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핑하듯 살어리랏다
싱가포르는 서울보다는 면적이 약간 크지만 좁은 면적에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끊임 없는 외국 노동인력의 유입으로 인해 거주지가 부족하고 주택비용(주거 비용)이 높다. 요즘은 정부의 외국 노동인력 규제로 인해 서서히 주택 비용이 낮아지고는 있으나 여전히 우리 같은 외국인 노동자의 월세에는 큰 영향이 없는 듯하다.
이런 이유에서 이곳은 하우스 쉐어, 룸 쉐어 문화가 익숙하다. 가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어 있는 방을 세 놓는다 거나 한 지붕 세 가족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한 집에 10명의 룸메이트가 있는 경우도 있다…
심지어 한국과는 정말 다른 것이 집을 구할 때 가구가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도 렌트 비용이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옷장, 소파, 식탁 등등 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남이 쓰던 침대를 사용한다? 정말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혼자 방을 쓰던 한국에서의 삶에 익숙해 있던 난, 처음 싱가포르에 와서 한 집을 6명이서 방 1개당 2명씩 쉐어하게 되었다. 일인용 침대 두개, 옷장 하나가 전부였던 방은 고속도로가 인접해 있어 첫날은 밤새 시끄러워 잠을 이루지도 못했었다. 같이 방을 쓰던 한 동생은 베드 버그로 인해 고생했고, 결국은 며칠동안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며 눈곱만 한 베드 버그를 조그마한 통에 잡아넣어 매니지먼트 오피스에 보여줌으로써 다른 침대로 교체가 되었다. 새 침대가 아닌 여전히 중고 침대로.. 그러나 베드 버그만 없는 상태로…
여행이나, 출장으로 와본 적은 있었으나 거주 지역 및 동네의 특성에 대해 아는 바가 전무했으므로 선택이 완벽할 수는 없었다.
한국처럼 방 한 칸 정도의 원룸 형, 부엌 및 화장실이 딸린 스튜디오 형의 집을 구하는 것은 한 달에 최소 2,000불 (한국돈으로 170만 원) 정도였으니, 백수의 상태로 온 나에게는 사치였다.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여행도 가고,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었기에 렌트비에 많은 돈을 소비하는 것도 아까웠다. 오히려 그 비용을 줄여 여행을 하자라는 생각이 더 강했다.
일을 하며 이곳에 정착하여 살고 있지만 난 여전히 이방인이기에 이사를 종종해야 하는 경우가 생겼고, 이 특성상 이것저것 살림살이를 사고 모든 것을 갖춰놓고 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1년 내내 여름이기에 계절마다 옷을 살 필요도 없었으며, 패션이라는 명목의 쇼핑은 이 더운 나라에서는 큰 의미가 없었다.
생활비에 사용되는 항목은 렌트비와 식비 (음주 포함), 그리고 여행이 전부였다. 엥겔지수가 높을 수밖에 없는 삶. 그리고 무소유가 되어가는 삶.
항상 떠날 거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제외하고 살다 보니 갖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도 없어졌고 무소유라는 간소한 삶의 방식은 좋으나 무언가에 자꾸 의미가 없어지고 인생이 무기력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오히려 게임이나 오락에 빠져 지내는 오타쿠들, 쇼핑 중독자, 피규어를 모으는 게 취미인 사람들의 매니아 적 태도가 부럽기도 했다.
‘그래, 나쁘게만 볼게 아니야. 그들은 우리보다 취미가 하나 더 있는 거잖아. 그 덕분에 인생이 더 풍부한 거고.’
물질적인 것에 대한 욕심이 사라지니, 새 물건을 들이는 것에 대해서도 이게 정말 필요한 것인가, 얼마나 사용하게 될까를 고민하고 필요하다면 가능한 쓰고 버리기 좋은 저렴한 것, 그리고 좁은 방을 차지하는 물건들은 머리 속 구매 리스트에서 점점 제외되어 갔다.
그리하여 우리의 신혼 생활도 화장실이 딸린 방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둘이 따로 살다 살림을 합쳐 살게 되니 각자 지출하던 렌트비도 반으로 줄었고, 밥그릇 두개, 젓가락 숟가락 두 벌, 추가 그릇 몇 가지, 각자 가지고 있던 가전제품을 모아 두고 보니 제법 살림살이가 구색을 갖추어 갔다.
집을 쉐어 하고 있으니 주방도 하우스 메이트 들과 나누어 써야 했고, 냉장고, 세탁기, 전자레인지 등도 쉐어하니 따로 구입할 필요가 없었다.
점심시간부터 생각해 놓은 저녁 메뉴를 위해 퇴근 후 같이 필요한 재료를 생각하며 필요한 만큼만 장을 보고 어설픈 솜씨에서 제법 맛이 있어 깊어지는 음식에 감탄하며 비 오는 날엔 부침개에 막걸리도 한잔 하고 너무 늦은 시간엔 옆 하우스 메이트 눈치를 보며 조심조심 라면을 끓여먹고.
이렇게 사니 삶이 캠핑 같다. 모든 게 완벽히 준비된 채 시작된 게 아니지만 있는 대로 프라이팬에 삼겹살을 구워 먹고 캔 맥주도 한잔씩 하며 사는 지금 삶이 마치 계속 캠핑하고 있는 기분이다.
이런 방식이 오히려 우리를 더 쉽게 떠날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는지 모르겠으나, 프랑스에 가서도 이렇게 살 생각이다. 정착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간소하게 필요한 만큼만 소비하며 또 어딘가로 떠날지 모르니 짐도 가볍게…
그렇지만 시간 내어 천천히 음미해가며 살 거다. 좀 더 풍부한 삶을 위해 작은 것에도 관심의 범위를 넒혀가며. 그러나 여전히 캠핑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