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엄마의 마음
119를 부를 상황에서도 자식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알리지도 않는 엄마.
엄마는 왜 이럴까?
엄마의 육아전담으로 성인이 된 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엄마는 자식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단다.
자식들이 자랄 때 너무 해준 것이 없다는 생각에
나이 들어서는 가급적 자식들의 도움을 받지 않으니라는 것이 엄마의 마지막 목표였다.
그렇다.
나도 한때 엄마는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이 문득 올라온다.
엄마의 젊은 시절,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의 엄마는
나의 기억 속에 거의 실업의 상태로 집안에 칩거했던 아버지를 대신해
왜 직업현장에 뛰어들지 못했을까?
보통 아버지들이 무능한 집안에서는 엄마들이 경제활동을 하면서 가장의 역할을 하기도 하던데.
차분하고 조리 있는 말솜씨로
동네에서 신임받았던 엄마.
곤란한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찾아와서 엄마에게 의논하고 조언을 구했었다.
그런 엄마의 능력에 나도 엄마를 자랑스러워했었는데.
왜 엄마는 40대 초반의 나이에
갑자기 남편을 잃고 홀로 되어 3남매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도
늘 집안만 쓸고 닦고 과도하게 빨래만 하면서
문 밖으로 나갈 생각도, 시도도 하지 않았을까?
무엇이 엄마의 발목을 잡고 있었을까?
김밥, 떡볶이 장사에 나서든 남의 집 일을 나가든 목욕탕 청소을 하든
남겨진 재산도 없는 상황에서 생계를 위해 집밖으로 뛰쳐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 젊은 나이에게 말이다.
내가 42살에 대학교2학년, 재수생, 고3 자녀를 두고 하루아침에 과부, 가장이 되었다면 어땠을까?
슬퍼할 겨를없이 노동전선에 뛰어들지 않았을까?
그러나 엄마는
자식들이 알바로, 때 이른 취업으로 벌어오는 쥐꼬리만 한 돈으로
아껴가면 생활을 하며 버티었다.
엄마의 발목을 붙잡고 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엄마의 생은 얼마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많아야 1,2년?
엄마 스스로도 요양등급의 유효기간이 2년이고 이후 갱신해야 한다는 설명에
손사래를 친다.
2년 후에도 살아있다고? 끔찍하다. 그런 일은 없을 거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지만 엄마의 집에 드나드는 날이 많아질 터이니
엄마와 대화를 나눠볼까?
묻고 대답하면서 엄마의 일대기를 정리해 볼까?
정작 엄마의 어릴 때, 젊을 때의 삶을 나는 정확히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 코로나로 위독한 상태에 빠진 와중에서 엄마는 누추한 살림 중에서도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고, 정리하고자 애를 썼다.
죽음을 앞두고 미리 정리하고 준비하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돌아가시면 우리가 알아서 정리한다고 일축하곤 했다.
그러나 낡은 사진첩은 받아두었다.
사진첩에서 발견한 엄마의 고교시절 모습, 가장 어린모습이다.
결혼식날 모습, 시내의 식당을 빌린 결혼식장에서 22살의 엄마가 하얀 한복에 머리에는 망사천을 두르고
아버지와 맞절하는 뒷모습, 아! 돌아가신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니 울컥했다.
1살, 3살, 4살의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데리고 마당에서 청소하는 모습,
원피스로 모양을 내고 동네 아줌마들과 유원지에 놀러가 음식을 먹고 있는 30대의 엄마,
아! 엄마도 젊은날이 있었구나.
이 당연하고도 신기한 사실에 나는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귀한 보물인냥 집으로 가지고 왔다.
엄마가 이제 추억하기도 싫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어딘가 구석에 어쩐지 나와 묘하게 닮은 엄마의 모습, 아니 사진을 버릴수는 없다.
엄마의 지난 생이 갑자기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