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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투 battu Mar 16. 2022

게을러도 완벽할 수 있을까?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고해성사

오늘 아침도 기어이 울리고 만 알람 소리에 질색을 하며 핸드폰을 찾는다. 간신히 한쪽 눈만 떠져 윙크한 채로 바라본 화면 속의 시간은 8시 50분. 이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말 그대로 ‘뭐 됐음’을 감지하고 빠르게 뛰쳐나가거나, 거대한 현실을 마주하기 버거워 몸이 굳어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일 테다. 하지만 나는 여유롭게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수습불가 지각에 드디어 정신을 놓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재택근무 8개월 차 직장인일 뿐이다.


재택근무를 한다고 하면 제각각의 이유로 나를 부러워한다. 목동에서 판교로 출퇴근을 하는 후배는 내가 지옥철을 타지 않아도 되는 걸 부러워하고, 도저히 답도 없는 상사를 만난 친구는 내가 홀로 일하는 걸 부러워한다. 나는 가증스럽게도 “재택근무를 하면 확실히 일이 편하게 잘되더라고요~”라고 대답하지만, 전날 나는 밤 11시까지 일을 하다가 곯아떨어졌다. 일이 많아서도, 일정이 급해서도 아니고... 부끄럽지만 오늘까지 마무리해야 할 일을 손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 미뤘다!



대체 왜 나는 일을 미리미리 하는 게 안될까?!

미룰 수 있는 최후의 끝의 끝까지 일을 미루는 내 모습이, 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면 보이는 사람들의 멋진 커리어에 반해 너무나도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흔한 유머 계정의 영상이 나를 아침처럼 깨웠다. “당신이 일을 미룬 이유는 게을러서가 아니라 더 잘하고 싶은 마음, 즉 완벽주의 때문입니다”. 화면 속의 오은영 박사님의 말씀이었다.




달콤한 핑계, 완벽주의


구글 놈들이 사용자 데이터를 무분별하게 수집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지금 내 상황을 어떻게 알고? 조금은 놀란 마음으로 영상을 시청했다.


정리하자면, 우리 같은 사람들을 ‘게으른 완벽주의자’라고 하더라. 우리의 특징은 “일을 하기 위해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만을 기다리거나 제대로 할 수 없으면 안 하려는 태도”를 가진 것이고, 결국 일은 미뤄두면서 맘 놓고 쉬지도 못하는 불안한 상태의 사람들이라는 것. 그래서 마감시간에 임박해 허겁지겁 일을 마무리하게 되어 낮은 퀄리티의 결과물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자신감이 위축된다고 한다.


속을 훤히 들킨 것 같은 부끄러움도 잠시 나와 같은 사람들이 정말 적지 않구나라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댓글창은 이미 성당처럼 나 같은 사람들이 전부 오은영 박사님께 고해성사를 하고 있었다. 읽어볼수록 전부 내 얘기 같아 좋아요를 누르고 있는 나또한 마찬가지.


여기에도 고해성사를 하자면, 나는 늘 새로운 걸 배우는 게 너무 힘들었다. 흥미는 둘째치고 처음부터 잘할 수 없는 게 당연함에도 ‘미숙한 나’의 모습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결국 그런 내 모습이 싫어 도전을 꺼리게 되면서부터 어느 순간 정체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여기에 더해 일을 미뤘기에 결국 아쉬웠던 결과물을 두고는 "미루지 말자"가 아닌 “마감에 쫓기지만 않았어도"라며 변명해 버릇했고 그 편안한 변명에 취해 문제를 피해왔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문제를 마주하기로 했다. 더 나아질 수 있기에. 자책하지는 않되,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실행주의’를 향하여


우리는 어쩌다 게으른 주제에 완벽을 좇게 되었을까? 기구한 운명이다 싶어 받아들였던 내 생활습관이, 왠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일단 첫 번째 문제는, 당장 일을 시작하면 결국 완벽해질 때까지 잡고 있을 생각에 지레 피곤해지는 습관이라 생각됐다. 완벽한 결과물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데 그것에 들일 시간이 너무나도 버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사실 ‘완벽’ 한 것은 없는데, 그 사실도 너무 잘 아는데도 ‘완벽’을 좇다가 지쳐버린 사람들이 자기 방어적인 태세로 ‘게으름’을 택한 건 아니었을까.


그 해답으로 나는 먼저 ‘일단 하는(Do it)’ 연습부터 했다. 매일 1시간을 고정해둔 채 다른 걱정, 고민할 시간에 ‘일단 했다!' 그 결과물이 마음에 들던 아니던 꾸준히 시간을 들이는 연습이 필요했다. 그렇게 연습하면서 어떤 일이건 마법처럼 실력이 좋아지는 왕도는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공부와 일 모두 하루 루틴 속에 정확히 자리 잡게 만들었다. 내가 해야 할 일마다 시간을 할당하고, 그 시간만큼은 고민 없이 그것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했다.


필자는 일러스트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 과정 속에서 중요한 건 ‘나’에 집중하는 일이다. 핸드폰을 켜면 자꾸만 보이는 완벽한(적어도 나에게 그렇게 보이는) 사람들. 그럴 때마다 항상 상기시켰다. "완벽은 없다!"이 말은 모든 사람은 흠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집중한 말이 아니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은 정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꾸준히 들여 ‘완벽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을 명심했다. 그들이 한 장의 이미지로 올리는 것은 과정이 아니라 결과다. 그들의 결과가 나의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좋으나, 내 과정의 비교대상이 되어서는 안 됨을 깊이 새겼다.


지금도 일이 밀려 있지만 침대에 누워있는 완벽주의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게으른 게 아니다! 그저 잘하고 싶은 마음일 뿐이다. 그렇지만 잘하고 싶은 마음은 너무 무겁다. 우리를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 그 마음을 조금 덜어내 보자.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구식 멘트 같아 보일 진 몰라도 효과는 확실하다. 가벼워진 마음으로 시작한 모든 것들에서 성공하든 실패하든 결과를 내는 것에 집중해보자. 당신을 가득 채우는 건 흘러가는 게으름이 아닌 단단한 경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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