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양병원 봉사를 시작하다.
퇴직 후 나는 코치로의 길을 출발했다.
경험이 없어, 들어주는 이 없어 자신의 문제에 사로잡혀 막다른 골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들어주고, 나눠주고, 손 잡아 주고자 코치의 길을 선택했다.
코칭의 기회가 많지 않아 그리 바쁘지 않은 일정이지만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해 계속해서 공부하고 동료 코치들과 스터디하는 삶이다.
이 또한 내가 기꺼이 선택하는 삶이다.
이제 생업에서 퇴직하여 시간도 여유도 있는데 급할 것이 무어 있겠는가?
천천히 배움을 즐기면서 가면 되지.
"내 것인 줄 안 모든 것이 선물이었다."라는 고 이어령 선생의 말씀은 후반기 인생에 들어서 나에게 어느 순간 인생의 좌표가 되었다.
내 안의 목소리는 주변을 돌아보라, 그것이 내가 진짜로 내 삶을 사는 것이다며 속삭인다.
이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코치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도움이 필요한 우리 사회의 누군가를 위해 산다고 선택한 코치의 길에도 채워지지 않은 무언가 공간이 있다는 생각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코치로서 아직 자리잡지 못하고 코칭일이 많지 않아서일까?
코치로서의 길도 꾸준히 가려고 하지만 지금 내가 한 살이라도 젊은 날에 몸으로 하는 봉사를 해야 할 때라는 확신이 들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더니 그즈음 서류 한 장을 발급하러 간 동네 행정복지센터의 방문이 나를 생각에서 행동으로 이끈 결정적 만남을 주선했다.
일을 마치고 성남시소식지를 집으로 들고 가 찬찬히 읽던 중 인근 노인전문병원에서 봉사자를 모집한다는 소식란이 눈에 띄었다.
그래! 바로 이거다. 어린이를 위한 봉사든, 장애우를 위한 봉사든, 노인을 위한 봉사든 뭐든 시작해 보자.
노인 봉사.
그것도 좋겠다.
어차피 나도 이제 노년에 접어들었으니 남 이야기가 아니다.
봉사자 교육을 신청하고 첫날 3시간에 걸쳐 교육을 받았다.
병원장의 간단한 인사말이 끝난 후 신경과 과장으로부터 치매 강의를 들었다.
치매의 정의와 원인(100여 가지나 된다), 그리고 증상에 대한 설명이다.
그에 따른 행동변화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어떤 것은, 특히 가벼운 증상과 행동의 변화들은 이미 내 나이의 사람들도 가지는 증상과 비슷하다는 사실에 놀랍다.
치매란 그것으로 들어가는 확실한 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처럼 누구나 서서히 접근하게 되는 인생의 길인가 보다.
자원봉사자로서의 주의사항, 환자를 대할 때의 상황대처등을 배우고 이제 본격적으로 각자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 휠체어 산책하면서 말벗해 드리기
- 면회가 어려운 가족들과 화상통화를 할 수 있도록 영상통화 연결해 드리기
- 음악, 미술, 웃음치료등의 전문가 활동을 옆에서 보조하는 활동
- 병원 데스크 입구에서 외래환자에 대한 안내 돕기
- 아로마림프 마사지
환자 목욕시키는 활동은 병원 소속의 전문 도우미가 따로 하는 것 같다.
방수포가 깔린 침대에 실려 목욕시설로 이동되는 노인들의 모습이 보인다.
욕창을 방지하기 위한 자세 바꿔주기와 대소변 처리는 24시간 한 방에서 기거하는
전담보호사의 몫이다.
다들 활동 선택에 고민이다.
또래의 나이로 보이는 옆자리의 여성이 말을 걸어온다.
" 처음이신가요?, "
그렇다는 나의 대답에 쉬는 시간을 이용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녀,
2년 전 7년간 치매로 고생하신 어머니가 돌아가셨단다. 이 봉사활동을 자원하게 된 동기가 어머니의 죽음이었고 지금도 후회와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아프단다.
살아 계실 때 더 자주 방문하고 더 많이 같이 있지 못한 것을 후회한단다.
그러면서 내게 하는 말 " 어머니가 살아계시다면 이 봉사활동 할 생각하지 마시고 어머니를 더 자주 보러 가세요. 그것이 후회하지 않는 길이에요"
문득 일리 있는 말이란 생각에 고개를 끄덕인다.
정작 내 엄마를 한 달에 한번 방문하지도 못하는 내가 매주 병원 봉사라니.
어쩐지 뒤가 땡긴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이왕 나선김에 해보자.
아직 엄마가 치매 조짐이 없고 침대에 누워 생활하지는 않으니 여기서 배운 것이 후에 도움이 되겠지.
열댓 명의 봉사자들이 대부분 휠체어 산책봉사를 선택했다.
나는 어떤 끌림에 의해 아로마림프 마사지를 선택했다.
다들 직접 노인들의 몸을 만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 쉽게 선택하지 못한 활동이다.
늘어지고 앙상한 노인의 신체를 만진다는 것에 멈찟한 표정들이다.
그러나 나는 왠지 더 가까이 그들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 이왕 봉사를 결심한 김에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