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더 이상 누군가에게 권할 수 없는 나의 전공과목
내가 그들의 삶을 책임져 줄 수 없기에.
바나나 우유에 빨대만 꽂아줘도 넘어오는 것이 인턴의 마음이라고 했던가. 일은 힘들고, 여기저기 치이고, 세상 온갖 잡일이 다 내 일인 것 같은 병원생활. 나 빼고는 다 베테랑 같고 나만 덜렁 떨어진 모자란 초짜 같은 느낌에 자존감 팍팍 떨어지는 인턴의 마음은 그래서 아주 조그만 계기에 넘어오기도 한다. 학생 시절에는 생각도 안 해봤는데 막상 일해보니 너무 재미있고 적성에 맞다든지, 의국 분위기가 정말 끈끈하고 사람들이 좋았다든지, 나에게 잘한다고 당신의 적성에 맞는 것 같으니 지원해 보는 게 어떠냐는 하늘 같은 전공의 선생님이나 전문의 선생님들의 꼬심이 있다든지, 뭐 그런 이유들로 지원하고 그 전공과목을 평생 업으로 삼게 되는 일들이 흔하다. 너무 인기가 많아서 지원자가 넘치는 과에서는 아쉬울 게 없겠지만, 나의 전공과목은 그 정도는 아니었기에 이 달의 인턴이 유난히 재능이 있거나 마음에 들면 꼬셔보자고 노리곤 했다
나도 그랬다. 학교 다닐 때는 응급의학과라는 건 생각도 안 했고, 소아 쪽은 정말 연령별로 뭘 외우기도 복잡하고 귀찮아서 더더욱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소아응급을 하고 있다. 응급실 인턴을 돌면서 내가 날것의 환자를 받아서 보는 걸 좋아한다는 것도 알았고, 응급실의 중환을 빠르게 처치하고 손발 착착 맞춰 일하는 선생님들이 멋있어서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턴 턴을 교환할 수 있었는데, 바꿀 수 있는 턴은 다 바꿔서 응급실로 돌 정도로 나는 응급실이 좋았다. 일 끝나고 나면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아서 휴식이 확실히 보장된다는 점도 매력적이었고, 왠지 막연히 거칠고 우락부락할 것 같은 이미지였는데 의외로 쾌활하고 끈끈한 의국 분위기도 좋았다. 여러 번 돌아서 아마 더 익숙해져서 그랬겠지만 다들 나에게 너 일 잘한다고 해주셔서 그것도 좋았던 게 맞고. 들어가서 엄청 초반에 헤매기는 했지만. 소아응급도 모교 내려갔다가 안 맞아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차에 연수강좌 갔다가 소아 중환자 가르쳐줄 테니 올라오라는 말 한마디에 홀라당 올라갔고. 내가 못하는 거 배우고 싶었던 마음이 컸으니.
그렇게 누군가가 이끌고 권해주는 게 생각보다 정말 진로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누군가에게 내 전공과목을 권하지 못하게 되었다. 내 의사 생활의 아니 내 자아의 많은 부분이 응급의학과 의사라는 것이 차지하고 있었기에, 그리고 내가 해 보니 정말 재미도 보람도 있었기에 전공의 3년 차 때까지는 이 길을 같이 가고 싶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응급의학과 어떠냐고 꼬시곤 했었다. 별로 영업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내가 끌어온다고 말하기는 민망하지만, 내가 계기 중 하나였다고 면접에서 말했다던 의국 후배 선생님이 두 명이 있었다. 한 명은 그 힘든 보라매 응급실 인턴을 하면서 비위관 삽입(일명 콧줄, 위장관 출혈이 강력히 의심되는 경우에 위장관 세척을 통해서 출혈 양상을 확인해야 하기에, 꼭 해야 한다)을 하지 않겠다고 난동을 부리는 환자에게 차분하고 담담하게 "환자분 힘드신 거 다 알아요, 그런데 이걸 안 하시면 더 힘들어지실 거예요. 제가 최대한 환자분이 편안할 수 있도록 잘해드릴게요. 하지만 조금 괴롭긴 해요."하고 설득을 하는 모습에 반했었다. 산부인과를 지망했다기에 응급의학과도 정말 잘할 것 같다고 적극적으로 꼬셨다. 다른 한 명은 내가 중환자실 주치의던 시절에 심장구역 인턴이었던 선생님. 응급실에 중환자가 들어오는데 차분하게 자기 할 일 빠르게 찾아서 하는 모습에, 인턴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꼼꼼하고 자세한 기록에, 그리고 엄청 귀여운 외모에(...) 반해서 환자 끊긴 새벽에는 편의점도 같이 가고 하면서 친하게 지내다가 우리 과 어떠냐, 잘할 것 같다고 그렇게 이야기했었다.
그 이후에 많은 날들을 나는 그들에게 미안해했다. 수련이란 것이 힘들지 않을 수 없고, 우리가 수련받은 곳은 전국에서 가장 어려운 환자들이 모여드는 곳이기에 힘들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이 낮밤 바뀐 생활에 몸도 상하고 안팎으로 이리저리 치이며 마음도 상하는 걸 보면서, 연차가 올라도 자기 삶보다는 병원생활에 매몰되어 힘들어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내가 그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인가 내내 죄책감이 들었다. 안다. 선택은 그들의 몫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아픈 건 아픈 거다. 내가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그렇게 응급의학과가 좋다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처음 생각했던 과들을 갔더라면 조금은 덜 힘든 삶을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안 들 수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연차가 올라도 낮밤이 바뀌는 삶, 응급실에서 생긴 불가항력적인 사고들에 대해서까지 모두 책임을 져야 하는 판례들, 현장을 모르는 이들이 무분별하게 던지는 정책들에 대해서 환멸이 나고, 이 일을 하는 것이 점점 두려워지면서 나는 그 누구에게도 이 일을 권할 수 없었다.
세부 전공인 소아응급 역시 다르지 않았다. 나는 내가 배우고 싶은 게 명확했다. 소아 중환자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배운 다음엔 뭘 할 거냐?라는 물음에 대해서는 솔직히 그리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어차피 하는 사람 별로 없는 이 전공, 어느 병원에서든 소아응급 전문의를 뽑고 있던 상황이라 어디든 가지 않겠나, 수도권 어딘가의 병원에 적당히 월급 받는 자리로 가겠지, 실력이나 키워 두자, 하는 생각으로 있었다. 내 세부 전공은 내게 생각 이상으로 잘 맞았고 나는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전공의 시절에 하고 싶어 했던 성인 중환자가 아니라 소아 응급을 택하기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권할 수 없었다. 보호자들 상대하는 것도 그렇고, 필연적으로 맞이할 수밖에 없는 죽음이나 나쁜 경과에 대해서 성인보다 소아는 훨씬 마음도 아프지만 짊어져야 될 리스크도 컸다. 이 아이가 자라서 얻을 기대 소득 등을 따지기에 그랬다. 돈도 못 벌어서 병원에서 홀대받는단 것도 한몫했고. 그랬기에 나는 전임의 후배로 전공의들을 꼬셔보라고 하는 교수님들 말씀에도 올 애들은 올 거고, 제가 꼬셔도 안 올 애들은 안 온다고, 저는 그 아이들의 삶을 책임질 수 없기에 못 꼬시겠다고 일축했었다. 교수가 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전공의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고, 소아분과를 한다면 엄청 잘할 것 같고, 인간적으로 죽이 잘 맞아서 밖에서 둘이 만나서 자주 놀곤 했던 전공의가 있었지만 그 친구에게도 절대 소아응급 하라는 소릴 할 수가 없었다. 가시밭길이 뻔하니까.
얼마 전 만난 본과 2학년 5촌 조카도 그랬다. 본인은 선천성 질환이나 희귀 난치병에 관심이 많다고. 뭘 하든 소아분과가 궁금하다고 하기에 하지 말라고 단언했다. 그런 쪽은 뽑은 인원수도 너무나도 적은 바늘구멍인 데다가, 소아 붙은 건 돈 못 벌어와서 병원에서도 힘도 없다고. 나야 그나마 이미 경력이 쌓였고 하는 사람들 다 떠나서 어쩌다 희소가치로 살아남았지만 나조차도 성인응급에 비해서 뽑는 곳도 적고 급여도 낮다고. 적극적으로 말렸다. 굳이 힘든 길로 가까운 사람이 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힘들어도 이 일을 통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람을 얻을 수 있고, 충분한 존중을 받을 수 있다면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세태에는 그것은 환상에 불과함을 너무 잘 알아버렸기에 나는 더 이상 내 일을 그 누구에게도 권하지 않는다. 누군가 관심을 가진다고 해도 다시 한번 생각하라고 말리면 말리지 권할 수가 없다. 슬프지만, 아마 앞으로는 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