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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Jul 11. 2024

돈으로 시간을 사는 사람들

'심층적응'의 시대를 사는 지혜

바깥에 5분만 서있어도 온 피부가 타들어갈 것 만 같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바깥 기온은 이미 47도를 육박한다.

뜨거운 날씨 덕에 아이들은 두 달이라는 길고 긴 여름방학에 들어갔다.

한국의 더위와는 차원이 다른 뜨거움. 집에만 있기 싫다는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실내 놀이동산에 갔다.

가끔 가는 곳이긴 한데 실내가 답답한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곳이다.

다들 방학을 해서 실내 공간으로 다 모이는 시기라 그런지, 놀이동산 안은 아이들로 가득했다.

'아.. 오늘도 다리운동 열심히 해야겠구먼..'

반 포기상태로 놀이 기구 앞에 줄을 섰다. 평소에는 기다리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아이들이 놀이기구 앞에서는 순서를 곧잘 기다렸다.

둘째 은유는 바닥에 드러눕다 점프를 하다 빨리 타고 싶다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 우리 시선이 한 곳에 모였다.

우리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우리 옆 줄로 먼저 들어가는 거다.

말로만 듣던 패스트 트랙(fast track) 고객.

둘째 은유는 저 사람들 왜 먼저 가냐고 엄마에게 물었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아이의 어떠한 질문에도 막힘이 없던 엄마가 말문이 막히는 순간이었다.

큰 아이도 눈이 동그래져 엄마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자.'생각했다. 그리고는 "우리가 가진 티켓보다 더 비싼 티켓이 있어. 그 티켓을 가진 사람은 오래 줄을 서지 않고 놀이기구를 탈 수 있게 돼. 하지만 엄마는 그게 꼭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생각해."하고 이야기했다.

대답해놓고도 이게 뭔가 싶었다.


얼마 전부터 아이들과 잠자리에서 자주 이야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얘들아, 세상에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어. 그게 뭘까? 그건 바로 사랑, 마음, 시간 같은 것들이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귀한 것들, 그것들은 돈이 아무리 많아도 살 수 없는 것들이야.”

엄마가 돈으로 살 수 없다 했던 그 '시간'.  

자본주의의 끝을 달리는 아부다비 도시에서 돈으로 시간을 사는 사람들을 내 눈앞에서 보게 되었다.

놀이기구를 타고 싶어 침을 꼴깍 삼키며 짜증도 참아가며 간절히 기다리는 순수한 아이들 앞에 보여주고 싶지 않은 장면을 보여주고 말았다.

이럴 때는 늘 단단히 쥐고 있던 무언가를 빼앗긴 기분이 든다.

우리 앞을 가로질러가는 패스트 트랙 손님들을 아이들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리는 30분을 넘게 기다리고서야 그 놀이기구를 탈 수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아이들은 억울하다는 말도, 기다림이 지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시간을 돈으로 산 사람, 그 사람들을 물끄러미 보기만 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파왔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엉망진창인 것들이 어찌 오늘 이 순간뿐일까?

조금 더 정의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싶은데, 어찌 엄마의 말은 그저 말뿐인 것으로 남게 되는 걸까?


AI가 세상을 쥐고 흔들 날이 다가온다고들 이야기한다. 초지능 AI, AGI의 자기 파괴적 자기 업그레이드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기계가 인간보다 더 위대해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후 위기도, 자본주의도, AI시대도 '적당히'를 모르는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결과들이 아닐까?


어제 한 지인이 도서 <심층적응>에 대해 언급했다.

오래전 구입해 두고 차마 읽지 못하는 책이었는데… 이제는 꺼내어 읽어보아야겠다 싶다.

포기와 좌절을 말하기에는 이르지만 거대한 문제 앞에 단계적으로 적응해 나가며 소중한 것을 지켜나가야 하는 시대인가 보다.

곧 닥칠 위기들. 매일 깨어 지내지 않는다면 위기를 위기로만 보고 포기하게 되겠지?


세상이 뭐라고 해도 나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그것에 마음을 쓰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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