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게 아쉬운 순간이 있다.
내년쯤, 그러니까 올해 둘 다 회사를 그만두고 떠나자고 얘기를 했었다.
프랑스에 대한 동경, 언젠가는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 그리고 둘 다 그 희미한 미래를 위해 프랑스어 공부를 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첫 만남에서 더욱 가까워졌다.
부모님들께 안심시켜 드리기 위해서는 결혼을 하는 시점까지 둘 다 직업이 있는 상태가 나을 것이며, 우리도 서로의 경력 연장을 위해 조금 더 회사에 충성하는 것이 나을 거라 판단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3월에 떠나자 라고 결정을 내렸다.
대학 졸업을 앞둔 2005년 겨울, 파리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있었던 친한 친구의 제안으로 한 달 동안 친구의 집에 머물렀다. 말할 수 없는 굴욕의 학점, 대기업 공채 따위엔 원서를 내기도 싫었고 고맙게도 스펙이 지원 자격에 부합하지도 않았었다.
그렇게 불투명한 미래를 앞두고 그곳에서 보내는 한 달 동안 참 구석구석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중에서도 생 제르망 데프레, 마레 지구를 난 가장 좋아했었던 듯하다. 그리고 오래되고 빛바랜 중고 서점의 노란 불빛, 그 외롭고도 아련한 느낌이 너무 좋아서 나중에 나이가 들면 꼭 프랑스에서 살아봐야지 하고 막연히 꿈꾸었다. 그리고 그곳의 책들을 읽기 위해..
하여, 어학원을 등록하고 비자를 준비하고 싱가포르 살림을 하나하나 처분하고 있다.
반면 커리어를 위해 이곳저곳 이 팀 저 팀으로 빠른 승진의 기회를 찾아가는 동료들, 다른 나라로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떠나는 동료들, 하나 둘 씩 나오는 더 높은 포지션의 기회를 볼 때면 그만두고 떠나는 게 아쉬워지기도 한다. 잘하고 있는 것인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이것 또한 잠정적 또는 자발적 백수를 위해 퇴사를 다짐한 이들의 마음과 매한가지일 것이다.
이런저런 것 다 생각하고 계산하면 정말 영영 그만 못 두게 될 것이다.
'그래 할 만큼 했어. 이 일은 적성에 맞고 좋지만 50, 60세까지 다닌다 해도 여전히 삶엔 변화가 없는걸..
그래. 다 다름의 인생 계획이 있고 추구하는 바가 다르고 삶도 다른 거잖아.
이건 내 인생인 거고..'
미국계 회사에 다니며 그동안 잘려나가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성과 만큼 인정받는다 하지만 너무 잘 나가도 그만큼 빨리 잘려나간다. 대부분 40대 즈음...
어느 순간엔 이들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에도 익숙해 져 버렸다.
회사를 위해 열심히 한 결과가 결국 저걸까?
회사는 역시 개인의 삶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단지 이익 집단일 뿐이다.
많은 비용이 들면 잘라내 버리는.
그리하여
한 번뿐인 인생 회사만 다니며 살기엔 인생이 너무 슬프다...