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이라니, 얼마나 촌스러운가! 시멘트로 바른 후줄근한 벽면과 왠지 삐뚤어져 보이는 창틀, 마당에는 노란 장판을 씌운 평상까지, 마치 드라마 세트장에 온 것만 같다. 지금 드라마의 주인공은 저 촌스러운 집 안에서 얼큰한 감상에 젖어있다. 술기운에 불그레해진 그의 뺨이 실룩거린다. 손에 든 스마트폰을 다른 손으로 옮기며 자연스러운 척 매워진 코끝을 잡는다. 나는 삐뚤어진 창틀에 붙어서 안을 훔쳐본다. 어때? 맞지? 어서 답장을 해! 답장을!
코끝을 잡고 있던 남자의 손이 느리게 다가와서 휴대폰에 글자를 찍어 넣는다. 생기를 잃어가던 내 휴대폰이 반짝 빛을 발한다. 답장이 왔다.
‘아니’
아니라고? 저렇게 다 큰 어른이 내가 보낸 동영상을 보고 울적한 시름에 젖어있는데, 그러면서도 아니라고? 역시 삼촌의 집 앞에 잠복하길 잘했다. 어디 내 눈을 똑바로 보고도 아니라고 대답해보시지. 창문을 힘차게 두드리려는 찰나, 삼촌이 벌떡 일어난다.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미닫이 문이 끽 하고 짧은 비명을 지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 엷게 힘을 주는 소리와 무거운 물건들을 바닥에 내려놓는 둔탁한 소음, 자박자박 맨발로 방바닥을 디디는 소리, 그리고... 내 양심에 닿을 만큼 깊은 한숨 소리.
살그머니 창문 위로 고개를 들어보았다. 그새 머리카락이라도 쥐어뜯었는지 삼촌의 헤어스타일이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여전히 불콰한 목덜미, 마치 죽은 애인의 영정사진이라도 보는 듯 온통 슬픔에 짓눌러진 어깨, 그리고 바닥엔 검은색의.... 가방?
나는 창문 모서리에 바짝 붙어서 바닥에 놓인 물건을 자세히 파악해보았다. 쓰러진 미망인 같은 매끄러운 검은 곡선이 보인다. 기타다! 역시 삼촌은! 삼촌은 기타리스트였어!
더 기다릴 것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뛰어 들어갔다. 기쁨으로 숨이 차올랐다.
“거봐 맞잖아요! 이 동영상, 이거 삼촌 맞죠?, 여기 기타도 있잖아. 그치?”
조카의 갑작스러운 주거지 침입을 지켜보는 삼촌의 충혈된 눈동자에서 멍청한 새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듯했다. 새가 저 멀리 날아가고 나서야 삼촌은 마른 입술에 침을 묻히며 겨우 입을 달싹거렸다.
“아니... 이거 그냥 취...”
순간 머릿속에서 온갖 이미지들이 울컥거렸다. 이삿짐 트럭 속으로 속수무책 빨려 들어간 내 페리카. 지금쯤 둔산시 어딘가에 부려져 있을 내 처연한 짐들. 깨진 모니터를 이삿짐 사이에 야무지게 챙겨 넣는 엄마의 바지런한 손동작. 망치를 든, 급기야 모니터를 깨부수고 말았던 엄마의 손. 내가 먹을 밥을 하고, 내가 입을 옷을 빨면서도 결코 나를 믿어주지 않는 작고 거친 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삼촌의 기타 가방을 활짝 열어젖혔다.
그리고 그곳에는 처참하게 부서진 기타가, 허옇게 찢어진 속살이 말라붙은 채, 그러나 누군가의 정성 어린 퍼즐 맞추기로 아슬아슬하게 조각난 몸을 유지하며 영양실조에 걸린 프랑켄슈타인처럼 누워있었다. 멍청한 새마저 잃은 삼촌의 동공이 나뭇가지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이건 그냥 취미야. 아니 취미였어. 취미.”
삼촌은 성가신 조카를 쫓아버리는 주술이라도 되는 듯 그 말만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