 CRNA (=Certified Registered Nurse Anesthetist)라고 불리며, 이미 간호사로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 일정한 요구사항을 충족하게 되면 2년간의 추가 정식 마취 임상 교육 (=CRNA School)을 받고 CRNA 가 된다. 미국의 CRNA는 마취과 전문의 지도 감독하에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마취과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CRNA_Logo.jpg

미국의 수술방에서는 적어도 한 명의 마취과 인력이 수술방 안에서 계속 킵 (=keep) 하면서 짱 박혀 있어야 하고, 누군가 다른 마취과 인력이 들어와서 대체를 해줘야 수술방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반면 한국의 수술방에서는 마취 간호사가 모니터링을 좀 해준다면, 간단하게 휴식을 취하러 나갈 수 있는 듯했다.


마취과 전문의가 레지던트나 마취 간호사 없이 수술방 하나에 틀어 박혀서 혼자서 수술실을 담당하는 것을 Soloing이라고 하며, 이것 역시 상당히 비효율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Solo_Star Wars.jpg


마취과 전문의가 soloing 하지 않는 이상, 하나의 수술실에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니므로 각 수술방당 한 명의 마취과 인력 (보통 레지던트 혹은 CRNA)을 배정하고 마취과 전문의는 수술방 여러 개를 전전하면서 자기가 담당하는 수술방들에 대한 마취를 총괄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그런 관점에서 마취과 전문의가 단 한 명의 레지던트만을 담당하게 되어 겨우 하나의 수술방안에만 처박혀 있게 된다면 매우 비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긴 하지만...

모든 것이 생소할 새로운 마취과 레지던트를 안전하고 단계적으로 마취과 업무로 소개 및 인도하고...

보다 부드럽게 마취과를 가르치고 수련시킬 수 있는 이와 같은 튜터링은 처음 마취과 레지던트로서의 역할을 배우게 되는 레지던트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으로 인식되고 그만큼의 투자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1:1로 배정된 새로운 마취과 레지던트 1년 차는 한 달 동안 전문의와 같이 일하면서 면밀히 관찰된다. 이 한 달 동안은 마취 계획 수립, 호흡관 삽입, 정맥주사 라인확보등을 중점적으로 교육받고 시행하게 된다. 이 한 달 동안은 Steep Learning Curve (=가파른 학습 곡선)이라고 칭해지는 기간인데, 빠르게 마취과적인 환경에서 일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Steep_Learning_Curve.jpg 가파른 학습 곡선

한 달이 지나 튜터링이 끝나갈 무렵에는 수술방에서 어느 정도 독립적으로 안전하게 마취를 수행할 수 있는지를 평가받고 , 통과하게 되면 수술방에서 당당하게 한 사람의 마취 의료진으로서 인정받고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튜터링을 졸업하게 되더라도...

마취를 유도하는 처음 부분과 마취에서 환자를 깨우는 마지막 부분에는 당연히 마취과 전문의가 수술실안에서 같이 있어주어야 하기는 하지만, 마취과정의 대부분을 스스로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해 나가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이 공평하지 않듯이...

지금 튜터링에 활발하게 관여하고 있는 나 자신아 마취과 레지던트로서 첫출발을 할 때에는...

이러한 훌륭한 튜터링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

그냥 수술방에 내던져 저서, 알아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해야 했다.



마취과 튜터링이란? (下)에 계속...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