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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뜨거운언니 Dec 25. 2023

뜨거운 언니가 되다.

배달을 시작하게 된 계기

 국밥집을 하면서 온라인 채널 구축 및 확장을 하기 위해 배달을 시작했다. 매장 판매만을 고집했던 엄마와의 마찰도 적잖이 있었다. 하지만 꾸준히 설득해 시작을 했고, 깃발 1개(광고 1개)만으로도 배달이 기본 7개 이상 들어왔던 것을 생각하면 꽤 잘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배달을 시작하고 프로그램과 시스템에 대한 호기심이 점점 들기 시작했다.

 배달 시스템은 사실 간단했다. 손님이 배달의민족 프로그램으로 주문하면 가게에서 주문 전표를 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음식이 완료되면 배달 대행 프로그램을 통해 기사님을 부를 수 있었고, 그게 어려우면 주문 확인과 동시에 정해놓은 시간 내로 자동으로 기사님을 배정받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배달의민족 프로그램이나 배달 대행 프로그램을 쓰면 쓸수록 내가 볼 수 없는 내부 시스템이나 기사님들만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 궁금해졌다. 당시 국밥집 단골 중에는 배달 기사님이 많았는데 친해지면서 좀 더 속 깊이 물어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다가 라이더로 등록해서 배달 한 번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까지 받게 되었다. 그날 이후로 퇴근 후 엄마 몰래 배달을 시작했다.

 장사는 늘 같은 공간에서 단순 반복적인 일을 해야 했기에 배달은 도피처 같았다. 배달 하나를 하면 하나의 퀘스트를 깨는 것처럼 강렬한 성취감도 들었다. 출퇴근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핸드폰으로 프로그램을 켜는 그 순간이 출근, 끄는 그 순간이 퇴근이었다. 그만큼 차곡차곡 배달 라이더 프로그램에 돈도 쌓였다.

 그리고 라이더 프로그램을 쓰게 되면서 배달 대행 내부 시스템을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가게 사장님들은 배달 대행 프로그램 가상계좌에 배달료를 선입금해야 한다. 선입금 액수는 자율이지만 어차피 배달이 많이 들어올수록 배달비도 많이 나가기 때문에 너무 적게 해놓으면 자주 입금해야 하는 귀찮음이 생긴다. 그래서 사장님의 성향이나 가게 규모에 따라 선입금 액수는 다양했다.

 배달이 들어와 라이더가 배달을 가게 되면 거리당 금액이 프로그램에서 자동으로 책정된다. 라이더는 원하는 배달을 선택할 수 있는데 이걸 전문용어로 ‘콜을 선택한다’라고 말한다. 이런 콜 선택 과정에서 먼저 올라온 배달이 아니라 본인 위주로 편한 콜만 골라타는 사람들을 흔히 ‘콜을 가려 탄다’라고 해서 관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콜 선택 후 배달을 완료하면 건당 캐시로 라이더 프로그램에 적립되며, 적립된 캐시는 연결해 놓은 계좌로 바로 보낼 수 있다. 가게 일이 워낙 힘들고 지쳤었기에 자주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차곡차곡 돈이 쌓인다는 것이 정말 재밌었다. 

 그러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가게를 접었다. 마음의 힘을 잃어 다른 일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취미처럼 하던 배달을 조금씩 시간을 늘리며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당시엔 아무 생각 없이 노동해서 벌 수 있는 일이 필요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람과 만나는 것도 싫었기에 도로 위 혼자 있는 시간이 참 좋았다.

 하지만 라이더 생활은 짧았고, 영업부장직을 맡게 되며 관리자 프로그램까지 배우게 되었다. 배달대행 업계에 여성은 희소했기에 가맹점 영업을 하는데 강력한 인상과 부드러운 이미지를 남길 수 있다는 조언을 바탕으로 영업부장을 맡으며 관리자 프로그램을 받게 되었다.

 관리자 프로그램은 라이더 프로그램보다 조금 더 복잡했다. ‘관제’라고 해서 라이더들의 위치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통해 모든 상황을 파악해 관리해야 했다. 피크 타임에 안 빠지는 콜들이 잘 빠질 수 있게끔 근처에 있는 기사님 코스를 파악해 배정했다. 그래도 안 빠지는 소위 말하는 ‘똥콜’(금액은 적은데 거리가 멀거나 험한 곳)은 관리자의 몫이었다. 배달하던 중에도 기사님들이 콜을 잘못 잡거나 사장님이 콜을 잘못 올리거나 하는 자잘한 문제들도 처리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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