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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희 Apr 04. 2024

우리들의 문화 살롱

전시 보러 가는 길


평생 일과 인간관계에 치이다 퇴직하고는 폼 좀 잡고 멋지게 살고 싶었다. 한낮에 여유 있게 맛집을 찾아다니고 분위기 있는 카페에서 우아한 대화를 나누며 가끔 음악회와 전시회에 다니는 상상을 하며 고된 직장생활을 했었다.


퇴직한 지 일 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부스스한 머리로 아침을 느긋하게 먹고 잠옷으로 밤새 입은 수면바지를 한낮에는 평상복으로 입고 사는 털털함과 여유로움 그 어디쯤에서 살고 있다. 소파와 한 몸이 되어 TV 드라마를 정주행 하고 있는 나를 누군가 보면 볼품없는 백수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나름 폼 잡고 사는 날도 많다.


오늘은 미술관으로 전시를 보러 가기 위해 아침부터 눈에 섀도우로 분위기 좀 내보고 입술에 연핑크로 색을 입혀본다. 작년 비슷한 시기에 퇴직하게 되어 시간부자가 된 지인들과 좋은 전시를 선택해서 미술관으로 나들이하며 우리만의 문화 살롱을 즐기는 날이다.

 

요즘 국내 좋은 전시들이 많이 열려 미술관 다니는 게 퇴직하고 누리는 기쁨 중 하나다. 아쉬움 점은 좋은 전시가 대부분 서울에서 개최된다는 점이다. 차창 너머로 끝없이 펼쳐지는 벚꽃의 향연과 낮은 담장 밑에 활짝 핀 개나리 꽃의 노오란 물결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작년부터 같이 그림을 배우고 있는 언니의 핸드폰 속 그림을 보니 언니의 봄이 실제 봄보다 화사하고 아름답다.  


알맞은 온도와 도심으로 찾아온 봄꽃 때문에 이맘때 전시 보러 가는 길은  다른 계절보다 즐겁다. 지난달 얼리버드로 예약해서 할인된 가격으로 좋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어 우리의 취미는 비싸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럽고 우아하다.



북유럽 미술

오늘 전시는 서울 삼성역에 위치한 마이아트 뮤지엄인데 스웨덴 국립 미술관 컬렉션인 북유럽 작가들의 그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새벽부터 황혼까지 - 스웨덴 국립 미술관 컬렉션’ 전시다.

마이아트뮤지엄 '스웨덴국립미술관'

북유럽 하면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 행복한 국민, 아름다운 대자연, 가보고 싶은 나라란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실제 북유럽 미술을 접하진 못했다. 더욱이 인상주의 하면 프랑스의 모네, 고흐, 르누아르, 드가, 마네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화가들이 먼저 떠오르다 보니 북유럽의 인상주의는 좀 낯선 느낌이 든다.


북유럽 인상주의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그들만의 방식으로 자연 속 풍경과 일상생활을 다루는 작품들을 그리면서 독특한 인상주의 화풍을 만들어냈다.

안나 보베르크  '3월 저녁'
닐스 크뤼게르  '할란드의 봄'

안개가 낀 듯 희뿌연 그림이나 실내 생활을 그린 작품이 전시에서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아마 햇볕이 들지 않는 북유럽의 기후가 만들어낸 풍경을 담아냈기 때문인 것 같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스웨덴 국민화가인 칼라르손의 그림과 함께 북유럽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41명의 화가 79점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다.

한나파울리 '아침식사 시간'

칼라르손(Karl Larsson, 1853-1919)은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활동한 스웨덴의 화가이며, 북유럽 인상주의 운동의 대표 화가 중 한 명이다. 는 주로 일상생활을 소재로 그림을 그렸고 그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투명하고 화사한 수채화가 떠오른다. 또한 그는 스웨덴 가구회사로 명성이 높은 IKEA에 영감을 준 화가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칼라르손 '전원'

그의 작품은 인물과 공간을 세밀하고 자연스럽게 그려내 자연주의적인 북유럽 인상주의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는 같은 화가인 카린 베르게와 결혼해 8남매를 두었고 그의 아내와 함께 그린 작품들은 따뜻한 가정의 이미지를 잘 담아내고 있다.

칼라르손, sewing girl 1911


칼라르손의 그림을 보니 소중한 가족을 만들어 가는 부부의 모습에 마음이 따스하고 뭉클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없이 행복함을 느낀 북유럽 화가들의 전시를 보고 미술관을 나오니 따뜻한 날씨에 야외 테라스에 삼삼오오 커피 마시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미술관 뒤편에 있는 일본식 식당에서 간단하게 식사하고 커피를 마시며 우리들만의 문화생활을 즐기며 하루를 보냈다.  


취미가 같아서 한 달에 한 번 전시를 보고 좋아하는 화가와 그림 이야기를 하는 우리들의 문화 살롱! 다음엔 무슨 전시를 보게 될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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