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서 여름으로
일 년이 다 되어간다. 여름에서 여름으로 날아온 지가.
지나고 보니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싶다. 작년 6월, 그리고 7월에 부모님, 지인들을 차례로 만나며 뜨거운 안녕을 했다.
뭐가 뭔지도 모른채 등 떠밀리는 느낌으로 아부다비로 왔다.
10년 만의 일인가...
10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밀양에서 직장을 다니던 시절, 6년간의 정든 밀양생활을 접고 부산으로 갑작스레 이동하게 되었다. 그때도 누군가가 등 뒤에서 떠밀듯이 내 의지와 상관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직장, 집, 교회 등이 순식간에 부산으로 옮겨졌다.
참 신기한 노릇이었다.
내 인생계획에 전혀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부다비의 1년을 뒤돌아 보다 문득 떠오르는 10년 전의 일들…
지난 일 년 동안은 경주에서의 생활들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곳 아부다비에서…
그리고 내가 40년 정도 더 살 수 있다는 가정하에, 절반의 인생도 되돌아보았다.
일과 인간관계가 멈추니 그 외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이 보이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두 아이가 보였다.
그리고 책장 깊숙이 꽂힌 전시용 책들과 성경, 몸 수련과 기도,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들이 보였다.
놓치고 있던 것들을 다시 꺼내어 매만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작은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마음에 새기고 글로 쓰는 작업도 하고 있다.
어쩌다 보니 세계 곳곳을 누비고도 있다. 문화와 언어 너머의 무엇도 보고 있다.
어렴풋하게 내 미래를 그려보고도 있으며, 내가 입고 있는 몸에 대한 탐구를 더 깊이 하고 있다. 또한 몸과 연결된 마음, 영혼을 돌보는 순간도 자주 마주한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것들, 그 분절된 마디마디를 곱씹고 있다.
앎의 심화과정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앎의 다음 단계는 삶, 그 중간 과정인 숙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부다비로 올 때 사람들에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다. “저, 숙성(어쩌면 성숙) 좀 되고 올게요.”
노란 보자기에 책을 한가득 담아 나를 멀리 유학을 보낸다고 했던 한 선생님도 떠오른다.
‘이 시간은 내게 필요한 시간일까?’하는 의구심이 들다가도 또 어떤 때는 ‘아, 내 짧은 생각으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뜻이 숨겨져 있구나.’ 싶기도 했다.
새삼 사람이 아무리 내일 일을, 일 년 뒤를 계획한다고 해도 내 뜻대로 흘러가는 것은 그리 많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무계획으로 살겠단 건 아니지만…
나는 현재 무언가 더 가져야겠다거나, 무언가 더 알아야겠다는 마음이 없다.
그저 자연의 흐름에 기대어 부자연스러움의 현장에서 평화와 사랑을 외치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아우르는 힘, 조망하는 눈, 흔들림 없는 마음.
앞으로의 수련을 통해 얻고 싶은 것들이다.
늘 한국으로 보내는 것은 기도하는 마음이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일 맑고 밝기를 바라는 마음. 기도로 마음을 흘려보낸다.
곧 다가올 7월, 두고 온 여름으로 간다.
뜨거운 아부다비를 잠시 놔두고 내가 사랑했던 그곳의 여름으로.
늘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을 만나러 간다. 지금껏 다녀온 그 어떤 여행지보다 멋진 여름날이 될 것 같다.
여름에서 여름으로 날아가야지.
다시 뜨거운 안녕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