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미국 아닌데
지난주 새로운 A 주재원분이 정식 발령을 받아 사무실에 출근하셨다.
나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에게 현 주재원 B보다 훨씬 인간적으로 잘 대해주셨기 때문에 모두가 A의 주재 발령 소식에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A를 잘 따랐던 한 멕시칸 동료가 있어
"너 좋겠네 A가 다시 와서!" 라며 A가 도착하는 날 장난을 쳤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야.. 걔 오늘 해고됐다는데?"
"어? 한 시간 전에 나랑 장난치면서 인사했는데?"
여기 미국인가?
당일 해고는 미국 같은 노동시장이 유연한 선진국에서만 일어나는 줄 알았다. 일단 다른 한국 회사를 다니는 한국인들에게 이런 해고 문화가 있다는 것은 듣지 못했기도 했다. 입사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은 나에게는 그저 충격이었다. 한국에서 정규직으로 근무해본 적이 없기에 한국 상황은 잘 모르지만 모두가 납득할만한 근거 없이는 해고가 쉽지 않다고 알고 있다. 멕시코는 업무적으로의 적당한 사유가 있으면 3개월치 기본급을 제공하고 해고가 가능한 것 같다.
왜 당일 해고를 했을까
내가 다니는 회사는 소위 '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이 회사 경력이 있으면 '거기 다녔으면 잘 배웠겠네'하면서 모두 인정을 해주는 곳이다. (정말 변태 같이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는 곳이랄까?)
문제는 최근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잘 훈련된 직원들을 더 좋은 조건으로 빼가는 중국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돈 부족할 것 없는 중국 회사에게 체게 잘 잡힌 곳에서 잘 훈련된 직원들을 더 좋은 조건으로 스카우트하는 횟수가 너무 많아졌다. 이런 경우가 잦아 정보 유출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당일 해고를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다.
나도 혹시 저렇게?
아무리 한국 회사라도 현지 노동법을 따르다 보니 '이런 방식으로 해고가 가능하구나'라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이처럼 하루아침에 해고될 수 있는 유연한 근로 문화는 남아 있는 직원들에게는 '나도 하루아침에 저런 처지가 될 수 있어'라는 경각심과 '저렇게 안 되려면 어떻게 할까'와 같은 동기부여를 심어줄 수 있기에 회사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라고 생각이 든다.
정말 그날의 분위기는 적응이 안 된다. 한두 시간 정도는 모두가 충격을 받고 조용히 속닥속닥 뒤에서 얘기를 하지만, 곧바로 모두 담담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며 자신의 업무에 몰두한다.
오늘도 그들이 떠난 빈자리를 지나가며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어떻게 이 회사에 기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