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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화강고래 Nov 04. 2024

자연은 생각거리를 준다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239

설거지할 때마다 눈인사하는 친구가 있다.


"언제 크지? 아직 그대로네. 죽지는 않았어."


딸과 함께 물을 줄 때도, 혼자 줄 때도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지난 4월, 학교에서 딸아이는 방울토마토 씨앗을 심고 관찰하는 숙제를 받아왔다. 마감 기간이 다가왔지만 이렇다 할 성장이 보이지 않았다. 씨앗 5개 중, 4개가 흙을 뚫고 나와 떡잎을 보여줬다. 친구들 것은 꽃피고, 열매가 열렸다며, 자신의 토마토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아쉬워했다.


"늦게 자랄 수도 있지 뭐. 주인 닮아서 그런 거 아냐?"


볼 때마다 딸아이처럼 천천히 자라는 중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쑥쑥 자라 열매를 맺지 않아도 그저 존재만으로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푸른 잎 몇 장으로 생명이 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힘들고 지칠 때 어떻게든 버티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대견해 보였다. 지나친 감정이입 탓도 있겠지만, 어쨌든 백 마디 말보다 눈을 정화시켜 주는 푸르름이 좋았다. 몇 주 전부터 쑥 컸다. 훤칠하게 키가 크고 푸른 잎을 여러 개 달고 자라고 있었다. 5형제 중 둘 만 남은 듯,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었다. 보통 계절에 상관없이 따뜻한 베란다 같은 곳에서는 겨울에도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쉬운 식물이라는데, 우리 집 아이는 자기 속도로 자라는 듯하다. 거름도 없이 물만 마시면서 혼자힘으로 자라고 있다.


방울토마토





산책길 탄천에서 철쭉을 봤다. 피식 웃음과 함께 얼른 사진으로 남겼다.


제정신이야? 지금 꽃필 때야? 봄인 줄 아는 거야? 계절 감각을 잊었구먼!


이런 말들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나조차도 그런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으니까. 단풍과 낙엽이 주인공인 가을에 봄꽃이 웬 말인가 싶었다.




자연의 정해진 순서마저도 흔들리는가 싶었다. 기후위기 결과물로 인식하기보다는 오히려 신선했다. 도드라졌다. 우수수 떨어지는 단풍대신 분홍빛 꽃을 피우고 있는 자태가 자신감과 독립심으로 빛나는 듯했다.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기후변화의 이상사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으면서도 이런 생각을 한다는 자체가 스스로 낯설었다.  


획일적, 다수가 아닌 개인을 보았다. 타인의 눈치나 대중의 압박에서 자유로운 삶을 봤다. 남들과 다른 생각이 창의성의 씨앗을 키워 혁신의 꽃을 피운다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인재상이 떠올랐다. 인공지능, 각자도생, 브랜드파워, 일명 송길영 작가가 명명한 "핵개인의 호명사회"까지 스스로 창조하는 개인의 모습을 읽었다. 


남들이 하는 대로, 평범한,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살아온 내가 진작 깨닫지 못한 점이 보였다.


튀는 것을 싫어하지만 관심은 받고 싶었다. 공부를 잘하면 자연히 부모와 학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학교 밖을 나가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황의 시간이 길어졌다. 스스로 꽃 피우는 법을 몰랐기에 정해진 기간 내에 공부를 끝낼 수 없을 거라는 우려 때문에 가던 길을 멈춰 섰다. 이제와 돌아보니 30대 초반은 늦은 나이가 아니었고 그만큼 나에 대한 굳건한 믿음도 부족했다. 자신의 꿈을 위해 N수생이 되는 길을 택하고, 전공을 찾아 이것저것 시도해 보는 젊은 층을 볼 때 시대가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를 실감한다. 


각자 성장하고 열매를 맺는 시간은 다르다. 자기 자신으로 살 자유와 용기가 필요하다. 

이제라도 용기를 내서 살라는 메시지 같았다. 늦은 만큼 조급해말자고. 언젠가 내 꽃을 피울 수 있을 거라는 희망회로를 돌려본다. 스쳐 지나가는 생각과 느낌을 공개적으로 글로 남기는 행위조차도 내게는 생각지 못했던 용기 있는 변화된 모습이다. 하루아침에 뚝딱 클 수 없는 느리고 꽉 막힌 나지만, 성장하는 중이라는 것을 쓰면서 새기고 또 새긴다. 반복적인 각인만큼 효과적인 것은 없으니 자기 최면을 걸며 자유롭게 걸어가는 사람으로 살겠다고 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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