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같은 이웃들1: 주연 선배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기말고사 시험 감독을 하는데, 배가 고프다. 배가 고프면 이상하게 주연 선배가 생각이 난다. 주연 선배를 알고 지낸 지가 어언 25년이 넘었다. 대학교 새내기 시절, 나보다는 내 단짝이었던 지연이랑 더 친해서 겹지인으로 알게 됐지만, 졸업하고 지연이가 타 지역으로 시집을 가버린 후에는 오히려 나랑 더 친해진 주연 선배이다.
올해 나이 54세인 독신남 주연 선배는 오랫동안 학원 강사를 하다가 코로나 시절에 학원 강의를 그만뒀다. 대전에서 학원 강사를 하긴 했지만, 꽤 알아주는 1타 강사여서 수입은 정말 좋았다. 나도 대학원 시절 아르바이트로 학원 강사를 한 2년을 하고 그만뒀던 것은 체력이 도저히 받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을 믹스하여 최고봉으로 후달렸던 학원 강사라는 직업은 내 건강을 너무나도 망쳤다. 나야 월급쟁이로 2년 있다가 그만둔 거였지만, 주연 선배는 대입 전문 단과 강사로 꽤나 유명세가 있었다. 20대의 나로서는 수입만큼은 정말 부러웠다. 그러나 그 수입을 위해 자신의 무엇을 내어주는지를 너무나 잘 아는 나였기에 넘사벽의 일을 하는 주연 선배가 잘 나가는 동문으로서 자랑스러웠다.
결혼 전 자주 볼 때에는 밥 잘 사주는 능력 있는 선배였다. 내가 결혼 후 다른 지역에 살면서 한동한 소식이 끊기긴 했지만, 주연선배를 오래 알고 지낸 사람으로서 선배의 사람됨이 진국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일단 성실하다. 본인 말로는 시골에서 너무나도 가난하게 자라서 대학부터는 자신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스무 살의 어린 나이에 경제적 독립이 당면 과제였던 주연 선배는 일찍이 학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주어진 일을 최대한 정확하게 해내려는 성실함이 몸에 배어있던 주연 선배는 수업 연구를 정말 철저히 했고, 내가 보기에는 정말 창의적인 면도 있었다. 내가 학부모라도 아이를 맡기고 싶을 만큼 정말 열심히 했다.
무엇보다 정확하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는 눈치가 탁월했고, 무엇보다 1타 강사답게 말하는 센스의 경지가 예술이었다. 말하는 직종으로 다분히 성공할 만했다. 내가 서른 살 무렵 남편과 썸을 타고 있을 때 상황을 이야기하면 남편 역시도 나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근거를 들어 조목조목 설명을 하면서, 내가 직진을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점을 조언했던 사람도 주연 선배였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이런 친구는 정말 주변에 둬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뭔가 복잡한 것을 냉철하고 정확하게 순식간에 정리하는 능력은 정말 탁월하다.
그러나 이러한 능력자가 못하는 딱 하나가 결혼이었다. 연애를 못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능력도 있고, 사람 맘을 읽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며, 소통 능력도 좋으니 몇 번의 연애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심장이 타들어가는 미친 연애. 대전에서 새벽 한 시에 수업이 끝나면 애인을 보러 그 밤에 차 끌고 서울로 달려가서 만나고 올 정도로 열정파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잘 안 됐다. 남의 아픈 연애사는 내가 밝힐 권리가 없으므로 일 단락하고, 나와 관련 있었던 사건만 언급을 하기로 한다.
나는 선배가 참 괜찮은 남자라는 생각이 들어 나의 고교 시절부터 가장 친한 친구를 소개해준 적이 있다. 서로 잘 만나는 듯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잘 안 됐다. 내 친구 쪽에서 선배가 무서워서 못 만나겠다며 내게 거절의 뜻을 살짝 내비쳤다. 당시 선배는 츤데레 근성이 있었다. 밖에서 돈 버느라 너무 후달리는 사람의 공통적인 기질이, 집에서 자신을 잘 받아주는 사람을 원한다. 따라서 '나 이렇게 까칠한데도 받아줄 수 있어?'와 같은 일종의 시험을 상대 여성에게 해보는 희한한 심리가 있었던 것이다. 선배의 입장에서는 그 시험만 통과하면, 자신의 '일부종사' 순정과 자신의 자산 모든 것을 그녀에게 올인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따라서 일부러 상대방을 툭툭 건드리면서 기분 상하게 하고, 가끔씩 짜증도 부려보고 하는 등 요상하게 상대방 여성의 맘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다.
서른 살 이쪽저쪽의 미혼 남녀들이 상대방에게 정서적 위안을 받고 싶은 것은 공통적인 심리이다. 따라서 한참 밖에서 일을 할 나이이므로, 데이트를 할 때만큼은 맘이 편안하고 위안받는 사람을 원하는 것은 남녀가 모두 같은 것이다. 그런데 '나 능력이 꽤 있는데, 나 결혼하면 내가 가진 모든 것 다 내 배우자 줄 건데, 내가 원하는 조건 딱 한 가지는 내 성질 받아주는 거야. 그거 할 수 있어?'라는 자세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태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놓친 좋은 인연들은 비단 내 친구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주연 선배는 그렇게까지 못되거나 무서운 사람도 아닌데, 지나친 위악으로 너무 고난도의 시험을 한 셈이다. 또한 안 갖고 안 하고 말지, 가진 것 갖고 유세하나 싶은 맘에 자존심이 상해버려서 떠나간 여성들에게는 뒤도 돌아보고 싫은 악연으로 기억할 수도 있는 것이다. 소개를 한 입장에서도 친구에게 너무 미안하여, 내가 다시는 누구 소개하나 봐라 하는 생각에 살짝 미운 맘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꽤 오랜만에 연락이 된 건 작년이었다. 종강을 하던 날 너무 배가 고픈데 갑자기 주연 선배가 생각이 나는 것이다. 근 십오 년 만에 배고프다고 밥사달라 전화했더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노은동 어느 음식점을 카톡으로 찍어준다. 역시 선배!
학원은 코로나 때 그만뒀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자신은 돈 벌려고 학원을 했지, 가르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좋아하는 일을 찾아보자는 맘에 모든 것을 청산하고 이것저것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고자 쑤시고 다녔다고 한다. 바리스타를 해볼까 하는 맘에 커피도 배워보고, 사진도 배워보고, 도자기도 구워보고... 그래도 아직 못 찾았다고 한다.
전화를 할 때마다 늘 어딘가 여행 중이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좋아하는 거 찾았네~ 여행!"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다들 시간 없고 돈 없으니까 못하는 것이지. 나만 여행을 좋아한다고 딱히 말할 수는 없을 거 같아서, 아직 좋아하는 것을 찾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
"그래도 백수이고 여행을 그렇게 많이 다녀도 계속 수입이 되니까 하는 거잖아. 보통 사람들은 그러 한두 달 하고 나면 후달려서 다시 일해야는데... 여하튼 가장 부러운 팔자요~ 난 언제쯤 그리 사나..."
나도 언능 이 어쭙잖은 근로소득의 굴레에서 빠져나와 안정적인 소득의 루틴을 만들어내고 싶지만, 어렵다. 게다가 책임질 애들이 셋, 아니 남편까지 넷. 언제 여유로워지나... 하기야 내가 남편과 연애하고 결혼해서 행복하게 애들 키우며 살 때 그 시간 동안 불철주야로 너무나 열심히 살았던 데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누리고 있는 거겠지.
학원 강사 오지던 시절은 연타로 있던 수업 때문에 쉬는 시간에 잠깐 내려가서 김밥 몇 개 집어먹고 올라오면서, '먹고살기 위해 일하는 내가 제대로 먹지를 못하네.' 하는 서글픔이 늘 있었을 것이다. 아마 강사를 하는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터. 하루 수업이 끝난다는 것은 내 허용 범위의 몇 배에 달하는 말을 뱉어내고 온 탓에 내 육체와 정신이 소진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럴 때 동료 강사들과 맵고 칼칼한 음식에 술 한 잔 하면서 속을 혹사시키기도 했을 터. 돌아가면 강의 준비 때문에 또 뭔가 만드느라 계속 머리를 혹사시켜야 했을 터. 그런 모든 시간들을 열심히 살아낸 덕에 백수로 여유롭게 여행하며 다니는 지금의 시간을 만들어 냈을 터. 그래서 참 부럽고 존경스러우이!
결혼 안 해서 아쉬운 거 없냐는 질문에 선배가 답한다. 결혼 안 해서 불편한 건 없는데, 공허한 것은 있다고 한다. 여행을 워낙 좋아하는 선배는 좋은 풍경을 봤을 때 같이 그 풍경을 보고 좋아해 줄 사람, 맛있는 거 먹을 때 맛의 품평을 함께 해줄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런 게 없어서 공허하다는 것이다. 그 외에 결혼 생각은 전혀 없다고 한다.
"선배 누구 소개하려고 해도 예전에 친구한테 한 것처럼 또 그럴까 봐 소개 못하겠어."
"그땐 일하느라 까칠했지만, 지금이야 스트레스받을 게 없는데 설마 또 그러겠어?"
맞다. 지금은 전혀 안 그럴 것 같은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일단 예전에 비해 눈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표정도 자연스럽고. 편안하다는 증거이다. 이미 홀로 익숙해진 독신남이다 보니 누구와 결혼해서 산다는 모험도 하기 싫은 나이가 돼 버렸다.
"결혼은 싫은데 동거는 해보고 싶어."
"선배가 누구랑 같이 산다는 게 뭔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난 이별이든 사별이든 혹시 내가 다시 혼자가 된다고 해도 절대 재혼은 안 해. 동거도 마찬가지. 연애만 하는 게 절대적으로 좋은 이유는 같이 만나서 좋다가 싸우는 일이 생겨도 각자 집으로 돌아가면 그동안 다시 감정이 정화돼서 보고 싶잖아. 그런데 낮동안 싸우다가 서로 도망갈 곳도 없고 계속 붙어 있어 봐. 더 꼴 보기 싫지.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산다는 모든 과정은 정말 있던 정이 떨어지면서, 기형적인 정이 생기는 과정이지. 나 같은 경우 아직까지 적응 못하는 게 남편 코 고는 소리거든? 결혼 전에 아마 알았더라면 절대 결혼을 안 했을 거 같아. 이런 거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습관으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습관들까지 함께 부딪치면서 설거지를 했느니 안 했느니를 갖고 먹고 치울 줄도 모르느니, 바닥에 양말은 왜 벗어놨느니, 화장실 갔다가 바로 치우려고 했다느니, 화장실 옆이 세탁함이 아니느니, 자기 전에 씻느니 안 씻느니... 그런 거 가지고 하나하나 부딪치면, 내가 사랑했던 사람에 대한 정나미가 뚝뚝 떨어지면서, 어느 순간 이런 싸움이 없으면 허전한 이상한 정이 생긴다니까~ 여하튼, 여행 같이 다니고 밥 같이 먹으러 다니는 것은 좋지만, 사는 것은 따로 사는 게 나을걸? 선배 성격에는."
"일리가 있다. 내가 우리 옆집을 하나 사주고 거기서 살라고 해야겠다."
"좋은 생각!"
독신자들의 일상이나 그들의 생각은 권태기의 나와 남편을 돌아보는 좋은 거울이 된다. 저들이 가진 것이 내겐 없고, 저들이 아쉬워하는 게 내겐 있다. 그러나 모든 거울이 그렇듯 저들의 오른쪽은 우리의 왼쪽이며, 우리의 오른쪽은 저들의 왼쪽이다. 독신자들과 기혼자들의 필수적인 간절함과 부수적인 아쉬움이 조금씩 다른 것이다. 주연 선배에게 경제적 능력은 필수적인 간절함이었으되 결혼은 부수적인 아쉬움이었을 것이다. 아마 지금도 그럴 것이다. 나에게는 결혼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필수적인 간절함이었지만, 경제적 능력은 부수적인 아쉬움이었던 것이다. 지금 필수적인 간절함을 이룬 상태에서 부수적인 아쉬움이 충족이 된다면 스스로 꽤 멋진 인생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주연 선배는 두 가지를 탐색하고 있다. 하나는 '진짜로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여행과 맛집을 함께할 짝꿍'이다. 나 역시 두 가지를 탐색하고 있다. 하나는 '경제적으로 후달리지 않는 정도의 여유로움'과 '세 악기가 나름의 멋진 실내악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가끔씩 탐색의 과정을 격려하며 배고플 때 밥 사달라고 연락할 수 있는 선배가 있다는 지금의 현실도 조금은 멋진 인생이라 위안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