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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Mar 25. 2024

37. 여기가 '동네 소아과'인데요?

의료 전달 체계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의 소아응급센터에서 수련을 받았다. 매일 암환자, 희귀난치환자만 봤을 것 같지만 의외로 그럼에도 반 이상은 경증 환자였다. 당일 열이 나고, 설사를 하고, 기침을 하고, 구토를 두세차례 하는 방긋방긋 웃고 있는 아이들. 새벽에는 중환이 아니라 저녁부터 열이 나기 시작해서 안 떨어진다고 오거나 새벽에 일어나서 아이가 몸이 뜨끈해 열을 재 보니 39도인데, 해열제를 먹여도 정상체온까지 떨어지지 않아서 왔다는 케이스가 대부분이었다. 평일 낮에도 더러 왔다. 이런 걸로 3차 의료기관에서 어떤 과정도 거치지 않고 대기 30분도 없이 의사가 바로 진료를 볼 수 있는 게 정상일까. 


진료를 보며 느낀 것은 이런 잘못된 응급실 이용행태는 보호자들의 불안감과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었다. 해열제를 먹여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고, 40도를 찍을 수도 있고, 열이 바로 안 떨어진다고 수액을 맞아야만 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을 보호자들에게 충분히 교육했다. 이런 증상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을 오실 게 아니라 밤 사이는 경구 해열제를 복용하고 지켜보신 뒤, 동네 소아과 의원을 찾아가서 진료를 보시라는 말씀을 드렸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보호자가 이해가 잘 안 된다는 투로 말씀하셨다.


여기가 동네 소아과인데요? 집 바로 앞인데 저희가 어딜 가요?


나의 말에 기분이 상한 것도 아니요, 정말로 가까운 곳이 이 곳이라 왔는데 무엇이 문제냐는 순수한 의문. 아, 이것이 우리나라 의료 전달 체계의 문제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말이로구나. 


단순히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경증 질환은 엄연히 1차 의료기관, 30병상 이하 혹은 단일 과목 진료를 보는 소위 '동네 병원'에서 커버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해당 병원의 수준에서 어려울 경우 2차 병원, 흔히 보이는 종합병원들에서, 그래도 안 된다면 3차 병원, 우리가 잘 아는 소위 대학병원들로 의뢰를 하는 식으로 의료 전달 체계는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환자가 원한다'는 이유로 정말 1,2차 병원에서 커버되지 않는 중증 환자를 보아야 할 3차 병원들이 경증 환자들에 치여서 허덕이고 있다. 


특히 소아의 경우 보호자가 원한다는 소위 'wanted' 전원이 그렇게 많다. 소중한 우리 아이는 최고의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아야만 한다고, 충분히 집 근처 아동병원에서 입원해서 편안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데 데려와서 했던 검사를 또 하고, 한참을 기다린 뒤에 입원은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당연하다. 입원 문턱이 다르다. 이미 그런 병원들은 중환자들을 받는데도 병상이 항상 모자라서 허덕이고 있고, 전국의 중환자들이 다 몰려오는 곳이기 떄문. 진료 의뢰서를 받아가지 않으면 본인 부담금을 올린다고 하지만 의뢰서는 언제나 쉽게 받을 수 있다. 응급실? 응급의료관리료가 있지만 소아의 발열은 응급으로 분류되고(나는 이것에 대해 정말로 동의하지 못한다. 단순발열은 그 자체로 무슨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닌데, 왜 응급인가.) 실비 보험 청구하면 거의 돌려받기에 비용으로 부담을 지울 수도 없다. 


물리적인 거리가 가깝다고 해서, 3차 병원 응급실이 단순 발열로 내원한 아이의 첫 번째 선택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 의료전달 체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고혈압 약 타러 시골에서 삼성병원 보내 주는 것이 자녀의 효도가 되고 오늘 오후부터 난 발열로 서울대 병원 응급실에 가도 동네 소아과 가는 거나 이게 무엇이 다르냐는 국민의 인식이 굳어져버렸다. 원하는 대로 병원 다 골라갈 수 있게 되어버리니까 모두 빅 5로만 가고 싶어하고, 빅 5는 국민들의 니-즈에 맞추어서 분원들을 문어발처럼 지어대려 한다. 차라리 전국 병원을 죄다 서울대병원 ㅇㅇ분원이라고 이름을 짓지 그러냐는 비아냥이 마냥 웃기지는 않다. 국민의 인식부터 그럴진대, 이 망가진 의료체계는 어디부터 손을 대어야 바뀔지 요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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