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색과 검은색이 교차하는 건반 속 가치관
피아노의 검은 건반과 하얀 건반이 있습니다. 옥타브를 넘어 반복되는 12개의 멜로디로 만들어내는 음악이란 게 신기하기도 경이롭기도 하죠. 하얀색과 검은색이 교차하는 건반의 색깔이 반전하는 듯한 착각도 잠시, 흩어진 음들이 제자리를 찾아 연주하는 매력은 수많은 감정을 들게 합니다.
검은색, 하얀색이 나란히 배치된 건반은 다양한 형태의 음악으로 우릴 찾아옵니다. 악보 속 다양한 배열의 멜로디가 어떤 악기로 연주되냐에 따라 다른 것을 느끼게 되는데, 네모인지 세모인지도 알 수도 없는 형태의 감정을 정리하기가 쉽지는 않죠.
피아노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선 어떤 손가락으로 어떤 음을 누를지 천천히 생각해보는 것이라고 합니다. 절대적인 운지법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손가락에 맞는, 자신만의 운지를 적고 연습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죠.
남들과 다르니까 자신만의 연습법이 필요하다.
피아노를 처음 배우면서 지금까지 크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이 운지법입니다. 저는 피아노를 독학으로 배우다 보니 제대로 된 자세나 운지, 세기로 연습할 기회가 없었죠. 주어진 악보를 가장 빨리 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자신만의 손가락 번호를 붙여가며 한 음씩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연습을 할수록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치고 아플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내가 하나의 연주를 완성해간다는 쾌감은 꽤 중독성이 있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흐름과 속도가 있다.
실력이 조금씩 쌓이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한다는 뿌듯함도 잠시, 이틀 만에 금세 아파오는 손가락의 피로감에는 은근 서운함을 가지게 되네요. 겨우 1페이지를 연습하는 데 1달이 걸리고, 남은 4페이지의 연습시간을 가늠해보면 마치 '영원'과 같이 아득할 때가 있습니다.
겨우 첫 한 곡인데. 안타깝게도 곡을 잘 못 고른 것은 아닌지. 왠지 모르게 심신이 너덜너덜해지는 기분까지 듭니다. 크든 작든 무언가를 위한 노력은 길을 낼 수 있겠지라는 기대가 있지만, 예고 없는 드라마처럼 이대로 계속할 수 있을지, 완결을 낼 수 없을지도 모르는 느낌은 왠지 불쾌하기도 합니다. (보통 음악이나 피아노 곡은 클라이맥스(절정)가 뒤에 오다 보니 점점 어려워집니다.)
모든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고, 영상에 나오는 멋진 피아니스트의 모습을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악보를 한순간 봐도 마법처럼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을 원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왠지 새치기하는 기분이 들어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나이가 들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상상도 잠시, 애석하게도 서른을 넘겨도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은 서투르기만 하네요.
스스로 깎아낼 수 있는 시간과 노력
모든 일에는 기꺼이 스스로 깎아낼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알았습니다. 오선지에 동그라미나 빗금을 치는, 정해진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고민해서 풀어나가야 할 과제가 있는 것은 똑같았죠. 삶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치열한 고민을 담아낼 수 있어야 비로소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피아노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노력 없이 답을 볼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잠시 어리숙한 마음을 반성하게 됩니다. 피아노의 악보처럼, 어차피 인생도 동그라미나 빗금만으로 결정될 수는 없겠죠. 자신만의 상상, 철학을 담아낸 연주가 최선일 수 있을 때,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고 와르르 무너질 때가 있다고 하더라도 박수받을 수 있는 인생이지 않을까.
모두의 인생에서 크고 작은 문제에 부딪쳐 스스로 풀어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에 정답이 있을 리 없겠지만 자신만의 연주법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 때, 스스로 오답이라 느껴져도 상심하지 않았으면. 그 연주를 고민하기까지의 시간과 노력은 결코 오답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