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세상의 다양한 엄마들
엄마!
그 한 단어만으로도 여러 가지 감정이 밀려들면서 참 먹먹해지는 단어이다.
따듯함, 안쓰러움, 그리움, 애잔함, 가슴 저림, 투박함, 돌아가고 싶은 마음, 추억,
거칠어진 손, 낡은 속옷, 오래되어 신발굽이 삐뚜름해진 낡은 신발들,
생선 대가리, 닭 모가지와 껍질, 식구들이 남긴 밥, 물 말은 찬밥에 김치,
잔소리, 싫다는데 괜찮다는데 권하고 또 권하는 지겨움, 걱정 어린 눈, 억척스러움,
약함 속에 느닷없이 나오는 강인한 정신과 힘. 자식을, 가족을 위한 끝 간 데 없는 희생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염원, 지극한 치성
자신은 없고 가족이, 자식이 자신인 양 살아가는 삶, 안타까움
결국은 자신 안에 가족, 자식을 품으며 그것 자체가 인생의 전부가 되는 삶, 숭고함
어머니를 묘사하는 소설과 시, 드라마와 영화에 그려지는 우리의 엄마이다.
가상의 엄마뿐 아니라
'영웅'의 안중근의 어머니가 그러했고
박노해 시인의 어머니가 그랬다.
그러나 돌아보니 현실은 참으로 다양한 엄마들이 있다.
나의 경우처럼 따듯함을 느낄 수 없었고 위기의 순간에 괴력을 발휘하지 않은 엄마가 있는가 하면
가까이에는 이제 노년에 접어든 딸들을 성가시게, 아니 귀찮게 하는 엄마들도 있다.
내 친구의 엄마.
딸의 성공을 폄하하고 오히려 시기하는 엄마.
오히려 딸보다 자신이 똑똑함을,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면 더 영특함을 발휘했다며
딸을 시샘하는 엄마.
공부 잘하고 그래서 국내 최고의 대학을 입학했으나
아버지가 현직에 있을 때 결혼해야 유리하다며
잘 다니는 학교를 중퇴시키고 대학 3년 때 정략결혼 시켜버린 이기적인 엄마.
독특하고 드센 그 엄마는 이미 가스라이팅되어 순하디 순한 딸들을 필요할 때마다 이리저리
부려먹더니 최근에는 딸들 몰래, 물론 도중에 발각되었지만 아들에게 전 재산을 증여했다.
그 순한 딸 3은 엄마에게 등 돌리고 발길을 끊었다.
딸과 가까이 살면서
조금의 불편함이 있으면 끊임없이 불평하고 딸을 불러대는 또 다른 엄마.
어리광 부리고 잔소리, 불평할 남편이 먼저 가자 이제 딸들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나이 듦이 과연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엄마다.
늙어간다는 것은, 세상을 오래 산다는 것은 지혜가 쌓이고 현명해지는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외려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고집이 세지고, 자신의 경험과 기억의 한도 내에서
왜곡과 편협이 더욱 짙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엄마들.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엄마들도 우리가 생각하는 엄마와 거리가 멀다.
특정 자식을 편애하며 다른 자식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엄마.
자신의 탐욕을 자식에게 투사하며 광기를 부리는 엄마.
엄마.
그들은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기르면서 아주 특별한 역할을 부여받지만
그 역할을 소화하는 과정과 정도는 저마다 다르다.
내가 상담코칭을 하는 젊은이들의 사연에는 주로 엄마들에 대한 사연이 많다.
지나치게 요구하고, 자식의 자유를 제한하고, 자식의 안위와 행복보다 자신의 욕구와 욕망이 우선하고,
한마디로 자식에게 상처를 주는 자로서,
그 자체가 트라우마로 존재하는 엄마가 수도 없이 많다. 현실에서는 말이다.
이런 경우 나는 엄마와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을 빨리 확보하라고 조언한다.
나에게 지속적으로 상처를 주는 사람, 나의 희망과 미래를 번번이 발목 잡는 존재와는
그것이 아무리 하늘의 인연이라도 부둥켜안고 갈 수는 없다.
좀 떨어져서, 타인으로서 바라보고 대해야 나 스스로를 지키고
엄마의 투사와 삶의 왜곡, 굴곡에서 빠져나와 비로소 나 자신이 바로서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나의 엄마는 어떤 엄마였을까?
통상의 엄마의 모습에서 비껴간 엄마에겐 무엇이 중요했을까?
또는 무엇이 중요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의무와 중요도를 떠나 무엇이 엄마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고 있을까?
3주가 지나 비로소 코로나로 쓰려졌던 엄마가 서서히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호기심과 약간의 심술이 싹튼다.
엄마의 깊은 마음을 파헤치고 싶은 마음.
낙엽처럼 켜켜이 쌓인 엄마의 마음을 헤집고 들어가 속살을 보고 싶은 마음. 못된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