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타이틀은 내가 만든다
배달 대행을 하면서 이 일만의 특이한 점들이 몇 가지 알게 되었다. 그중 하나로 배달 대행은 생각보다 ’플랫폼 사가 자주 변경된다‘ 라는 거였다. 대행사마다 개인 플랫폼을 가지기란 돈과 시간이 많이 투자되고 힘든 일이었다. 그래서 대형 플랫폼에서 프로그램만 대여해서 쓰는 형태가 대부분이었다.
배달대행사는 지사가 있고, 그 위에 지부가 있고 또 그 위에 지역 허브센터가 있다. 하지만 보통은 플랫폼과 연결된 지사로만 이루어진 작은 대행사가 더 많았다. 지사들은 플랫폼 사와 계약을 맺어 프로그램을 쓰다가 종종 다른 플랫폼 사로 갈아타기도 했다. 플랫폼 사를 바꾸는 이유는 다양했는데, 대체로 위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거나, 다른 플랫폼 사로부터 더 좋은 제안을 받았거나였다. 내가 소속한 대행업체의 대표님도 이러한 이유로 플랫폼을 바꾸게 되었는데 이와 함께 이름을 ’뜨거운 형제들‘로 바꾸게 되었다. 그걸 보면서 나 또한 ‘뜨거운 언니들‘을 꿈꾸게 되었다.
배달 대행은 여성의 성비가 타 직업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요즘엔 여성 기사님들도 많아졌지만, 당시엔 300:1 보다 적을 만큼 여성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뜨거운 형제들‘이 생길 무렵 ’뜨거운 언니들‘도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해보니 점심시간, 저녁 시간 말고 사이사이 시간 활용하기에 좋았고 자유로운 일이기에 아이를 기르는 엄마들도 틈틈이 할 수 있었다. 심지어 잠시 번 돈으로 아이들 간식값은 벌고도 남았다.
그리고 배달을 갔을 때도 같은 여성이라 더 안심하고 편안해하는 분들을 많이 보면서 충분히 사업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성 라이더 자체가 귀했는데 이 부분을 타개하기 위해 현실적인 부분들을 고려해야 했다.
첫 번째로 라이더라고 하면 오토바이만을 생각하는데 여성분들은 오토바이에 대한 거부감이나 두려움이 컸다. 그래서 차량 배달 기사도 포함시켰다. 아무래도 차량 배달은 시간이 늦는다는 인식 때문에 가게 사장님들 중 싫어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하지만 신호체계나 도로 상황상 차로 배달해도 별 차이가 없는 지역에서만 차량을 배치하여 차량도 빠른 배달이 가능함을 인지시켰다. 그리고 단체배달이나 지리적으로 차량이 필요한 가게에서 차량 기사님들의 도움을 받으며 여성 기사님의 인식이 더욱 좋아졌다. 그리고 여성 기사님들의 친절함과 성실함은 그야말로 타의 모범이 되었다.
두 번째로 고민해야 했던 부분은 접근성이었다. 이 일과 관련 없이 지내 온 사람들이 주로 남성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직업에 선뜻 나서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내가 중간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사실 여성 성비가 낮은 직종에서 남자들 사이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불편함을 동반했다. 그 중 대표적인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화장실이었고 또 하나는 담배였다. 보통 남성분들이 99퍼센트라 배달 대행 사무실에서 화장실이 남녀로 나누어져 있는 경우는 없었다. 아무도 가지 않을 때 타이밍을 잘 맞추어 화장실을 다녀와야 했다.
그리고 흡연. 나를 빼고 모두 흡연자였기에 사무실은 늘 연기로 가득 차 있었다. 비흡연자 배려로 내가 사무실에 있으면 모두 밖에서 나가서 피셨는데 그게 죄송해서 불편하기도 했다. 그래서 여성 라이더 전문 배달 대행으로 브랜딩하기로 마음먹은 후 사무실을 따로 알아보게 되었다. 사무실 이용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세 번째로 고려한 사항은 육아하는 여성들의 일자리 창출이었다. 아이를 기르다 보면 애가 갑자기 아프거나 여러 가지 집안 사정 때문에 일을 며칠씩 쉬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키울 땐 돈이 많이 드는데 그렇다고 일할 형편이 따라주는 것도 아닌 아이러니한 상황이 대다수다. 물론, 내 육아맘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출퇴근이 자유로운 프리 기사를 주로 뽑았다.
이런 노력 덕분에 ‘뜨거운 언니들’을 시작하고 많은 사람들이 지원했다. 차량 기사부터 프리기사 그리고 라이더까지. 세계 최초 여성 라이더 전문 배달 대행 ’뜨거운 언니들‘은 이렇게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