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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두울 Jan 29. 2022

<작별하지 않는다>

한강

    2021년 가장 인상 깊게 읽은 소설. 부끄럽지만 익숙지 않았던 제주 4.3 사건에 대해, 보도연맹 사건에 대해, 그리고 영문도 모른 채 정치적 목적을 위해 희생된 수많은 무고한 생명들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되었던 소설이다.


    사실 한국인 최초 맨부커상 수상자라는 화려한 타이틀을 가진 한강 작가의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채식주의자>로 처음 접한 그의 글은 불친절하고 난해하게 느껴졌다. 사실 <작별하지 않는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긴 템포의 문장은 온갖 비유와 감각적 표현으로 범벅이 되어있어 읽는 데 공을 들여야 했고, 생소한 제주도 방언을 그대로 가져온 인터뷰들은 맥락 정도를 파악하는 데서 그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점들이 책의 매력을 극대화하였다. 수많은 비유와 감각적 표현들은 이해가 아니라 공감을, 객관화가 아니라 감정의 공유를 목적으로 책을 집필한 작가의 의도를 충실히 구현하였다. 긴 호흡의 문장들은 소설 속 인물의 세계에 제대로 몰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알아들을 듯 말 듯한 제주도 방언은 현장감은 물론이고, 책의 분위기에 적절히 스며들어 미스터리한 긴장감을 풍겼다.


    책의 구조는 단순하다. K시에 관한 소설을 집필한 후 알 수 없는 괴로움에 시달리던 '경하'가 불의의 사고로 손가락이 절단된 채 입원한 '인선'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인선'의 제주도 집으로 향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다. 또한, 그 과정에서 국가 폭력에 의한 학살과 고문의 역사를 조명한다. 진실과 마주하기 위한, 진실과 '작별하지 않기' 위한 여정은 생사의 경계를 오갈 만큼 고통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길을 묵묵히 걷는다.


    책의 제목과는 달리 책의 내용은 작별의 연속이다. 앵무새들과의 작별, 인선의 어머니와의 작별, 인선과의 작별. 작별은 고통스럽지만, 작별하지 않기 위한 과정은 그보다 훨씬 고통스럽다. 인선이 절단된 손가락을 이어 붙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맞는 고통스러운 신경 주사는 책 전반에 녹아있는 '작별하지 않기 위한 고통'을 상징한다. 폭력과 희생의 끔찍한 기억들이 잊히지 않기 위해 누군가는 그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마주하고 있다. 작별하지 않기 위해선 지속적인 고통을 감내할 용기가 필요하다.


    <작별하지 않는다>의 '눈'은 다른 문학 작품에서 표현하는 눈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타 작품에서 눈은 주로 순결함, 깨끗함을 상징하지만, 이 소설에서 눈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상징한다. 군경이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 밤, 어린아이들은 쓰러진 사람들의 얼굴 위로 내린 눈이 체온에 녹아 얼굴을 드러내는지, 싸늘한 주검 위에 그대로 쌓여 얼굴을 가리는지에 따라 삶과 죽음을 구별한다. 눈은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두 여인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만날 수 있도록 판타지적인 장소를 제공하기도 한다.

     눈이 녹아 바다로 흐르고, 그것이 다시 구름이 되어 눈으로 내리는 물의 순환 속에서, 인선의 제주도 집을 찾아가는 경하의 머리 위에 떨어지는 눈은 1940년대 인선의 어머니가 보았던 '주검 위에 쌓이는 눈'이었을지도 모른다. 끊어지지 않는 순환고리 속에 갇힌 눈처럼, 같은 눈을 맞고 있는 경하에게도 인선과 인선의 어머니가 공유하던 그 시절 제주도의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한다. 눈의 순환과 함께 경하에게 전달되는 이야기는 되풀이되는 잔인한 인간사에도 회복과 화해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지속적으로 존재해왔음을 함축한다.


    작가는 이 소설이 지극한 사랑의 이야기로 읽히기 바란다고 말한다. 이 소설은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하지 않기 위해 고통스러운 기억을 끊임없이 되살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기억이 고통만을 가져다주더라도, 그것이 남아있는 사람이 떠나간 사람을 위해 할 수 있는 사랑의 방식라면, 그들은 지극한 사랑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작별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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