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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산책

아침 단상으로 글쓰기 습관 348

by 태화강고래

보행신호를 기다리며 잠깐 서 있는데 유독 햇살이 눈부시고 따사롭게 느껴졌다. 낮에는 살짝 덥게 느껴지는 가을이라 챙겨 입은 팔랑거리는 얇은 바지 속으로 온기가 전해지기까지 했다. 유난히 그렇게 느낀 건 오래간만에 집중하며 책상 앞에 서너 시간 앉아있었기 때문일 거다.


거실 창을 바라보도록 모니터가 놓인 책상에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창을 통해 햇살이 나를 비춰준다 해도 집안에서는 한계가 있다. 계획한 온라인 수업을 다 듣고 나서 기지개를 켠 뒤 후다닥 대충 점심을 먹고 밖으로 나왔다.


머릿속만 움직이는 듯, 몸은 정지상태로 집중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차가운 얼음처럼 굳어버리는 몸을 자주 풀어줘야 한다. 가능하면 탁 트인 열린 공간에서. 모든 사물이 함께 얼음땡놀이를 하는 것처럼 고요한 집안을 벗어나니 바깥은 역시 모든 게 살아 움직였다. 이제 그만 좀 쉬라고, 멈추라고 말해야 싶을 정도로 저마다의 속도로 숨 쉬고 있었다. 한두 번 산책을 나온 것도 아니고, 색다른 풍경도 아닌데 왜 갑자기 익숙한 풍경에도 불구하고 설레었을까?


탄천길을 따라 언제나처럼 성큼성큼 걸으면서도 눈으로는 주변을 살폈다. 탄천의 물은 콸콸 흐르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흰새는 노란색 구두를 신은 것처럼 눈에 확 띄는 두발을 들어 올려 날아올랐다. 푸른 잎은 바람에 산들거리고 노랗게 변한 잎들도 많이 보였다. 뿌옇게 반쯤 감겼던 두 눈은 어느새 제대로 떠졌다. 탄천에 발을 담그고 쉬는 여성도 보였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 보니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나 공원과 도서관이 보였다. 나른한 오후 공원은 편안한 쉼터가 되어 지나치며 바라만 봐도 흐뭇했다. 탄천, 공원, 도서관이 근처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복잡한 서울에 살지 않고 자연친화적인 경기도에 사는 특권이 아닐까 싶다. 아무도 못 듣는 감사인사를 하고 개운해진 몸과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딱 한 시간, 나를 살리는 오후 산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날이 있다. 별 거 아닌 일에 감동받고, 또 그런 느낌을 굳이 남기고 싶은 날이. 그래서 짧은 느낌을 남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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