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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희 Apr 26. 2024

초등학생 주주(Shareholder)의 특별한 서울여행

초등학생 주주도 주주총회에 참석하여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나는 여행을 정말 좋아한다. 여행이 주는 낯선 환경과 예상에서 벗어난 돌발적인 상황이 나를 즐겁게 하기 때문이다. 여행은 육체적으로는 피곤하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여행했을 때의 고생은 돌이켜보면 너무나 즐거운 추억이다. 여행지에서의 고생의 기억은 미화되어 더욱 오래 남는 재미난 추억이 된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다녀오면 매번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여행은 일상을 낯설게 하며, 때문에 여행 후에는 더 활기차게 나의 일상을 맞이할 수 있다. 나는 이번 육아휴직 중에 가능한 한 우리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의 기회를,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리라 다짐했다. 그래서 육아휴직의 시작을 동남아 한 달 여행으로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2024년 3월 22일 금요일, 둘째 아이와 아주 특별한 여행을 했다. 작년에 아이들 이름으로 주식계정을 만들어주면서 이벤트로 받았던 주식 중 한 기업에서 주주총회 참석장이 왔다. 주주명은 성현수, 둘째 아들의 이름이었다. 의결권수 1주. 주주총회 장소는 서울이었다. 당연히 가지 않을 생각이었으나, 현수에게 주주총회가 무엇인지 알려주기 위해 주주총회 참석장을 보여줬다. 그런데, 현수가 가보고 싶단다. 현수야.. 서울인데..? 


하지만 나는 곧 한국의 워런 버핏을 꿈꾸는 현수에게 주주총회 정도는 부모로서 보여줘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주주총회에 가는 김에 지난번 서울여행 때 가보지 못했던 국립중앙박물관이랑 청와대까지 가볼까? 또다시 나만의 신나는 여행계획이 착착 세워졌다. 예전 회사에 같이 근무했던 후배와 그녀의 아이들까지 동원하여 거의 9년 만에 친구까지 만나는 일정으로 해서 현수와 1박 2일 서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평일에 학교를 결석하고 가는 거라, 학교에 교외체험학습 신청서를 제출했다. 교외체험학습의 목적지는 서울이었고, 활동내용은 '주주총회 참석'이었다. 음.. 매우 있어 보이는(?) 체험활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외체험학습 활동명 : 주주총회 참석

주주총회가 아침 10시라 전주에서 아침 6시 반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에서 새벽에 일어나 쌌던 김밥을 같이 먹고 가는 길에 오늘 주총 대상 기업에 대한 리포트를 찾아 보여줬다. 아이가 보기엔 어렵지만 이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 정도는 알고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설명했다. 엄마가 열심히 설명하는 것에 비해 생각보다 아이는.. 관심이 없어 보였다. 하긴 PBR이나 PER을 초등학생이 어떻게 이해를 하겠어? 그냥 경험해 보는 거지..  


여유롭게 출발한 덕에 주주총회장에는 9시 10분쯤에 도착했다.  회사관계자의 배려로 나는 주주도 아닌데 현수와 같이 주주총회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주주총회는 처음이라 나 역시도 기대가 컸다. 회사가 준비한 감사보고서를 보면서 현수에게 재무제표 보는 법을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재무제표를 보니 성장성이나 재무건전성이 좋은 회사였다. 배당도 꾸준하게 지급되어 왔다. 현수에게 배당의 개념을 설명해 주니 눈이 반짝거린다. 주주총회 시작 전, 회사 관계자가 현수를 신기하게 보면서 질문을 하셨다. '무엇이 궁금해서 왔어요?' 현수가 부끄러워서 대답을 못하자 그분은 주주총회가 무엇인지 현수에게 자세하게 설명해 주시고 가셨다. 그날 주주총회에서는 결산보고 외에도 대표이사선임건과 감사선임건, 이사와 감사보수한도 승인 등 굵직굵직한 안건들이 올라왔다. 해당 안건들에 대해서는 주주총회 전 현수에게 미리 설명해 주었다. 현수는 이 날 기업경영의 주요 의사결정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직접 보았다. 아이는 주주총회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주주총회 회사 앞, 주주총회장 내에서 , 주주총회 끝나고 회사 카페에서 차 한잔하면서 (2024.03.22)


주주총회가 끝난 뒤, 회사 관계자분이 다시 찾아와 먼 길 오는 데 고생 많으셨다고 감사하게도 차를 대접해 주셨다. 현수와 차를 마시면서 나는 대접받은 찻값이 회사 주가와 비슷해서 '현수야 이 기업 주식 한주 더 살까?' 물어봤다. 현수는 자신의 생일 선물로 해당 기업의 주식을 조금 더 사달란다. 그러더니, 내년에도 또 오고 싶다고 하였다. 내년에는 첫째 아이까지 세 명이서 삼성전자 주주총회도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 최고 기업의 주주총회는 어떻게 하는지 내가 더 궁금하기 때문이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 어떤 부모는 돈을 물려주고 싶어 하고, 어떤 부모는 아이들에게 직업을 물려주고 싶어 한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와 부모와 함께 하는 추억을 물려주고 싶다. 나는 여행을 하는 매 순간순간 경험과 추억을 구매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까지 우리 아이들에게 예체능을 제외한 사교육을 시킨 적이 없다. 대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을 위한 지출은 늘 과감하게 해왔다. 엄마의 이런 마인드 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물론, 나의 남편은 내가 노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까? 부모와 함께 하는 추억이 훗날 아이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길 기대하며, 오늘도 나는 다음번 놀(?)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와
부모와 함께 하는 추억을 물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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