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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예 Jan 05. 2023

다정하게, 안녕  


어느 날 내가 무심히 던진 "좋은 엄마야."라는 말에, 그녀는 일주일 넘게 울던 밤을 끝내고 마음을 정리했다고 했다. 그리고 오가며 얼굴만 알고 지내던 나에게 "언니, 언제 차 한잔 할 수 있을까요?"라고 데이트를 신청했다. 그날의 만남, 그리고 그녀가 나에게 해준 이야기(왜 나의 "좋은 엄마야."가 그녀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켰는지)는 나의 글에 오롯이 담겼고, 후에 다시 만났을 때 카페에 앉아 그녀는 내 글을 읽으며 펑펑 울었다.  그렇게 그녀는 나의 독자가 되었고, 꺼내기 힘든 사연까지 나누는 친구가 되었다.


그녀가 남편과 겪는 갈등의 8할은 경제적 문제이다. 남편의 현재 직업이 불안정하기 때문인데 어느 날 수개월간의 생활비가 크게 구멍이 날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녀는 고민 끝에 결국 샐러드 전문점 아르바이트를 결정했고, 나는 진심으로 "너무 잘됐다!"고 기뻐했다. 나의 반응은 계획되거나 의도된 것이 아니었다. 내 시에도 등장하지만 그녀는 정말 빵을 굽는데 일가견이 있고, 빵과 샐러드를 한껏 차려 정성스럽게 먹는 브런치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밥 차려 먹는 시간이 가장 아까운 나랑은 정반대다.) 꿈을 좇을 수 있다면, 그녀의 불행은 등 뒤에서 힘을 잃어갈지도 모른다.  그때도 내 '아무 것도 아닌' 감탄에 그녀는 그제야 안심한듯 말했다. "언니와 이야기 하면, 내 걱정이 별 게 아닌 거 같아서 너무 좋아." 나하고만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그녀에게 나는 다들 이렇게 반응하지 않냐고 의아하게 물었고, 그녀는 풀이 죽어 대꾸했다. 남편의 실직, 당장의 생활비가 부족한 상황, 그리고 결국 엄마인 자신이 일하러 나가야 하는 처지에 집중하는 그들의 위로가 오히려 그녀를 초라하게 만들더라는 것이다.


"진짜 좋은 일인데 이상하네? 샌드위치 좋아하는 사람이 돈 받으면서 샌드위치 만드는 방법 배우게 생겼는데 좋은 일 아닌가? 거 참 이상하네. 내가 이상한가."


그리고 그녀는 그제야 안심한듯 행복하게 웃었다. 언니, 나 정말 엄마인 내가 더 강해져야겠어, 하고.  뒤에 그녀의 오렌지색 제복이 어찌나 그녀의 하얀 얼굴과 잘 어울리던지 질투가 다 날 정도였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몰래 찍어 "너무 예쁘다."며 사진을 보내 주었다.


그리고 또 오늘 그녀의 제안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로 박물관 견학을 다녀왔다. 워낙 길치인지라 씩씩한 그녀의 뒤꽁무니만 좇아다니며 알찬 시간을 보냈는데, 헤어진 후에 보내온 그녀의 메시지가 나의 눈가를 뜨겁게 만들었다. "언니를 만나고나면, 내가 어제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거 같아."


그녀는 모른다. 내가 그녀를 만나면, 내가 오히려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신이 나는지. 나의 단어에, 문장에 아이처럼 순수하게 감동하고 반응하는 그녀 때문에 얼마나 행복한지. 현실보다 이상에 발이 붙어 있는 것 같은, 아이들 학원에도 관심 없고 재미있게 말도 못하고 전업맘이라는 직종에 몹시 서투른, 어디 나사하나 빠진듯한 어리버리한 아줌마. 그게 나인지라 쉽게 동네의 엄마들과 가까워지지 못했다. 놀이터에서도 수다에 끼지 못하고 주변을 맴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나의 서툰 진심을 알아봐주고 좋은 언니라 해주었다. 그녀는 내가 무심하게 던진 다정함을 기어이 찾아내주는 사람이다. 그녀의 메시지를 자꾸 읽어보며 나는,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더 다정한 사람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의 글을 읽고 싶은 단 한 명의 독자.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내 글을 몇 번이나 찾아 읽고 행복하게 잠들었다는 눈물나게 감사한 나의 팬의 글이 문득 떠올랐다. 몇 안 되는 수의 팬이지만 나는 앞으로 계속 글을 써도 되겠구나, 말도 안 되는 자신감을 품었었다.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 다짐했다. 비루한 내 안의 단 하나, 꺼내어 나누고 싶은 마음 한겹. 타인과 이웃을 향한 따뜻한 시선, 나의 다정한 인사. 그걸 알아봐주는 나의 이웃에게, 같이 공감하는 나의 독자에게 최선을 다해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오늘도 내일도 다정하게 안녕,을 건네고 싶다.



덧. 그녀는 그녀를 소재로 글을 쓰는 것을 흔쾌히 허락하면서도 본인은 눈물이 날 것 같다며 자세히 읽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발등 하얀 그녀'라는 자신의 별명은 굉장히 흡족해한다. 연약해보여서 좋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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