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프피 탈출하기 시리즈 prologue
X프피 라는 별칭이 생길 정도로 남들이 별나다고 하는 내 MBTI는 INFP다.
나는 INFP를 탈출하고 싶었다. 왜냐, 그 이미지가 싫었다.
미디어에서 다루는 INFP가 가지고 있는 소위 '찌질한' 이미지가 싫었다.
INFP는 감상적이서 잘 울고, 공상에 곧 빠져들어 현실을 외면하기 일쑤이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힘들어 하고, 적극적이지 못하며, 감정적이라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워하며, 계획적이지 못하고 완벽주의 성향에 비해 미루고 미루는 게으름 뱅이여서 제 일을 못하기도 한다고.
사람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MBTI를 먼저 물어본 적은 없었다. 누가 물어올 적엔 조금 망설이며 INFP라고 답했다. 어느날은 바뀌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검사를 다시 한 뒤에 INFJ로 나온것을 확인하고 앞으로 난 INFJ로 살아가리라 믿고 그렇게 대답했던 적도 있었다. 단지 남을 속이는 기분이 들고 싶지 않아서 나를 속인 것이다. 솔직하게 답한다고 했지만 내가 원하던 모습에 가깝게 대답했던 질문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MBTI에 관심이 많아서 어떤 답을 하면 좀 더 내가 원하는 결과에 가까울지 정도는 가늠을 할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난 안다. 내가 INFP라는 거. INFP라고 나를 그 정의에 가두긴 싫지만 일단 16가지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그것이 맞다.
아직도 이 글을 쓰면서 INFP에 대한 인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의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미 나는 의식하고 있다. 최대한 INFP답지 않은 INFP를 보여주고자 하는 생각. 여러분의 인식이 부정적일 것이라고 너무 단언하고 말하는 것 같아서 반발심이 들 수도 있다. 최소한 내가 INFP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부분을 더 의식하는 건 어쩔 수 없을 거라고 이해해줬으면 한다.
방금 말한 문장은 INFP라서 원래 그래. 라는 의미의 말이 아니다. 단점을 보완하고 싶은 건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며, 완벽하고자 하는 욕구는 끝도 없다. 비로소 처음에 바라던 완벽에 가까워졌을때 느낄 수 있는 것은 더 완벽한 것의 존재. 그래서 완벽해지겠다는 강박보다, 내 단점을 줄이고 내 강점을 어필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때부터 나에 대해 기록하고 이해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그 출발이다. 앞으로는 기록한 것들을 풀고자 한다.
나는 INFP라는 대명사로 치환될 수 있는 인물이지만, INFP 그 자체는 아니다. 나는 나다. MBTI를 좋아하지만 그것은 도구로써 사람을 이해하는 데에 아주 좋은 도구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지, 내 곁의 사람들을 재단하고 분류하기 때문은 아니다. 나는 MBTI로 사람을 정의하는 것을 몹시 경계함과 동시에 MBTI를 가장 자주 활용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MBTI가 유행하기 시작했을때, 사람들은 그랬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어! 라고. 나도 같은 감정이 들었다. 나같이 유약하고 복잡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몇 퍼센트의 비율로 이 세상에 함께 존재한다니. 그 수치 만으로 위로받는 기분이 들었다. 나만 이상한게 아니었구나. 처음엔 나를 설명해주는 이 네글자가 신기해서 나무위키를 밤새워가며 읽고 블로그를 뒤져 해석을 보곤 했다. 해설지가 없던 나라는 문제집에 어렴풋이 답은 없지만 공식정도는 알려주는 답지가 생긴 느낌이었다. 읽고 공감하고 빠져들고 공유하고 놀라고 며칠을 그것만 찾아보며 지냈던 것 같다. 이때까지만해도 나를 대신 설명해주는 게 있어서 내가 모르던 나의 본질적인 내면을 보게 된 것에 즐거웠다.
그리고 바깥으로 시선을 돌려, 사람이 제일 어려웠던 나는 사람들을 16가지에 분류해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모든게 단순해졌다. 온 세상 사람이 이 열여섯가지로 정의된다니! 정말 쉬워진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대할 때마다 고민되고 어려웠던 인간관계에 공통으로 적용될 무적의 공식을 갈망하던 내게는 엄청난 혁신이었다.
MBTI를 알기 전까지 나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모든 것은 '나'가 기준이었다. 내가 생각했을 때 나쁜 것은 남들도 나쁜 것이고, 좋은 것은 남들도 좋은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그렇게 살다가 나랑 다른 기준을 가진 사람을 마주하면 금세 모든 것이 혼란스럽게 어지러워지며 리셋 되었다. 남에 대해 알기보다 나를 기준으로 하는게 더 쉬워서였을 것도 있을 것이고, 남의 기준이라는게 별 다른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있었던 안이한 생각 때문이었다.
이사람은 이런 성격, 저 사람은 저런 성격 하며 일일히 새로운 사람을 사귈 때마다 새로운 성격의 데이터 베이스가 추가되지만 통합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사소한 점으로 공통점을 묶어봐도 곧장 다른 점들로 인해 풀어헤쳐지기 일쑤였고 가지가 너무 많아서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16가지, 2개의 양극단이 4개의 카테고리로 총 16가지의 경우의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을 묶어 분류할 수 있다니! 드디어 인간관계에서 정답에 좀 더 가까워진 기분이 들었다. 사람을 대하는 데 마음도 편해지고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별 생각 없이 넘길 수 있게 되고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폭이 아주 많이 확장되었다.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부도덕한 행위가 아닌 한,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하는 생각은 해본지 꽤 오래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MBTI는 자기소개의 필수요소로 자리잡았다. 아이스브레이킹 소재로 무조건 MBTI가 나온다. MBTI에 대한 정보가 많아지고 어떤 유형에 대해 사람들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이용해 사람을 재단하는 사람이 생겼다. 반대로 이런 점을 이용해서 자신의 MBTI를 속여 말하는 사람도 생겼다.
나도 전자 후자 둘 다 되어봤다. ENFP는 이래야지 하며 내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의 것들을 요구하거나, INFP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이미지가 싫어서 INFJ라고 말하고 다닌 적도 있었다. 내가 INFP라는 것을 들으면 아닌 것 같다며 놀라는 사람들의 모습에 기분 좋아하기도 했다. 나름 즐기기도 했다. 부정적인 이미지를 많이 가지고 있는 덕에 그런 인식을 깨고 다른 모습을 보이면 그게 더 극대화 되어 보이기도 했으니까. 그걸 즐기다 보니 INFP를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INFP가 아니면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하다보니 자기 부정이 되어 몹시 힘들었다. 나에게 좋지 못한 것을 깨닫고, 검사결과인 INFP 유형으로부터의 탈출보다 미디어가 보는 INFP로부터의 탈출을 해야겠다 마음 먹었다. 모두가 알던 INFP의 모습을 깨고 성숙한 INFP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시간이 지나며 원하는 페르소나에 다가가갈 수 있게 된 내가, 어쩔 땐 ENFP같고 어쩔땐 INFJ 같고 어쩔땐 ISFP 같은 내가 되는 모습을 그리며. INFP 탈출하기 시리즈를 써볼까? 생각했다.
16가지로 내 페르소나를 확장해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일까. 나는 더 많은 모습을 가질 수 있고 더 솔직한 한 명의 내가 될 수도 있다. 앞으로는 어떤 것이 나에게 건강한 방법인지 찾아갈 것이다. INFP 탈출하기 시리즈는 개인적이면서 공통적인 지점들을 캐치하고 교정해나가는 내 성장 과정이 될 것이다. 건강하지 못한 과정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해결되었던 것은 어떻게 된 것인지. 이미 다른 곳에 적어둔 기록들부터 앞으로 쌓아갈 기록까지 모두!
나랑 같은 INFP라는 유형을 가지고 한 때는 자신의 유형을 원망하고 자책하고 부정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그런 점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나아가 어떤 모습이 되고 싶은지를 고민하는 데에 이 시리즈의 글이 도움될 거라 확신한다. INFP가 아니어도 인간관계에 대해 고민이 많고, 내적 탐구에 열정을 쏟는 이들이라면 읽어도 좋다. 매주 월요일, 목요일 연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