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를 떠나다
난 싱가포르에서 일한 경력이 4년 8개월 정도 된다. 아니 2월 말까지 근무할 예정이므로, “4년 8개월이 될 것이다” 라고 하는 게 더욱 맞겠다. 반면 한국에서의 경력은 약 2년 8개월 정도이다.
꼭 찍어 싱가포르에 가서 근무를 해야지 하는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남들처럼 해외에서 일해 보고 싶다는 막연한 동경이 있었을 뿐.
in 서울 대학이긴 하나, 나 또한 입학 원서를 쓸 때 존재를 알게 된 우리 학교는 그냥 서울에 위치한 4년제 대학교였다.
믿는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남들은 2학년 때부터 준비하는 취업 준비(학점, 자소서, 영어점수, 어학연수 등등)를 난 전혀 하지 않았다. 단지 그때부터 삼성, LG 따위의 대기업에 목매는 동료, 선배들이 참 한심해 보였다. 그들에게는 취업이 전부인 것처럼만 보였다.
취업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대가로, 난 졸업 후 2년간 백수로 지냈다. 물론 영어 학원도 다니고 스터디도 하고 유럽 배낭여행 등을 하긴 했지만 이력서에 적을 수 있을 만한 경험이나 경력은 전무한 채로.
그 후 운이 좋게도 난 은행에 취업을 하게 되었고, 본사 사업 본부의 세일즈 및 마케팅 부서에서 반복되는 업무를 2년 정도 했다. 순진했던 난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가는 줄로만 알았었는데 회사에는 백업이라는 제도도 있고 내가 없어도 회사는, 아니 세상은 잘 만 돌아간다는 사실도 함께 깨달았다. 오히려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폭넓게 바닥부터 업무 전반을 배워보고 싶었다.
여전히 해외 취업을 꿈꾸고 있었기에 동시에 해외 한국지사에도 이곳저곳 원서를 넣어 보았지만, 연락은 전무했다. 그리고 내 영어 실력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왜냐하면 외국계 은행임에도 불구하고 차장급 이하의 직원에겐 영어로 업무를 할 환경이 많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두 번째 회사를 고려할 때에는 딱 두 가지를 고려했다.
첫째, 규모가 작은 (직원 10인 이하) 외국계 기업
둘째, 직접 영어로 업무가 필요한 회사
그 결과로 내가 원하는 대로 4인 규모의 조그마한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한국 지사인 석유 수출입 회사로 이직을 했다. 이것까지 바란 것은 아니었으나 너무 규모가 작아서 아침마다 커피를 타고 설거지까지 해야 하는 회사로 말이다.
연봉도 많이 올랐고 야근도 없으며 교육비도 지원해주고 영어로 업무 할 기회도 많고 게다가 싱가포르 출장 후에는 추가 10% 연봉 인상까지. 설거지에서부터 회사 비즈니스가 돌아가는 부분까지 배울 수 있는 환경. 원하던 환경이 주어졌음에도 행복하지가 않았다. 원하는 회사를 찾아서 이직을 하고 연봉을 더 받고 좋은 직위를 갖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계속 반복적으로 변화 없이 살아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섭고 두렵고 답답했다.
가끔은 울면서 출근하기도 하고..
이젠 정말 떠나지 않으면 평생 그렇게 살 것 만 같아서 직업도 없이 이렇게 싱가포르로 도망치듯 떠나오게 되었다.
그런데 떠나온지 어엇 5년이 지나가고, 다시금 그때의 기분이 든다.
삶의 환경, 살림살이도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다시 답답하고, 쳇바퀴 돌 듯 살 것 같아서 두렵다.
인생을 좀 먹고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그래서 떠나려 한다. 이번에는 프랑스로.
다시 백수로
그러나 이젠 이런 답답함을 이해해 주는 밍키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