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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YKim Apr 04. 2016

프랑스에서의 삶이 시작되다.

그르노블에서의 한 달

2월 29일까지 근무를 하고 그날 밤 비행기로 바로 싱가포르를 떠나왔다.


마지막 날까지 회사에 출근해서 그동안 일했던 동료들, 상사분들께 마지막 이메일을 보내고, 노트북, 회사 배지를 반납하는 등의 절차들이 이미 맘이 떠난 나에겐 참으로 귀찮았다. 게다가 저녁 8시경 비행기였기에 집에 들러 짐을 들고 6시까지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했다.

그날 바로 떠난다는 얘기에 매니저는 일찍 집에 가서 준비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고, 정들었던 동료들과 마지막 인사를 서둘러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함께 했던 물건과 집을 정리하고 나니 처음엔 제법 아늑했던 방이 가방 6개와 함께 썰렁 해졌다.

이민 가방 1개, 캐리어 1개, 그리고 각각 앞뒤로 메는 가방 2개씩 총 6개의 짐을 가지고 그렇게 우린 싱가포르를 떠나왔다.


떠나오기 전 우린 어느 지역에서 공부할까 고민하며 각각 다른 지역 7군데 정도의 학교, 학원 등에 코스, 비용, 수업 시작 학기 등의 정보를 요청했었다.

수업료, 물가, 생활비, 다른 지역으로의 여행 용이성 등을 고려하여 대학의 도시라 불리는 Grenoble이라는 지역을 선택했다. 대학이 많아 학구적인 분위기인데다 파리에서 유학을 했던 친구도 처음 어학을 할 때 이 지역에서 시작했었다고 했기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그리고 생활비도 파리와 비교하여 저렴하고 월세를 비교해보니 화장실 딸린 방 한 칸에 120만 원 하던 싱가포르와는 너무 다르게 저렴한데다 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도 많았다.

하여 우리는 집을 미리 정하지 말고, 일단 에어비앤비로 일주일 정도 지내며 직접 보고 결정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출발 다음날 오전 파리에 도착한 우리는 TGV를 타고 리옹으로 , TER를 타고 그르노블에 도착한 후 바로 그 다음날인 2일부터 바로 어학 수업을 시작하고, 각종 서류 준비 및 정착할 집을 구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이게 외국인을 위해 세를 내놓는 사이트가 맞는 것인지 아니 면로 컬 사람을 위한 사이트인지, 마치 부동산 114에 광고를 올렸는데 뜬금없이 외국인이 연락하는 것 같은 상황이 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다가 이런 생활 정보가 많이 있다는 사이트를 알아내어 몇 군데 연락을 해보았다.


아직은 불어로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따로 집을 구하고, 가스, 전기, 인터넷 등의 신청을 위해 서비스 센터로 전화를 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을 것이라는 주변의 조언에 학생 기숙사에 갈까 생각도 하였으나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보러 갔던 집이 예상외로 마음에 들었다. 가격도 기숙사 보다 저렴했고, 학원과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였기에 굳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했던 친구 조차도, 외국인이 집을 구 할 때는 프랑스인 집 보증인이 추가로 필요하고 그렇지 않으면 1년 동안 세를 낼 수 있는 충분한 잔고가 있다는 증명을 해야 해서 계약이 쉽지 않다고 말을 했었는데, 운이 좋게도 우린 도착 일주일 만에 작지만 아늑한 원룸형 스튜디오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머물고 있던 숙소에서 지금 구한 집까지의 거리는 걸어서 20분 정도. 그리고 우리에겐 6개의 짐이 있다.

리옹에서 이곳까지 오는 길에 기차역에서 화재가 나서 2시간 정도를 지체하고, 게다가 1시간을 더 기다려 힘겹게 첫 숙소에 도착했는데. 숙소는 엘리베이터 없는 5층.

그런데 이제 다시 5층에서 1층으로 그리고 걸어서 20분 거리의 집으로 짐을 옮겨야 한다.

하지만 우린 백수, 조금이라도 비용을 줄여야 했고 일주일 동안 택시를 보지 못한 것도 같고.

우버를 검색해 보았으나 만원 정도의 비용이 든다.

"그래. 우린 이제 백수야. 그 정도 거리로 택시를 타면 아저씨도 우릴 욕할 거야. 그냥 가자.

재밌잖아?"

하며. 우리는 그 짐들을 흩날리는 비를 맞으며 2번이나 왕복하며 우리의 새 집으로 옮겨 놓았다.

“도착 일주일 만에 집 계약을 하고 이사까지 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라고.. 헉헉 대며..


마치 미션을 하나하나 완성해 가는 기분으로 일주일을 맞이했다.


5년 동안 익숙해졌던 여름 날씨를 떠나 영하 및 눈이 오는 날씨를 견디며, 에어컨의 삶에서 히터도 아닌 라디에이터의 삶으로, 짐을 줄이겠다며 가져온 겨울 코드 한 개에 얇은 옷을 4~5개씩 껴 입으며 이렇게 한 달이 지나갔다.


매일 학원 가는 길에 지나치는 트램, 매일 아침 8시 반 경 시작해서 12시경 끝나는 아침 시장, 그리고 동네 구석구석의 정취에 감탄하며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아침을 먹으며, 오늘 점심엔 뭘 먹지? 저녁은 뭘 사서 뭘 해 먹어야지? 하고 고민하는 아직은 단순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La Bastille에서 내려다 본 그르노블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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