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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꼬마 Mar 26. 2024

38. 오타쿠의 마음.

연봉 4억이라서 하는 거 아닙니다. 

소제목을 보고 오해하실라. 미리 밝히지만 나는 30대 후반의 7년차 전문의이자 12년차 의사인데 한번도 연봉 4억을 받아 본 적이 없다. 어느 분께서 평행세계의 의사를 보고 말씀하신지 모르겠는데, 내가 그렇게 못 받은 돈을 합치면 강남 아파트를 하나 샀을 것이다. 


나 때도 이미 전문의가 되지 않고 일반의의 길을 택한 사람들이 없지 않았다. 동기 중 인턴만 수료하고 나서 개원해서 떼돈을 번다는 친구들도 있었고, 전공의를 하다 그만두고 미용으로 가면서 훨씬 마음 편하게 지낸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더러는 기껏 전공과목 4년을 수료하고도 전공과는 관계없이 미용을 하거나 통증 술기를 배워서 그걸로 먹고 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걸 그렇게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지금은 또 그들이 승자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고된 수련을 받고 그들이 버는 돈의 반도 못 버는 삶을 산다고 해도 부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전공과목은 그런거다. 내가 그 과를 전공했고, 그 과의 전문의가 된다는 것은 적어도 그 과의 영역에서 어느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보증한다는 것. 그것을 위해 상당히 혹독한 수련의 과정을 감내해왔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3년 혹은 4년, 긴 시간을 버티게 하는 것은 적어도 그 전공과목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 조금 더 속된 말로 하자면 '덕심'없이는 어렵다. 특히 사람 죽고 사는 것 매일 보는 바이탈과는 더더욱, 다른 말로 하면 '바이탈 뽕' 없이는 정말 어렵다. 


모교에서 잠깐 일하던 시절이었다. 점심이나 먹어볼까, 하고 당직실에 들어가려는데 전공의가 다급히 나를 불렀다. 선생님, 중증외상입니다. 오토바이 사고인데 차량이랑 부딪힌 환자. 이 경우는 기전만으로도 중증 외상에 해당한다. 똑똑한 전공의는 초음파를 댔고, 초음파에서 이미 혈복강이 확인되었다. 가슴과 오른쪽 윗배쪽으로 차 바퀴 흔적이 보였다. 아마도 기흉, 혈흉, 간도 아마도 손상을 입었겠지. 즉시 혈관을 확보하고 CT 촬영을 갈 준비를 했다. 기도삽관과 흉관삽입도 준비를 해두도록 일렀다. 중심정맥관도. 


외과 전공의와 둘이 CT실로 환자를 모니터하며 갔고, 예상대로였다. 간이 두부처럼 으스러진 상태. 다행히 골반쪽은 큰 외상은 없었고 뇌 손상도 현재는 없었다. 가자마자 나는 기도 삽관을, 흉부외과 전공의는 흉관 삽관을, 우리 전공의는 중심 정맥관을 확보했고 외과 전공의는 외과 교수님께 상의를 드렸다. 외상외과 교수님께서 수술방을 바로 올리라고 하셨고, 막간을 이용해 혈압 모니터링용 동맥혈관도 확보하고 수혈도 준비시켰다. 2시간도 안 되어서 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수술방으로 올라가고, 환자는 이후 무사히 퇴원을 했더랬지. 


환자를 수술방에 보내고 돌아오니 흉부외과 전공의, 외과 전공의, 응급의학과 전공의 셋이서 뭔가 뿌듯하게 취한 눈빛으로 "와.... 우리 졸라 쩔어..." 하고 있었다. 그래, 이 맛이지. 이 맛에 바이탈 하는 거지. 그냥 그런 일 하나로 하루를 살고 한 달을 사는 것, 적어도 내 전공과목 의사로 살면서 내가 있었기에 환자가 살아났다는 것을 보고 이 일을 한다. 적어도 당신이 내 눈앞에서 이걸로 돌아가시게 두지는 않겠다고 하는 그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다. 


소아과는 어떨까. 지금은 믿기 어렵겠지만 성적이 좋지 않은 사람은 소아과 의사가 될 수 없었다. 저출산시대니 뭐니 해도 항상 소아를 보고 싶어하는 소수의 별종 의사들이 일정 비율 이상 있었다. 아이들은 깨끗하고 예쁘고 귀엽고 치료하면 바로바로 반응도 있고 그래서 좋다던 별종들은 항상 있었다. 지금도 소아 보는 거 자체는 좋다는 친구들이 없을까. 있다. 그런데 무서워서 못 하겠다는 말을 이대목동 사건 이후로 많이들 했다. 그렇지. 그 자리에 있었던 게 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못 하지. 그리고 지금은? 마음 아프지만 루저 취급 받을까봐 못하겠다, 미래가 안 보이니까 못하겠다는 말까지 보인다. 순수하게 '덕심'만으로는 할 수 없는 과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들이 소위 말하는 '미용 GP'처럼 살 줄 몰라서 그렇게 바보처럼 사는 거라고 생각하나. 이들에게 '미용 GP'들이 돈 잘 버는 게 부럽고 아니꼬와 보일까? 아니. 오히려 그 길을 가다가도 지금 아니면 못 받는 수련을 받고 싶다고 들어오는 친구들이 더 많다. 1년 쉬면서 미용 GP 하며 평판도 잘 쌓아 심지어 2호점 개원 원장 스카웃까지 받고도 마다하고 들어오기도 한다. 내가 선택한 전공과목에 대해서 수련받고, 적어도 그것에 대해서만큼은 나의 전문성을 인정받고 싶다는 은전 한 닢같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그게 무너졌다. 


적어도 내가 재밌어하는 일 하며 살고 싶다는 소망이 사치가 되었다.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일들, 이를테면 분만 중 저산소성 뇌손상같은 일들에 대해서도 처벌을 하고, 수술하지 않았다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선천성 심질환 환아를 수술하고 후유증이 남았다고 배상을 하라고 한다. 나의 부주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처벌을 받게 될 위험을 짊어져야 한다. 체력적으로도 힘들고, 감정노동도 심하다. 그런데도 그 길을 가겠다는 사람들의 자리가 없다. 대학병원에서 최소한의 인력을 뽑기에, 고된 수련을 마치고도 갈 곳이 없어서 전공과목을 살리지 못한다. 그런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당연히 후배들은 같은 길을 가기 꺼려한다. 그런데도 버텼다. 그런데도 버텼는데 아무도 안 온다고 증원하면 공부 못 하는 떨거지들 누군가는 갈 거라는 '낙수효과'를 말하며 공식적으로 루저 취급을 한다.  


의대 증원을 하면 나도 의대를 가겠다던 익명의 사람들을 보았다. 익명 뒤에 숨어 하는 저열한 언어들에 일일이 상처받을 필요가 없음을 알지만, 그럼에도 가장 상처가 된 말은 바이탈 할거냐는 누군가의 물음에 "6년 등록금 뽕뽑아야지. 레이저 시술사가 꿈임. 누군가는 하겠지. 지금도 안하는데 어디서 바이탈 운운이야"라는 말이었다. 정말 몰라서 하는 말이라도 입에서 뱉는다고 다는 아닌데. 날이 갈수록 대중들의 보고 싶지 않은 민낯을 보게 되고,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는지 가늠도 되지 않아 암담하다. 그렇다고 딴 일 하고 싶지도 않은 이 답없는 오타쿠의 마음은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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