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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마귀소년 Nov 12. 2022

예상이 되는 성실함

5년 후의 어느 금요일 저녁



  웹 어딘가에서 이런 글귀를 보고 나서부터는, [예상이 되는 성실함]이 한참 떠나지 않고 주위를 맴돈다. SNS 계정 대문에 써 붙이는 상태 메시지처럼 머리통 위에 한동안 띄워 다니고 싶은 말머리가 되었다. 메타버스 세상이라면 손가락을 잠깐 놀리는 것으로 가능할 일이지만 현실에서는 신통한 재주 같은 게 없으니, 다소 품이 들더라도 직접 말하는 수밖에 없다.



  금요일 저녁. 바닥에 맥없이 드러누워 천장을 올려다본다. 손깍지를 뒤통수에다 받친 자세로 남은 할 일을 생각하는 중이었다. 오늘이 완전히 끝나버리기 전에 근력 운동을 하는 것, 그러고도 기력이 남는다면 오늘의 감상을 글로 써 보는 것도. 아주 처음에는 8시 30분이 되자마자 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한 주분의 피로가 몰려들며 눈이 스르르 감긴다. 노곤한 흐름에 몸을 맡기고 잠깐 붙였다 떴나 싶은데, 바늘이 50분을 훌쩍 넘어가 있다. 으음... 이왕 이렇게 된 거 깔끔한 기분으로 9시 정각에 시작하자. 그러고는 다시 벌러덩 누워버린다.


  이번에 눈을 감으면 아예 계획을 그르쳐버릴 것 같아 불안하다. 어서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는 초조함과 가능한 한 미적거리고 싶은 나태함 사이에서 이리저리 구르다가 한참만에 시계를 보니 9시 직전. 움직이겠단 마음이 생겼을 때는 역시 움직이는 게 좋다. 제때 내보내주지 않으면, 다른 마음과 서서히 섞이다가 본디 형체를 잃고 완전히 풀어질지도 모른다. 초침이 정각을 지나는 걸 보고 깍지를 풀면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티셔츠와 반바지로 갈아입고 팔꿈치, 무릎보호대를 꼈다.


  웜 업, 저항 밴드를 잡은 팔을 크게 벌려 허공에 여러 방향의 직선을 그린다. 오늘은 이번 주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운동이다. 시작하기까지 힘들었지만 한번 발동을 걸면 서서히 어떤 의욕이 생기는 것이, 아주 묘하다. 힘을 다 쓰고도 기분 좋게 하루를 마감할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든다. 헬스장까지 오는 것이 제일 어려운 일이라, 그것만 해내면 정작 운동은 쉬울 거라는 어떤 헬스장의 출입문 글귀처럼.


  처음은 그냥 시작하게 된 일이었다. 그냥, 지금보다 힘이 더 세지고 싶다는 바람에다가 몸이 좋아지는 건 덤으로. 지극히 단순해서 별다른 재능이 필요치 않은 운동이어서 좋았다. 일주일에 세 번만 하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일이, 곧  년째를 맞게 된다. 이것도 재능이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 푹 안심이 되는 건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단 마음일까.


  퍽 마음에 드는 말머리를 만나기 전까지 내가 머리통 위에 붙이고 다니던 건, [예측할 수 있는]이었다. 누구에게나 예측 가능한 사람으로 존재하기를 바랐다. 동성 친구들과 부대끼는 동안 그들에 비해 내가 현저히 모험심과 용맹함이 부족한 사람이며 예기치 못한 갈등과 충돌을 정면으로 돌파하지 못하는 걸 확실히 알아차렸으니. 길을 멀리 돌아서라도 피해가는 길이 편했다.


  언행과 사고방식, 취미와 식습관, 대인관계와 문화생활 같은 데까지 대체로 예측 가능한 사람이 됐다. 늘 익숙한 길만 찾으니 소년기에 비해 영역이 거의 확장되지 못한 건 그간의 행동으로 인한 당연한 결과라 수긍하면서도, 때때로 아쉬움이 남는다. 잔잔한 물결로 쉼 없이 흘러오긴 했으되 바다까지 퍼져나가는 데는 결국 실패한 것이 아닌가. 나아간다고 나아갔지만 실은 한 자리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던 게 아닌가. 내 물길이 좁아지다 완전히 닫히는 방향으로 열심히 저어 가는 꼴이 날까 봐 무섭다.


  [예상이 되는 성실함]을 만나고 나서 이전의 것과 견주어본다. 뒤에다 성실함이란 단어를 하나 붙인 것만으로도 지향하는 지점이 또렷해지고, 나 자신을 높은 곳으로 끌어올릴 동력이 생기고, 주위 사람들에게 폭넓게 긍정적인 신호를 줄 거란 희망이 생긴다. 진작 이렇게 적당한 수식어를 찾았더라면 지금보다 한참 더 나은 인간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 세트가 끝났다. 바벨을 내리고 숨이 다시 고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말머리를 지그시 올려다본다. 이것이 내 앞을 어디까지 비춰줄 수 있을까. 6개월 후가 예상이 되는 성실함. 1년 후가 예상이 되는 성실함, 5년 후가 예상이 되는 성실함. 세 가지를 차례로 읊조린 다음, 5년 후의 어느 금요일 저녁을 천장의 여백에다 그려본다.


  나는 그때 또 무엇을 깊고 꾸준하게 하고 있을까. 꼭 지금의 나처럼 홀로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겠지. 글을 내걸 곳이 브런치라면 가장 기쁠 일이다. 업로드 주기가 길어졌어도, 완전히 떠나지 않았기만 해도 좋을 터다. 마스크를 벗은 직장인들 틈에서 바벨을 짊어지고 연신 거친 숨을 내뿜고 있을 수도 있다. 일주일에 꼭 세 번이 아니어도 괜찮다. 영원히 내던지지만 않았다면. 누군가를 안심시킬 수 있는 이 사소한 재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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