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밖 백선생 Jan 18. 2023

탈고의 후유증

이래도 글을 써야 할까?

  중요한 원고를 탈고한 지 한 시간이 채 안 됐다. 이 시점에서 밀려오는 탈고의 후유증은 내가 이전에도 늘상 겪었던 후유증과 동일한 패턴을 보이고 있으므로, 한 번쯤 중간 정리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탈고를 하면 찾아오는 후유증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1. 몸살    


  마감 기한에 임박하여 정신없는 와중에 풀가동했던 몸들은 이미 여기저기 고장이 나고 있었던 바, 원고를 마쳤다는 상태를 정신이 자각하면 원고 스트레스로 마비되었던 내 정신이 신경을 느낀다. 망가졌던 내 몸들 이곳저곳의 신경을 느끼는 감각들이 정신세계 속을 비집고 들어오면서 절규한다.  

   "내 다리 내놔~~"

   "내 허리 내놔~!"

   "내 손목 내놔~!"

   "내 어깨 내놔~!"

   "내 머리 내놔~!"  


2. 위통  

  나 같은 학자나 작가, 혹은 기자처럼 글쟁이라 불리는 글쓰기 업을 가진 이들은 하나같이 공감하는 사실은, 글쓰기가 정신노동인 동시에 어마어마한 육체노동이라는 점이다. 마감 기일이 가까워질수록 글쓰기는 오히려 육체노동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몸이 안 움직여주면 절대 못 쓴다. 원고 기일이 임박할수록 이 몸이 어마무시한 갑질을 한다는 사실도 잘 안다. 머리는 어떻게 쓰라고 지시를 하지만, 몸이 파업을 하면서, 에너지 공급 협상을 제안할 때가 줄곧 있다. 밤낮으로 라면 끓여 위에 채워줘야 하고, 믹스커피를 쉴 새 없이 입에 물려야만 책상에 겨우 앉아주는 육(肉)의 갑질을 하는 고로(난 내 몸이 하는 이런 갑질을 육 갑질이라 부른다). 위통은 필수 후유증 중 하나이다. 


3. 체중 증가   

  2에서 설명한 몸의 육갑질은 몸에 지방의 축적을 지속적으로 용인하고, 이로 인해 체중을 자꾸 증가시키는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결코 반갑지 않은 손님을 대하듯, 이 켜켜이 쌓인 지방덩어리들에게 대놓고 눈치를 주지만, 이 지방덩어리들이 눈치 없기로 따지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하는 집단인 고로, 주인의 눈치를 예사로 무시하기 마련이다. 결코 눈치 볼 줄 모르는 이 지방질들은 천연덕스럽게 몸의 이곳저곳에 철썩철썩 잘만 붙어있다. 이 붙임성 좋은 지방질들의 싹싹함으로 인해 내 체중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시기도 바로 탈고 직전이라 할 수 있다. 


4. 우울증과 무기력감

  3의 이유로 탈고의 가장 큰 후유증은 바로 이 우울증과 그로 인한 무기력감이다. 뭔가에 매진해서 열심히 시간과 체력과 정신력을 바쳤거늘, 그 이후에 내게 남는 것이 아프고 못 생겨지는 몸이니, 이것이 정신에도 영향을 미쳐 허탈감이 저 우주까지 치솟는다. 여기서 오는 무기력감은 다시 우울증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후유증으로 인하여 탈고를 하고 나면 한동안 침대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몸 아프고 맘도 아프고, 맘 아프니 몸이 더 아프고, 몸이 안 이쁘니 맘도 안 이뻐지고, 이런 중에 정신은 점점 더 피폐해지고. 


이래도 글을 써야 할까?

매거진의 이전글 아이의 작아진 옷을 물려 입으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