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체발향
백화점에 갈 일이 거의 없는 내가 거의 유일하게 거금을 쓸 때가 있다. 바로 향수를 사들일 때다. 나는 꽃이나 과일 향뿐 아니라 젖은 흙과 가죽에서 나는 어떤 축축한 기운이 밴 몽환적인 냄새를 좋아하는데, 원래부터 그런 냄새를 좋아했는지 자라면서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최상의 향기를 찾아 백화점 이곳저곳을 떠돌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내가 그르누이가 된 기분이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는, 아무런 냄새를 갖지 못한 그르누이가 향기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욕망 하나로 살인도 서슴지 않는 이야기다. 갓난아기 그르누이를 맡은 유모는 아이가 악령에 씌었다며 돌보기를 거부하는데, 사람의 아이라면 누구한테서나 나는 그런 향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 아인 도대체 냄새라는 게 없어요.”
냄새의 무엇이 소설의 이런 인물들을 만들게 했을까. 그것을 설명할 과학적 근거가 있을까. 나는 베티나 파우제의 ‘냄새의 심리학’을 책장에서 다시 꺼내 들었다. 어떤 사람을 도무지 좋아할 수 없을 때 쓰는 독일식 관용구 “그 사람에게선 어떤 냄새도 맡을 수 없어. Den kann ich nicht riechen.”가 두 작가의 누빔점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그르누이는 베르사이유 궁전을 향해 산책을 하다 왕으로부터 발에 키스를 받을 수도 있고, 교황에게 자신을 새로운 메시아로 선포하게 만들 수도 있는, 돈이나 테러 혹은 죽음보다 더 큰 힘으로 타인에게 사랑을 이끌어 내는 향수를 발명한다. 황제 중의 황제로 등극할 수도, 심지어 지상의 신으로 올라설 수도 있는 향수였다. 그러나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꼭 한 군데 있었다. 그 향수를 느낄 수도 없고 향수의 마법에 걸리지 않는 유일한 사람, 바로 그르누이 자신이었다.
‘냄새의 심리학’에서 저자는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로션이 출시되나요?” “어떤 사람은 성적으로 특히 매력적인 냄새를 풍긴다는데 맞나요?”라며 전화를 걸어오는 언론매체들에, 단연코 NO라고 답한다. 인간의 유혹 물질은 한 번도 풀린 적 없는 비밀번호처럼 잘 암호화되어있어 인간은 아무런 도구 없이 짝을 찾아야만 한다. 후각은 사랑과 공포 같은 감정을 감지하며 타인이 내보내는 화학적 메시지에 쉴새 없이 귀를 기울이므로 우리는 우리가 풍기는 냄새 그 자체와 같다. 오히려 유전자는 특정 인물을 거부하는 경우에만 드물게 관여한다. 그러니까 유전자는 우리가 누구를 사랑하지 않을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만약 그르누이가 존재한다면 그가 아무리 훌륭한 냄새를 풍긴다고 한들,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뜻이다. 우리의 유전자는 정확하게 그르누이를 가려낸다는 말이다.
판매사원이 여러 향수를 추천했지만 모두 내키지 않았다. 꽤 많은 시향 끝에, 정확하게 마음을 뒤흔드는 향수를 만나 곧바로 사버렸다. 뭄바이 쳄부르의 거리를 냄새로 재탄생시킨 것으로, 비 내리는 숲속의 축축한 나무 냄새를 시작으로 건초와 파우더리한 앰버향으로 마무리되는 향수였다. 그러나 그 향기를 맡은 지인들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려서, 민폐가 될까 봐 혼자서만 즐긴다. 현실의 그르누이가 되지 않으려면, 자체발향을 하는 일부터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