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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Jun 06. 2024

아부다비에서 온 편지(16)

잊힌 그 말, ’사회적 거리두기‘


아부다비에 온 지 10개월이 지났다.
낯선 땅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중동 국가의 문화 속에 살고 있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간다는 건 혼란스럽기까지 할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렀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이 생활에 꽤 익숙해져 가고 있다.


얼마 전 한 지인과 통화 중에, ‘식물들은 번식하고 자라며 모여서 군락을 이루지 않고 여기저기 퍼져 있는 것이 왜 그러할까?’하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식물을 좋아하지만 그들의 생태에 대해 잘 모르는 나는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시간이 흘러 어느 한 날 운전하던 중  한 문구를 보았다.

철구조물 같은 것을 한가득 실은 트럭 뒤 노란 푯말에는 'Keep distance'라고 적혀 있었다.

위험하니 거리를 두고 운전하라는 말인 것이다.

순간 '거리두기', 그것도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신조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2020년, 그때가 떠올랐다.

서로 조심하자는 문구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했고, 우리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나라의 지침을 따르며 가족과 이웃과 단절된 생활을 했었다. 한참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하게 퍼질 때에는 공원이나 바깥출입조차 하지 않으며 자연과도 단절된 생활을 했다. 그 상황이 얼마나 오래갈지도 모른채 그저 규칙을 잘 따르며 격리 생활을 한 결과, 한국의 K-방역이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우선순위는 나를 지키고자 했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 마음이 컸기에 방역수칙 또한 잘 지킨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극심한 전염병이 돌던 시절을, 그리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코로나는 우리에게 많은 아픔과 상실을 주었다. 우리는 그 힘들었던 날들을 잊은채 살아가고 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K-방역의 위상 말고 우리에게 무언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 또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준 것 중 하나의 혜택을 발견했다.  바로 온라인 모임, 줌이나 여러 온라인 만남공간을 활용한 모임이 활발해졌다는 것이다.

한국과 떨어져 지내는 내게는 코로나가 준 선물 같이 느껴질 때도 있는 온라인 만남의 장.

하지만 코로나 시절에 발이 묶인 학생들과 직장인들에게는 오히려 온라인 모임이 보이지 않는 족쇄였을 수도 있겠다는생각도 든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를 가지 못했던 아이들을 위한 대책으로 화상 수업이라는 것을 했었다.

시간이 되면 노트북 앞에 앉아 출석 체크를 하고 수업과 과제도 온라인으로 하고... 아이들은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 답답해했지만 오히려 어른들은 학교의 기능, 교사의 역할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배움만이 목적이라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도 했었다.

아이들은 바깥으로 나가고 싶어 했고, 어른들도 사람을 그리워했다. 선선한 바람과 햇볕, 계절의 변화를 차가운 건물 속에서 바라보아야 했기에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했다. 거리 두기는 그렇게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연결들을 차단했고, 그 결과 코로나 블루라는 코로나 우울증이 나타나기도 했다.


대한민국이 핵가족화되어가고 개인중심의 삶, 1인가구의 증가, 비혼, 혼밥 시대를 살아간다고 하지만 개인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사람은 늘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연결되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나 잘난 맛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지만 혼자는 늘 재미가 없다. 내 생각은 그렇다.


그렇다면 함께 산다는 건 뭘까? 적당한 거리 두기는 또 무엇일까? 지인이 이야기했던 식물들의 거리두기 성장, 그리고 누군가 다칠까 써 붙여 놓은 트럭 뒤의 거리두기 문구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나를 위해서일까? 남을 위해서일까?

우리는 종종 ‘혼자는 외롭고 함께는 불편하다.'하고 이야기한다. 함께 하고 싶지만 개인의 생활을 침해받기는 싫은 것이다. 적당한 거리두기, 하지만 또 함께하기. 이 둘은 공존할 수 있는 것일까?


공동체라는 단어에 꽂혀 온몸을 갈아 넣다가 적잖이 다친 적이 있다. 거리 두기라는 것을 모르던 때에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 여기며  마음도 다 내어주고 그렇게 늘 함께 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순수하다 못해 바보스러웠다. 큰 교훈을 얻고, 다친 무릎을 싸매고 다시 일어섰다. 이후 아픈 다리를 싸매고서도 늘 머릿속에는 ‘함께 살기’가 둥둥 떠다녔다. 물론 지금도 그러하다.

무엇이 나를 다치고도 다시 일어나게 했을까? 정답을 찾지 못했지만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아팠던 날을 뒤로하고 새로운 곳에서 늘 하던 것들을 하며 지내고 있다.

아부다비에서 지내면서도 코로나 덕분(?)에 열린 온라인 만남의 세계를 너무나 잘 활용하고 있다.

여러 공동체에 몸담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때론 독서 모임지기로, 때론 웹 디자이너로, 때로는 요가 안내자로... 내가 봐도 변화무쌍한 캐릭터들. 가끔 이게 뭔가 싶기도 하다.


온라인으로 사람들을 만나며 새삼 다시 생각해 본 '거리두기'

한국 지인들과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지니 개인 시간이 많이 생겼다. 요가 수련, 명상, 기도, 아이들 돌보기, 개인 공부... 내공을 쌓는 시간을 보내고 있구나 싶다.

의도치 않은 거리 두기로 인해 내면을 다지고 있다. 생태와는 거리가 먼 것 같은 이 도시에서 오히려 더 자연과 접촉할 일일 잦아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한국에서의 바쁜 생활이 자연과도 거리를 두게 만들었구나 싶었다.

삭막한 이 도시에도 나무와 바다가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늘 걷는다. 자연에게서 거리를 두게 된 건 우리들의 선택이었다. 자연은 늘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

다시는 자연과 격리되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


한국에 돌아간다면 나는 또 어떤 모양으로 지내게 될까?

느슨한 공동체를 꾸리고 싶다. 꼭 해야 할 일을 만들기보다는 '함께 하면 좋을 일들'을 만들어가고 싶다.

언젠가부터 내 마음속 한편 자리 잡은 말이 있다.

'살면서 꼭 해야 할 일은 없고, 꼭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없다.'

그저 나를 기다려주는 나무와 바다처럼 꿋꿋하게 서서 따뜻한 온기를 뿜어내자. 거리 두기는 당신의 몫이다. 거리를 두다가도 좁히고, 넘나들며 가까워지기를. 그러다 점차 ‘거리 두기’라는 말은 저 멀리 훨훨 날려 보내는 당신이 되기를...

건물 속에 나도 나무도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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