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한긍정윤쌤 Dec 10. 2023

빚을 졌으니, 글로 갚으리라

은행 모기지보다 더한 압박감, 글을 내놓으란 그녀들의 애정

슬초브런치2기 스머프. 지난달 말에 열린 오프라인 모임날, 부산에 빠질 수 없는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가지 못했다. 정말 아쉬웠지만 한편으로는 생각보다 대규모 모임에 환장할 소심함 때문에 어리바리할 것이 자명하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나 오프라인 모임 후. 단톡방의 친밀도는 더욱더 높아만 갔고, 브런치에 글도 못 쓰겠고 단톡방에 말도 못 걸겠는 나는 그저 큰 바위 저 아래쪽 그늘진 데에 붙은 파란 이끼처럼 단톡방 구석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그게 싫었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았다. 방장님과 열혈 멤버들의 티키타카는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했다는 소식들도 올려주시면 들어가 읽으며 울고 웃고 배우고 반성하며 글을 안 쓰느라 작가도 아닌 채로 서성이는 나에게 훌륭한 자극제가 되었다.     


그러다 며칠 전, 다정한 스머프 멤버들이 단톡방에서 음료 선물을 날리기 시작했다. 랜덤으로 선물을 주는 스머프 아닌 산타와도 같은 선행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졌다. 몇 번을 허탕으로 ‘에이, 나는 변두리 멤버니까’ 했는데, 어머나 세상에! 나에게도 음료 쿠폰이 당첨되는 행복한 행운이 찾아왔다.


선물을 기억하며 캡처해 놓고 몇 번이나 들여다본다. 나는 확신의 I.


슬초브프2기, 스머프 강지원(아이두) 작가님. 왜 저에게 이런 선물을...? 저는 이유 없이 무언가를 받는 삶에 익숙지가 않아요. 주면 주었지, 받기만 하고 입을 싹 닦는 것은 저의 삶의 모토가 아니랍니다. 아.. 아아아... 이를 어쩐다. 나도... 무언가를 되갚아야만 한다...!     


한 달 반 동안 새 글을 발행하지 않았던 나의 초라한 브런치가 생각이 났다. 글을 쓸 공간이 생겼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머리가 복잡해 글을 발행하지 않았다. 11월 한 달은 오후-저녁의 본업 이외에 오전에 시간제 강사일을 하게 되어 몸도 마음도 너덜너덜했고. 12월이 되고선 아이들 잘 다니던 수학학원을 정리하고 집공부를 시킨다고 가을 벼처럼 탈탈 나를 털고 있다.


몸과 마음이 여유로 가득한 이들만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이런 것들은 다 핑계다. 스머프의 단톡방을 가득 채우는 열정과 다정이 넘치는 동기 작가님들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다. 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가족들 챙기고, 수많은 사연들 속에서도 꿋꿋이 쓰시는 작가님들을 보면 글을 쓴다는 것이 미루고 미루다 가물에 콩 나듯 해내야 하는 일이 아님을 알게 된다.     


내가 글을 발행하지 않았던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아직까지도 나는 겉멋에 빠져있다. 그럴싸한 소재, 멋진 글솜씨, 화려한 필력, 그리고 폭발적인 구독자들. 이런 외적인 조건들이 충족되지 않을 바에야. 초라하게 나만 쓰고 나만 볼 글을 뭐 하러. 이제야 고백건대. 같이 시작한 스머프 작가님들이 브런치 에디터픽에서 다음 메인에 걸리며 조회수, 라이킷 수, 구독자수를 폭발적으로 늘려가는 모습에 아무도 주지 않는 눈칫밥을 혼자 퍼먹고 있었다. ‘에이, 내 글 따위...’     


누구의 글이든 초고는 쓰레기랬다. 우리 스머프의 나반장님도 주야장천 ‘글 내놓으라’ 독려하시며 강조하는 말씀이고, 나를 브런치 작가로 데뷔시켜 주신 이은경 작가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으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톨스토이 할아버지도 그러셨단다. 그럼 아직 아무 이름도 갖지 못한 나 따위의 글은, 쓰레기인 것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은가.

     

그런데 마침 아이두 작가님에게 다정한 응원의 마음 가득한 음료 한 잔을 깜짝 선물로 받아버렸다. 이를 어찌 갚을까. 나도 쿠폰선물 이벤트를 해볼까. 아... 약간 식상하지 않은가. 지난주에만 우리 단톡방에 선물이 대여섯 건은 오고 갔는데. 선물도 주고 답도 주는 스머프 단톡방의 열혈 작가님 한 분이 답을 주신다.     

 

“당첨됐으면 글 쓰셔야 합니다.”     


세상 다정한 마음 써 봄 작가님, 저에게 왜 그러시나요... 아하하...



앗! 이것은 너무도 가볍고도 무거운 보상 아닌가. 나도 뭔가 그녀들의 위장을 채워줄 따뜻하거나 달달하거나 둘 다인 그런 것을 보내드리고 입 싹 닦고 싶다, 차라리. 글을 쓰라니... 저는 그거 정말 힘든데요. 심지어 에너지 충전 중인 방장님도 뜨셨다. 글 내놓으란다. 


나반장님, 쉬실 때 충분히 쉬셔야 하는데... 저 때문에 강제소환 당하시게 해 송구합니다...


아니, 이분들이,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아니고 봉이 김선달이 “너 대동강 물 퍼마셨냐? 그럼 돈을 내놓으셔야지!” 하는 것보다 더 당당하시다. 그런데 이건 또 뭐야. 홀린 듯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낯선 모습.     


언제까지나 타인의 응원과 호의에 기대어 글쓰기를 지속할 수는 없겠지. 새벽마다 글쓰기를 독려하시는 멤버도, 동기들이 발행하는 글마다 애정 가득한 라이킷과 정성 어린 댓글을 남기는 멤버도. 나는 아무도 몰래 나 혼자만 굉장히 애정하며 의지하고 있지만. 결국 글쓰기는 나만의 것. 고독한 순교자가 순례길을 말없이 걸어가듯 결국은 오롯이 나의 수고로움으로 빚어내야만 하는 것.


그래도 오늘 굉장히 오랜만에 글을 쓰고 수차례 읽고 다듬고 결국은 발행 버튼을 누른 모든 과정은, 물속 깊이 고요히 침잠한 나를 위로하고 떠밀어 뭍으로 올려 보내준 그녀들의 숨결이 나의 글로 그저 기록된 것일 뿐이다. 감사한 마음으로 다음 글을 쓰고 발행하는 조만간의 내 모습을 생각해 본다. 게으르고 나약한 나의 글쓰기도 누군가에게 응원의 손길이 되기를. 받은 대로 돌려주는 오늘 나의 따뜻한 글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무한하게 긍정적인 삶을 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