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아부다비
다시 아부다비로 돌아왔다.
한국의 뜨거웠던 여름의 열기가 아직도 내 몸 구서구석에 남아있는 듯하다.
더웠던 날씨 못지않게 뜨거운 만남들이 있었다.
40여 일 한국에 있으면서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한부 환자처럼 나는 그렇게 두루 지인들을 만나며 지냈다.
하루를 잘 쪼개어 쓰고, 사람들을 기쁨으로 대하고, 또 헤어질 때는 더없이 행복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의 연락이 끊이지 않았고 나는 큰일 없는 한 모든 요청에 응했다.
아부다비에서 한국으로 갈 마음에 들떠 있을 적에 나는 '아부다비에서의 생활, 힘들었던 일들을 구구절절 수다스럽게 이야기 나누어야지.'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만난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나는 생각했던 것의 반에 반도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우선 친구들은 나에게 하고픈 말이 많았다. 굳이 따지자면 1년 묵은 이야기들, 그러니까 그들의 삶과 힘들었던 일들, 일상의 소소함을 나누지 못했던 아쉬움을 구구절절 토해내었다.
그 순간순간 나는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있었다. 내 하고픈 말들을 까맣게 잊은 채 말이다.
내 주위 사람들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수다쟁이 었다.
1년의 공백이 이렇게 사람을 수다스럽게 만든단 말인가? 헛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친구들은 모두 일상을 잘 살아내고 있는 것같이 보였어도 각자 힘든 일 몇 가지씩은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내 힘든 이야기를 꺼내놓기가 민망해 나는 그만 내 지난 아픔은 덮어두기로 했다.
이제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부터 80대 어른까지. 이 모든 인연을 그저 친구라 부르며 그렇게 한국 친구들을 만나며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날 친구 D와 석굴암 주차장을 돌아 다시 내려오며 “잊지 못할 오늘이야.”하고 이야기했다. 친구 S와는 저녁에 자주 나무 탁자에 앉아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울고 웃었다.
친구 H는 떠나는 나에게 울먹이며 오이비누를 건넸다. 또 친구 M은 늘 그렇듯 나와 자연 속을 걸으며 이야기 나누었고, 친구 Y는 맑은 음식과 따뜻한 포옹으로 나를 환대해 주었다.
친구 C는 내가 없는 사이에 술과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벼르고 벼르다 만난 친구 K와의 만남에서 오랜만에 나와 비슷한 존재를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 E. 마지막으로 만나고 온 그 친구는 나에게 더 깊은 공부를 하길 바란다고 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질문을 가지고 있냐고 물었고 나는 모르겠다고 했다. 한 여름,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다 보니 내가 해야 할 말을 잊은 걸까? 질문이 있냐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다음 글에서 각각 친구들의 이야기들을 풀어내야겠다.)
오랜만에 몸이 아프다.
한국을 다녀온 지 2주 만에 몸살 비슷한 것이 찾아왔다. 몸의 통증을 잘 받아들이고 있다.
두통과 미열 그리고 근육통. 온몸으로 이 통증을 느끼며 내가 과거에 시한부 인생(?)이긴 했어도 아직 살아있구나 싶다. 한 여름밤의 꿈이었을까? 한국에 다녀온 사진을 보며 꿈을 꾼 걸까 하는 와중에 찾아온 몸살이 반갑다. 덕분에 정신이 번쩍 든다. 나는 지금도 살고 있고, 살아있다. 한국의 뜨거움을 안고 더 뜨거운 나라로 다시 돌아왔다. 남은 날들을 어떻게 살아갈까? 듣는 것에 익숙해져 이제는 내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아도 될 것만 같다. 조금 더 깊이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들로 채워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