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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린 Jan 04. 2022

13살, 경쟁의 파도 속으로 뛰어들 우리 친구들아

6학년 담임을 마무리하며

학기 말이다. 1월 초에 졸업이니 진짜 6학년 우리 반과 헤어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볼이 빨간 어색한 얼굴로 3월에 만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나름 아이 티는 벗은 채 교복 입을 날만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니 담임은 뿌듯하기만 하다.



학기 말이니 오늘도 정신없이 생기부 마감을 하고 있는데,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는 거다. (정말 머리를 쥐어 짜내도 글이 안 나왔다.)


머리를 부여잡고 고민하다 문득 햇병아리 교사인 나에게는 낯설었던 교원평가를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의 서술형 답변을 쭉 읽어 보았다. (사실 교원평가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올해 특히나 아이들과 합이 잘 맞아서 그런지 예쁜 말로 칸들이 가득했다. 어깨를 으쓱이며 스크롤을 내리고 있는데 유독 눈에 띄는 문장들이 있었다. 바로


"어떻게 말하든 틀린 것은 없다 하시며 칭찬해주셨다.", "발표는 잘못된 게 아니라고 자꾸자꾸 말해주시면서 자신감을 주셨다.", "그래서 못해도 포기는 안 한다."였다.


교원평가


교원평가

올해 아이들에게 내가 더 강조했던 것들은 다른 것들이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위와 같은 이야기가 많이 나와서 놀랐다. 물론 항상 하는 말이긴 했다.


"우리 반에 틀린 것은 없어. 조금 기다릴 테니 발표를 안 해본 친구들도 이야기해보자."



학기 초 아이들을 zoom으로 처음 만났을 때 했던 이야기가 있다. 우리 반은 '30색 색연필반'이라고. 세상에 색깔이 하나만 있다면 예쁜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다양한 색깔의 색연필이 존재하기에 멋진 그림을 완성할 수 있는 거라고. 나도 어디서 들은 이야기에 숟가락만 살며시 얹은 거였는데 아이들은 그 이야기가 인상 깊었는지 우리 반 1년 급훈은 <행복하고 활기차며 사이좋은 무지갯빛 지상낙원 육사반>이 되었다.



학년 초에 했던 이야기가 학년 말 교원평가에서까지 언급된다는 것은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6학년, 머리가 커서 쭈뼛쭈뼛 여전히 발표를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아직 많지만, 우리 반의 발언권은 소수의 몇 사람에게 몰려있지 않다. 이건 교사인 나도 포함이라, 수업할 때마다 오디오가 겹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만 나는 이게 좋다. 내 수업이 살아있는 시간 같아서.


 


이렇게 장황한 사전 설명을 한 이유가 여기 있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며 생기부를 쓰고 퇴근한 후 나는 내가 평소 좋아하는 유튜버 <슈카월드>의 '믿기 어려운 글로벌 설문조사 결과-갈등이 만연한 사회'편을 보았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IPSOS의 글로벌 28개국 2만 3천 명 대상으로 한 '갈등에 관하여 (Culture Wars)'라는 설문조사에서 대한민국이 글로벌 갈등 개별 12개 항목 중 7개 항목이 1위를 차지하는 불명예를 얻었다는 것이다. 1위를 한 갈등유형에는 정당, 정치, 빈부격차, 남녀, 학력, 종교, 세대가 있었고, 나머지 갈등유형도 대한민국이 꽤나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상당히 충격적인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혐오, 갈등이라는 단어가 사회 곳곳에서 잘 보이기는 해도 사회적 갈등 정도가 이렇게까지 높다니.


 


왜 이렇게까지 한국 사회의 갈등 지수가 높게 나왔을까? 갈등을 해소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세계 10위의 경제력과 문화의 힘까지 나날이 강해지는 우리나라가 곪아있는 곳이 이렇게나 많다니. 그리고 이를 문제라고 의식하는 사람의 수까지 어마어마하다니.



이 설문은 우리 국민들이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현재 '지쳐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우리들의 목마름의 원인을 만연한 능력주의 맹신과 일상화된 경쟁에서 찾는다. 능력주의, 얼핏 들으면 상당히 합리적인 단어 같지만 함의되어 있는 의미는 그렇지 않다. 내가 이해한 능력주의란, ceo와 직원의 월급이 100배 차이가 나는 기현상을 구조의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못나서,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와 같은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는 것을 말한다. 심지어 그 '능력'이라 부르는 것은 운이나 후광 같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요소들로 점철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능력대로 평가받고 공정하게 보상받는 논리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의 함정을 놓친 우리는 야만적인 치킨게임에서 탈진하고 있는 것이다.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다는 원칙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능력주의가 모든 가치와 도덕, 윤리, 미덕을 넘어서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약자와 이러한 경쟁사회에서 낙오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안전망이 없는 능력주의는 또 다른 사회적 해악일 뿐이다. 너와 나의 다름은 내가 옳고 너는 틀림으로 이해되는 사회. 성공의 기준은 하나이고 모두가 그 욕망의 사다리에 달려드는 사회. 처음부터 3루에서 태어난 사람이 본인의 능력으로 3루타를 친 것으로 착각하는 오만한 태도가 바로 능력주의의 맹점이다.


 


능력주의의 핵심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교육 시스템 자체를 무한 경쟁과 시험으로 인한 자격자와 부자격자 갈라치기로 만들어 버린다. 그동안 우리 교육은 유능한 인적자원(human resources)을 키우는 데 온갖 공을 들여왔다. 그 과정에서 우등과 열등, 즉 서열이 발생하였고 학생들은 한 사람이기 이전에 사회의 훌륭한 부품으로써 인정받는데 12년을 바쳤다. 이때 엄청난 경쟁이 발생하게 되고, 19살에 한번 잘 본 시험으로 평생 떵떵거리는 이상한 사회가 된 것이다. 인생에 정답은 없건만, 아이들은 부모가 가리키는 방향만 정도라 믿고 의식 없이 걷는다. 학력, 집안, 재산이 나를 표현하는 모든 것이 되었고, 적자생존의 밀림에서 이긴 사람과 진 사람 모두 행복하지 않은 이상한 결과만 자꾸 반복됐다. 이 길이 맞다고 해서 인생을 걸었는데 왜 우리는 불행한가.


 


이 교육의 폐해는 이 교육으로 도출된 소위 엘리트들의 언행을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 나라의 교육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보이는 반지성, 몰상식, 미성숙, 파렴치를 보면 우리의 교육이 처절하게 실패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과연 한 명의 성숙한 인간, 책임 있는 자유인, 민주시민을 기르는데 우리 교육이 얼마만큼 기여했는가. 그동안 대한민국 교육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기품을 가르치는 데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학교는 작은 사회다. 교대에서 리포트를 쓸 때 버릇처럼 많이 썼던 문장이다. 처음에 교실에 들어왔을 때 나에게 학급을 운영한다는 것은 사공이 많은 배의 선장이 되는 것과 같았다. 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계급, 갈등, 질서, 규칙이 어렵고 버거웠다. 그런데 어느새 정신을 차리고 1인분은 하게 되니 교실을 작은 사회로만 비유하기에는 미처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실에는 아이들 사이의 사회생활과 어른이 만들어 놓은 규칙과 질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각기 다른 30개의 세계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의 역할은 선봉대에 서서 아이들을 끌고 가는 선장이 아니라 30개의 각기 다른 개성의 우주를 가꾸는 정원사였던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틀린 것 없다. 서로 다름을 존중해라. 누구를 짓밟고 올라가는 대신, 너로 오롯이 존재해라. 숫자와 공식의 줄 세우기 말고 행복과 나눔을 먼저 배워라. 나도 학창 시절에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아니 지금도 듣고 싶다. 우리 사회에는 이런 목소리를 가진 어른이 너무 적다.


 


다시 돌아가자. 왜 우리 반 아이들은 별 것 아닌 '틀린 것 없다'는 문장에 반응한 것일까? 그동안 나처럼 이런 말을 들어본 기회가 적었던 것이 아닐까. 내가 기다렸던 것처럼 이런 말을 해주는 어른을 기다렸던 것이라고 감히 예단해본다. 졸업을 앞둔 지금, 아이들에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고 싶다.


 


13살, 이제 본격적인 경쟁의 파도 속으로 뛰어들 우리 친구들아. 너희들의 생각은 틀린 것 없단다. 너희의 모양은 모두 다르고 너희들은 지난 일 년동안 각기 다른 총천연색 무지갯빛으로 빛나며 우리 반을 밝혀주었단다. 세상이, 어른이 그 방향은 아니라고 해도 너희들이 자신 있고 확신이 있다면 너의 길을 가렴. 불의에 저항하고, 옳지 않은 것에 분노하며, 남과 교감하거라. 경쟁에 눈물 짓지 말고, 너 자신을 믿으렴. 그럼 찬란한 너만의 세상이 열릴 거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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