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으니 May 10. 2024

운동화의 시대



바야흐로 운동화의 시대이다. 이젠 정장에도 스커트에도 운동화 신는 게 자연스럽다. 몇 년 전만 해도 치마, 정장엔 구두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운동화는 캐주얼한 차림에 어울리는 것이라 여겼는데 이젠 아니다. 최근에 아끼던 구두를 몽땅 의류 수거함에 넣었다. 이젠 신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덕분에 신발장이 널널해져서 속이 후련하다.


구두와 짝꿍이었던 스커트와 원피스도 정리했다. 좋아하고 즐겨 입던 옷 스타일은 이제 내 몸에 너무 불편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게 됐다. 예전엔 예쁘기만 하면 발도 몸도 불편한 것쯤이야 괜찮았는데 이젠 신발도 옷도 예쁘고 편한 것이 좋다. 그래서 요즘 내가 빠져있는 것이 바로 운동화다. 운동화가 있는데도 계속 사고 싶다.


운동화의 인기가 얼마나 높은지 내가 사고 싶은 운동화는 전부 리셀가로 사야 한다. 국내에선 구할 수 없어서 해외직구로 사야 한다. 배송받기까지 오랜 인내가 필요하다. 당장 사지 않으면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구매하고 나면 물건이 도착하는 동안에 마음이 식어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 휙휙 뒤집히는 마음을 알기에 되도록 구매 버튼을 누르기까지 수없이 고민한다.


아식스 조그나 젤 시리즈, 뉴발란스1906, 993, 530, 2002. 아디다스 스페지알, 나이키 코르테즈, 에어맥스 등등. 그중 가장 핫한 브랜드는 아마 아식스이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아식스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이 브랜드가 언제부터 이렇게 대세가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뭐든 단정하고 깔끔한 걸 좋아해서 운동화도 주로 스니커즈 스타일만 선호했는데 요즘 아식스와 뉴발란스에서 나오는 휘황찬란한 운동화가 너무 예쁘다. 아디다스 스페지알과 나이키 코르테즈는 색깔별로 모으는 사람도 많다. 


어쨌든 문제는 옷 스타일 별로 어울리는 운동화가 종류별로 있으면서도 운동화가 계속 사고 싶다는 것이다. 운동화를 사고 나면 그에 어울릴만한 옷을 보고, 그러다 또 운동화를 보고. 정말 의미 없는 짓 하고 있다는 생각에 스스로 한심해진다. 생각은 TV나 유튜브 광고 화면으로 보던 어려운 이웃들에게까지 미쳐 죄책감에 빠진다. 나는 이내 ‘이 운동화 한 켤레 값이면…’ 하고 인터넷 창을 닫는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느끼는 건 역시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었다는 것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같은 스타일의 옷만 입기로 유명하다. 블랙 터틀넥에 리바이스 청바지 그리고 뉴발란스 992 운동화. 페이스북의 저커버그 역시 옷장에 회색 티셔츠만 스무 벌이 있다고 말했다. 미니멀리스트를 추구하는 사람들도 옷장에 흰색, 검은색, 회색 등 기본 스타일의 옷으로만 정리하고 옷을 고르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줄인다고 말했다. 운동화에 꽂혀 쇼핑 삼매경에 빠져있으면서도 실로 공감되는 말이었다. 필요한 걸 사야 할 땐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닌데도 물건 고르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쓰는 이 몹쓸 욕망은 좀 이겨내고 싶다. 어차피 그렇게 산 것들이 그리 오래 만족을 주지 못했다는 걸 수없이 느껴봤으니까.


그렇다고 나도 나만의 시그니처 룩을 만들어 옷이나 신발 따위에 시간과 에너지 쓰는 일 없이 평생 살 자신은 없다. 계절마다 마음에 드는 옷이 나오면 그 옷들을 사고 싶고 입고 싶다. 그에 맞는 예쁜 운동화도 신고 싶다.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 즐거움을 포기할 순 없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적절히 소비해야 우리나라 경제가 활발하게 돌아갈 것이 아닌가.


암만 그래도 요새 운동화 가격이 너무 비싸다. 연예인이 신어서, 패션 유튜버 추천 등의 이유로 가격이 훌쩍 뛰어 리셀가로 사야 하는 운동화는 신고 다닌다 한들 금이야 옥이야 세상 불편하게 신고 다닐 것이다. 마음에 드는 운동화는 끊임없이 나올 테고. 그러니까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는 지금 운동화가 충분히 많고 지금 당장 운동화를 또 사야 할 어떤 마땅한 이유도 없으니 이제 그만 마음 접으라는 다짐을 하기 위해서다.


어쨌든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제값에 구매하기 힘들어진 건 너무 아쉽다. 2023년 기준 네이버 계열사 리셀 플랫폼인 크림(KREAM)은 상반기 거래액이 7,200억이고 해마다 늘고 있다고 한다. 리셀 테크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서 리셀 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리셀 열풍이다. 나는 굳이 웃돈을 주면서까지 원하는 걸 갖고 싶진 않다. 일시적 만족감일 테니. 음, 나 지금 좀 구구절절한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