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치명적 유혹에 대하여
19세기 영국 화가였던 존 콜리어 (John Collier)의 거룩하고 속된 사랑 (sacred and profane love)이란 작품입니다.
의자를 중심으로 왼쪽은 정갈한 드레스를 입고 단아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왼손엔 부채를 든 숙녀가 앉아 있고 그녀의 반대편에는 시원해 보이는 원피스를 입고 발달한 헤어스타일에 의상과 같은 색깔의 화려한 부채를 들고 엉덩이를 반쯤 의자에 걸 터 앉아 있습니다.
티치아노의 작품도 똑같은 주제로 왼쪽은 와이프의 모습, 오른쪽은 정부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화풍과 시대만 다를 뿐이지 존 콜리어의 윗면 작품과 비교해 봤을 때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얼굴만 보면 분명 같은 여자인데 왼쪽의 여자와 오른쪽의 여자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지극히 남성적인 시각으로 남성이 바라보는 이상적인 여인의 모습을 상상하며 그린 황당하면서도 비판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다뤄볼 작품들은 전부 우리가 흔히 부르는 '팜므파탈 (Femme fatale)에 대해 다룬 작품들입니다.
팜므파탈은 신화(myth)이며 투영(projection), 해석(construction)입니다. 그녀의 시각적으로 코딩된 고정 관념화된 여성으로 관능적이고 에로틱하며 매혹적인 여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 악마 같은 본성은 남성을 유혹하고 매혹시키는 능력에서 드러나며 종종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합니다.
오랫동안 남성과 이분법적인 시선이 지배해 온 이 진부한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1860년에서 1920년 사이에 예술과 문학에서 재앙적인 여성으로 널리 묘사된 릴리스 (Lilith), 유디트(Judith), 살로메(Salome), 메두사(Medusa) , 세이렌(Sirens), 키르케 (Circe)와 같은 성경과 신화 속 여성 인물들입니다.
팜므파탈 캐릭터의 특징은 이러한 내러티브와 관련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악마화' 하는 것입니다.
살로메, 유디트, 키르케, 세이렌, 메두사 등 시대와 작품에 따라 내용은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이들의 공통된 주제는 바로 여성성을 이용한 악마화, 즉 우리 동양적 사고로 생각한다면 '미인계의 악마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키르케(Circe)는 오디세우스(율리시스)를 유혹하기 위해 아주 요염하고 섹시해 보이는 옷을 입고 의자에 앉아 술잔을 건네며 유혹합니다.
바로 위 사진과 그전 사진 둘 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동명의 키르케 작품인데 이 키르케는 마법의 술잔을 남성 (오디세우스)에게 건네고 그 술잔을 받아먹은 남자들은 전부 돼지로 변한다는 신화 속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술잔을 건네는 키르케의 거울 속에는 아름다운 키르케를 향해 다가오는 오디세우스(율리시스)의 모습이 보이고 그녀의 발밑에는 이미 돼지로 변해버린 남자들이 보입니다.
이 이야기의 끝은 좀 어처구니가 없이 끝나 버리는데요~ 딱 1명만 이 술잔을 먹지 않아 돼지로 변하지 않고 결국 이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황당한 이야기로 끝이 납니다.
사실 팜므파탈은 본래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지만 어찌 보면 여성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여성의 자율적인 권한이 강화되고 여성 자신의 권한부여의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면에 있어서는 무조건 부정적 이미지로만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 상당히 좋아하는 키르케의 다른 버전 작품입니다. 독일의 프란츠 폰 슈투크 (Franz Stuck)의 작품입니다.
책 표지로도 활용되고 영화 포스터같이 상당히 임팩트 있고 에지 있게 키르케의 유혹하는 눈빛과 장면 묘사를 너무 잘했다고 생각하는 작품입니다.
전형적인 마녀들의 머리로 표현되었던 '빨강 머리'에 보색으로 대비되는 색상의 푸른 드레스를 입고 유혹하듯 강렬한 눈빛으로 술잔을 건네는 키르케의 모습이 매우 강렬합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작품은 릴리스(Lilith)에 관한 작품입니다.
릴리스의 그림을 보면 아름다운 여인의 몸을 뱀이 칭칭 감아올리고 여인은 무서워하지 않고 평온한 표정으로 뱀을 보고 있습니다.
릴리스는 태초의 인간인 아담의 첫 번째 부인으로 아담과 함께 태어났다가 아담과 싸워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고 다른 악마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아담의 두 번째 부인인 이브(하와)를 유혹했던 뱀이 되었다는 구약성서의 이야기를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보통 후대에 부풀려진 이야기에서는 보통 밤에 다니면서 어린아이를 건드리거나 잠자는 남자를 건드리는 등 각종 해코지를 하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릴리스도 팜므파탈의 하나의 주제로 화가들의 작품 소재가 되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팜므파탈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만나봤습니다.
팜므파탈은 사실 좋지 않은 이미지로 아직도 표현되고 있긴 하지만 오늘 작품에서 다뤄봤듯이 본래의 뜻은 지극히 남성 편향적인 사고방식에서 나온 이야기이며 당시를 살던 여성의 수동적이며 남성우월주의에 반향 하는 여성 권한부여의 도구로서 활용된 면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