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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복판 길막하고
자동차 경주 해보자!

나스카 시카고

by 시카고 최과장


이글의 제목을 듣고는, 많은 분들이 갑자기 오밤중에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하고 있냐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글 제목이 현실 그대로 시카고에서 몇 년째 실현되고 있다.


시카고로 이사 왔던 해의 첫해 여름에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시카고 시내 한복판의 큰 도로들을 길막하고 거기서 자동차 경주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누가 웃기려고 하는 소리인 줄만 알았다.


"하하, 정말 웃긴 이야기네... 어느 미친 넘이 대도시의 대로를 그냥 길막하고 거기서 자동차 경주를 해?'


그런데, 그게 진짜였다.



2023년 여름부터 올해 여름까지 매해 시카고 도심 한복판의 대로를 막고 진짜로 자동차 경주를 하고 있다.

자동차 경주가 벌어지는 실제 트랙을 시카고 시내 전경에 그렸을 때 아래와 같이 나타난다.


(빨간색 : 자동차 경주 트랙, 파란색 : 경주 방향, 노란색 : 시카고에서 가장 붐비는 거리인 미시간 에비뉴)

Nascar_Layout_Chicago_01.jpg 시카고 도심에서 남쪽을 바라보는 전경이다.

이 도심 한가운데 자동차 경주를 위해서는, 시카고 도심의 주요 도로의 상당 부분이 며칠 동안 완전히 막히게 된다. 그리고 그 주요 도로가 바로 내가 출퇴근할 때 주로 이용하는 LSD (Lake Shore Drive)이다.

나로서는 이 자동차 경주를 매년 한다고 할 때마다, 매우 당연하게도 쌍욕을 퍼부을 수밖에 없다.


대도시의 멀쩡한 길을 길막하고 자동차 경주를 그곳에서 한다는 것이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일까?

두개골 안에 우동사리가 얼마만큼 들어 있으면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해 낼 수 있을까?


이러한 일이 시카고에서 발생한다는 것은, 시카고가 그만큼 대도시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뉴욕이나 서울과 같은 교통체증이 심한 대도시에서 멀쩡한 큰 도로들을 길막하고 자동차 경주를 한다고 상상해 보자.

혹시나 그것을 언론에 발표하고 홍보하는 현장이 있었다면, 그 도시의 시장은 바로 그 자리에서 산채로 씹어 먹힐 것이라고 내가 장담할 수 있다.




올해도 도심 길막하고 나스카 경주한다고 경주 며칠 전부터 시카고 도심 한복판의 주요 도로를 하나씩 막기 시작했다.

바로 아래 사진은 나스카 시카고 경주 3일 전에 대로를 막기 시작한 시점에서 구글맵을 캡처한 사진이다.

Pre_G_Map_00.jpg 자동차 경주 3일 전에 대로가 막힌 구글맵



그리고 대로를 길막하는 상황은 계속 진전되어, 바로 아래의 사진 파일은 나스카 자동차 경주 당일구글맵을 캡처한 사진이다.

워낙 많은 길이 막히는 바람에 다른 멀쩡한 도로들도 많이 막히기 시작했다.

During_G_Map.jpg 시카고의 주요 도로가 다 막혀 버려서 인근 다른 도로가 전부 정체가 되고 있다.


원래 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도심 한복판을 막고 자동차 경주를 하는 미친 행태를 비난하는 글이 주된 논조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올해는 좀 달랐다.

우리 집안의 2살 반 짜리 아이가 '빨리 차' (= 경주용 차)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고, 집에서 상당히 가까워서 처음으로 나스카 자동차 경주장을 방문해 보기로 한 것이다.


2살 반 짜리를 유모차에 싣고, 나스카 경주장까지 슬슬 걸어가 보았다.

거리상으로도 걸어서 가기에도 어렵지 않아서, 쉽게 갈 수 있었다.


도시 길목 곳곳마다 나스카 경주에 대한 홍보 포스터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었다.

Nascar_Street_Signs_00.jpg 가는 길목마다 나스카 경주에 대한 선전 간판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서, 고조된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경주가 벌어지는 곳 대로를 막아서 인지, 평소에는 잘 볼 수 없었던 거리의 한산함도 느껴볼 수 있었다.

평소에 보기 힘든 Lake Shore Drive 가 완벽하게 막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기도 했다.

Chicago_Empty_Street_Combo.jpg 평소에 많은 차가 지나다니는 도로가 텅 비어 있으니, 약간 신기하기도 했다.


완전히 막혀 버린 대로에는 커다란 트럭 및 트레일러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나스카 이름이 새겨진 트레일러와 트럭들도 대로에 세워져 있다.

Blocked_Stacked_Street_01.jpg 완전히 막힌 대로에는 커다란 트레일러들이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스카 경주장 입구에 도착했다.

Nascar_entrance.jpg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게 자동차가 입구에 전시되어 있다.


Near_Ascar_Entrance.jpg 나스카 자동차 경주장 입구에 가까운 곳에 있는 여러 가지 나스카 관련 차량들


경주시간이 거의 끝나갈 때쯤 방문한 데다가, 날씨가 너무 더워서 경기장 안에 유료로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철조망 밖에서 거의 자동차 경주 소리만 듣다가 돌아왔다.

Over_The_Fence_00.jpg 철조망이 쳐져 있는 바깥쪽에서 자동차 경주 소리만 듣다 왔다.




경기장에 들어가 보지 못해서 아쉬워서...

나스카 공식 기념품 샾에 가서 기념품을 몇 개 사 왔다.

Nascar_Blue_Bag.jpg
Nascar_Souvenirs_00.jpg
나스카 공식 기념 가방과 기념품을 구매했다.


기념품을 사진으로 모아서 찍는 과정에서 2년 반 정도 된 고사리 손도 사진 왼쪽 위에 잡혔다.


맨날 길막하고 난리 친다고 저주를 퍼붓던 나스카 경주 대회를 올해에는 처음으로 방문하고 경험해 보았다.

하지만 자동차 경기장에는 들어가서 보지 못해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는 했다.


그러던 와중에 나스카가 언제 다시 시카고로 돌아올지 불투명하다는 기사를 접했다.

(https://www.espn.com/racing/story/_/id/45771474/nascar-puts-brakes-2026-chicago-street-race-targets-2027-return)

원래 2023년부터 3년 계획으로 시카고에서 나스카 경주를 유치해서 올해 그 계약 기간이 끝나게 된 것이다.


도심의 너무 많은 도로들을 막아서 인지, 나스카와의 계약을 연장하는 것에 시카고 시에서 많은 부담을 느낀 듯하다. 아무런 고심도 없이 길막하는 줄 알았는데,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단 말인가?


시원섭섭하다는 느낌이 분명 이런 것일 듯하다.

나스카 경주가 떠난다고 하니 좀 아쉽지만, 막상 다시 돌아온다고 하면 시내 대로의 길막이 또 벌어져서 엄청 불편해질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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