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화강고래 Oct 24. 2024

가끔 해야 감동이지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32

"추파춥스 두 개를 00이 책상 위에 두고 나왔어."


남편이 식탁에 앉으며 말했다.


곧이어 학원에서 돌아온 딸아이 손에 과자 두 봉지가 들려 있었다.



"무뚝뚝은 아빠 꺼고, 롤리폴리는 엄마 거예요."

"그럼 네 건? 안 샀어? 잘 먹을게. 고마워.

 마침 아빠도 작은 선물 준비하셨던데. 방에 가봐."

"사탕이네요! 잘 먹을게요!"


이런 게 딸과 아들의 차이인가?

그냥 엄마, 아빠 생각이 나서 집에 오는 길에 샀다며 과자 한 봉지씩을 선물로 줬다. 자식이 사주는 과자를 얻어먹는 부모가 되다니! 사실 처음은 아니다. 딸아이는 과자를 사면서 가끔 우리 간식을 사 왔지만 이번에는 자기 용돈을 써가며 부모 것만 사 왔다. 


혹시, 지난 주말일 때문일까? 일명 패딩효과라고 남편과 둘이서만 그리 부르고 있다. 겨울 외투를 사줬더니만 며칠째 자기 딴엔 고마움을 표시하는 중 인 듯하다.  


딸아이는 3년 만에 패딩 한 벌을 얻었다. 


매년 5-6센티씩 꾸준히, 작년에는 10센티가 훌쩍 커버린 아들은 어쩔 수 없이 해마다 패딩을 샀다. 비싼 건 아니어도 매년 아들만 사줬다. 아들과 달리, 딸은 키가 눈에 띄게 크지 않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변함없이 같은 패딩을 입었다. 성인도 아닌 성장기 아이가. 그것도 오빠한테 물려받은 패딩을.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때 산 패딩은 겨우 한 철 입고 버리기엔 너무 아까워 세탁해서 고이 걸어두었다 딸에게 입혔다. 어느 순간 핑크와 연보라 공주에서 블랙 시크한 소녀로 자연스레 취향이 변하자 입히기가 수월했다. 남녀구분이 크게 없어 아들이 입어도 딸이 입어도 손색없는 무난한 검정 롱패딩이었다. 큰 저항 없이 딸이 잘 입고 다녔는데, 올 겨울이 다가오면서 약간 고민했다. 크니 안 크니해도 딸아이도 140센티가 넘었고 이제는 오빠 패딩에서 구출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냥 입히라는 남편을 설득해 딸아이 패딩 한 벌을 사줬다. 아웃렛 매장 전면에 걸려 있는 패딩이 눈에 들어와 입어보라고 권해줬다. 키즈와 성인 사이즈 중간에 낀 애매한 상태라 옷 사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눈에 든 패딩은 성인 옷이었지만 잘 어울렸다. 입자마자 행복한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넘 맘에 들어요. 좋아요! 좋아요! 이걸로 사고 싶어요!"


그렇게 겨울 옷 한 벌을 기분 좋게 사줬다.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를 몇 번이나 물어보면서도 사고 싶은 눈치였다. 

몽클레어도 아니고 그에 비하면 참으로 검소한 가격표를 달고 있었어도 딸아이에게는 어쩌면 명품 패딩보다 더 큰 만족과 값어치가 풍기는 옷이었다. 매년 다양한 디자인의 옷을 별생각 없이 사줄 수 있는 부모가 아니라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날 이후, 어서 빨리 추워져 입고 나가길 기다리고 있다. 잊지 않고, 우리에게 고마움을 표시한다. 짜증이 줄고, 웃음이 늘었다. 숙제도 알아서 하고, 무엇보다 상냥하다. 패딩 효과가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며 어제도 오늘도 우리 부부는 웃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덕분에 집안이 따스하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자주 먹으면 질리고, 멋진 장소도 자주 가면 감동이 떨어지듯, 모든 게 그런 것 같다.

부족한 걸 채워줄 때 감동이 치솟고 훈훈한 감사의 기운이 오래 남는다. 자식이 사주는 과자도 어쩌다 사주니 고맙고 기억에 남듯이, 뭐든지 "가끔" 찾아올 때 일상의 행복도가 높아진다는 걸 오늘도 깨닫는다. 알면서도 새삼스럽게 배운다. 

작가의 이전글 아들 학교에 다녀온 소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