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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YKim Jan 14. 2016

심심하고 지루한 나라 싱가포르?

공부 사회 한국

한국에서 회사를 다니는 동안에는 평일, 주말에도 항상 여유가 없었다. 다녔던 두 군데의 회사 모두  야근을 했던 경험은 손에 꼽을 정도이고 거의 항상 칼퇴근, 회식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퇴근 후의 시간, 주말에도 여유가 없었던 이유는 자격증 공부, 그리고 영어 공부 때문이었다.


은행에 다니고 있었기에 우선 그 당시 유행하던 은행 3종 세트 공부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업무와는 전혀 연관성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내에서는 인사고과 및 자기 계발 장려의 일환으로 자격증 취득에 대한 포인트 제도가 있었고 관련 자격증을 딸 때마다 난이도 별 3 점 정도의 보너스 점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일 점수가 높았던 자격증은  CFA급이었고..


하여, 난 평일 그리고 주말마다 공부를 했다. 평일에는 매일 새벽 6시쯤 일어나 전화영어를 하고 출근하고,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는 한국 뉴스를 영어로 간추려 소개해 주는 모닝 스페셜이란 라디오를 들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경제학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5명 정도의 인원과 맨큐의 경제학  책부터 챕터별로 공부를 했고, 주말에는 언니와 함께 삼청동 근처에 있는 정독 도서관에 가서 저녁 늦게까지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공부를 했다.


일분일초가 아까웠고 심지어 친구들을 만나는 시간도 아까웠다.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저녁을 차려먹을 시간이 아까워 굶거나, 동생이나 언니가 차려주는 밥을 먹었다. 가끔이라도 내가 밥을 해야 할 때는 밥이 지어지고 뜸이 들여지는 약 30분 정도의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차려먹다가 울기도 했다.


방에서 공부하고 있을 때 거실에서는 절대 텔레비전 소리도 들리지 않아야 했고, 큰 소리라도 들리면 온갖 짜증을 내며 온 가족을 불안하게 했다.


그 결과로 집안에서 나의 별명은  “탄자”였다.


성격 파탄자..


회사 동료가 월요일에 출근해서 주말에 놀러 갔다 온 이야기를 할 때면 겉으론 동조해 주었지만 속으로  한심해했다. 자기 계발 안 하고 뭐하니..  이런 이중인격의 상태로..


한국에서는 그렇게 살았었다. 그리고 그게 맞는 줄로만 알았다.


싱가포르에서 취업을 하고 나서도 한 동안 여유가 없었다. 몇 백 페이지가 되는 영어로 된 업무 관련 매뉴얼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만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기에 평일에도 주말에도 노트북을 집에까지 들고 와서 공부하고는 했다.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업무에 익숙해지게 되니 심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언젠가 막연히 꿈꾸었던 ‘40세 즈음 소르본 대학교에서 철학 공부하기’ 목표를 위해 불어 학원도 등록했다.

그리고 동료들, 친구들과 시간을 많은 보내기도 하고 여기저기 주변 국가로 여행도 다녔다.


적어도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싱가포르에서의 업무환경은 객관적 지표라 여겨지는 자격증보다 업무에 대한 경력의 연관성, 이해도, 성과 등에 더 중점을 두었기에 더 이상 업무와 관련 없는 자격증을 따기 위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었고, 영어에 노출되는 업무 환경이기에 당연스레 따로 영어 학원을 다닌다거나 점수를 위한 공부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순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이 너무나도 많아졌다. 너무 많은 여유가 주어져서 오히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심심하고, 지루했다.


너무너무 심심해서 주변인들에게 많이도 물어보았다. 당신은 인생이 지루하지 않냐고 심심하지 않냐고…

주변 사람들은 솔로여서 외로운 거라며, 남자 친구를 만나보라 했지만

“난 외로운 게 아니다. 인생이 심심하고 지루한 거다. 그리고 그건 외로움과 다른 종류의 것이다”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그들은 오히려 나에게 생각이 많은 거라고 했다.


그들  말처럼 내가 생각이 많아서 그런 거라면 옛 철학자들은 어느 정도 생각이 많았을까..


해서,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책도 읽어보았다..


육체, 그것은 한번 태어나면 혼자서 살아간다. 그러나 생각은 그것을 지속시키고, 전개시키는 것은 바로 나다. 나는 존재한다. 나는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오! 이렇게 존재한다는 감정이 얼마나 길며, 또 얼마나 뱀처럼 구불구불한가. 그리고 나는 천천히 그것을 전개시킨다..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만 있다면! 나는 시도해 본다. 성공한다. 내 머리가 연기로 가득 찬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가 다시 시작된다. ‘연기.. 생각하지 말 것…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도 여전히 하나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끝은 결코 없다는 말인가? ”

 - 장 폴 사르트르의 <구토> 중에서 일부 발췌-


하지만 생각을 너무 파고 들어가는 그의 글에 질려서 나 조차 생각의 늪으로 빨려 들어갈 것 만 같았다.


그리고 네이버에 “심심할 때 할만한  것”으로 검색도 해보았고,


달리기를 하면 엔도르핀이 생겨서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여 집 주변을 달리다 돌아오며 울었다. “그래도 너무너무  심심해”라고 흐느끼며…


심지어 권태에 대한 심리학 이론 및 연구 결과에 대해 분석해 놓은   <권태>라는 책도 사서 읽었다. 도대체 무얼 해야 심심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을까에 대한 대답이 진정으로 필요해서..


그렇게 심심함, 지루함에 대한 이유를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항상 공부, 자기 계발 그리고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과 함께 살아왔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법을 몰랐고 그렇게 지나가 버리는 시간에 대해 낭비라고 밖에 여겨질 수 없었던 환경에서 살아와서였던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시간을 느긋이 보내며, 과정으로 인해 느껴지는 행복을 조금씩 이해해 가고 있다.


예전엔 30분이나 걸린다고 울부짖었던 밥 짓는 시간도, 그리고 장조림 완성을 위한 메추리알 까는 시간도 이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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